우리나라를 너무나도 사랑한 일본인

면죄자 작성일 10.05.09 19: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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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자 선지(善之). 호 모하당(慕夏堂). 본명 사야가(沙也可).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좌선봉장으로 내침하였으나, 조선의 문물이 뛰어남을 흠모하여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귀순하였다. 누차 큰 공을 세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제수받았다. 이어 도원수 권율(權慄), 어사 한준겸(韓浚謙)의 주청(奏請)으로 김해 김씨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으며 임금이 하사한 성씨라고 해서 사성 김해 김씨라고 부른다. 정유재란 때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그 뒤 오랑캐의 침입으로 변경이 소란하자, 자청하여 10년 간 국경방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정헌대부(正憲大夫)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부장(副將) 서아지(徐牙之)를 잡아 죽인 공으로 사패지(賜牌地)를 하사받았으나, 사양하고 수어청의 둔전(屯田)으로 삼게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소명(召命)을 기다리지 않고, 광주(廣州) 쌍령(雙嶺)싸움에 출전하여 오랑캐 500여 명을 베었다.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통곡하여 대구의 녹리(鹿里)로 돌아갔다. 진주목사 장춘점(張春點)의 딸과 혼인하여 우록동(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정착하여 살면서 가훈 ·향약 등을 마련하여 향리교화에 힘썼다. 문집에 《모하당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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