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파렴치한 父子'에 인생 빼앗긴 母女박국희 기자 freshm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2대에 걸쳐 성폭행을 당한 A(57)씨 모녀가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집에서 녹차를 마시고 있다. /박국희 기자 freshman@chosun.com A씨는 입원 6개월 뒤에야 딸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A씨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A씨가 21살이던 1974년 성폭행을 당해 낳은 딸이 B씨였다.
A씨는 "2대에 걸쳐 아비와 아들에게 성폭행당한 셈"이라며 "죽지 못해 산다"고 흐느꼈다. 7남1녀의 막내딸인 A씨를 끔찍이 아꼈던 부친은 딸이 성폭행당해 딸을 출산한 해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4년 2월 A씨는 부산 연산경찰서(지금의 연제경찰서)에 자신을 성폭행했던 사람의 아들이자 딸의 이복오빠를 고발했다. 경찰은 보호자 A씨를 입회시키지 않은 채 B씨와 이복오빠를 대질 조사했다. 흥분한 A씨가 수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8개월째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던 딸은 "술을 좋아해서 마셨다"거나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엉뚱한 진술을 하고 말았다. "이복오빠를 처벌하고 싶으냐"는 경찰 질문에 "아빠를 고소하겠다"고 답할 만큼 진술은 오락가락했다. 딸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이복오빠는 "서로 원했다"고 주장하며 무고죄로 A씨를 맞고소했다.
검찰은 증거 불충분이라며 무혐의 처리했다. 항고도 기각됐다. 2004년 12월 재항고해 재수사 명령이 떨어졌으나 얼마 뒤 다시 무혐의 처리됐고, 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도 2005년 9월 기각됐다. 모녀는 "오피스텔 열린 문 틈으로 하의를 벗은 이복오빠가 발버둥치는 B씨 입을 막고 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도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A씨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경찰과 검찰에 네 차례나 고발했지만 항고와 재항고까지 연이어 기각되며 절망의 7년을 보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3월 "경찰이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B씨를 보조인 입회 없이 가해자와 대질 조사시킨 점은 적법한 수사 절차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도 검찰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모녀는 최근 다시 기운을 차리고 5번째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7년인 성폭행죄의 공소시효가 한 달(6월 23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 달 뒤면 가해자에게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게 된다. 성폭행죄 공소시효는 2008년부터 10년으로 3년 연장됐지만 그 이전 사건은 7년을 적용하고 있다. A씨는 매일 뉴스시간만 되면 TV 앞에 앉는다. "혹시 성폭행 공소시효가 없어진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