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ktor Robertovich Tsoi (1962, 6.25 - 1990, 8.15) 빅토르 최
러시아 전설의 한국계 러시아인. 록그룹 КИНО(키노)의 리더였으며
러시아내 한정된 기회만 주어진 각박한 삶을 짊어진 젊은이들에게 자유의 노래를 심어준 사람.
지난 2010년 8월15일 사망 20주기로 러시아내에서 추모행사가 열렸음
그의 생전 활동을 알리가 없는 10대 20대역시 아직도 그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고
캐나다내에서는 러시아계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가끔 만나게 되면
러시아에 대해선 몰라도 빅트로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그렇게 헝상궂은 러시아인들도
얼굴이 확 풀어져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함.
키노를 결성하기전에는 레닌그라드의 클럽등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실험적인 음악을 만들어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자 멤버를 모아 키노를 결성.
자신의 아파트에서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배포하자 레닌그라드는 물론 전국
록매니아들에게 퍼짐.
그후 1982년 첫앨범 45(소록 피아트. 이 앨범의 총 재생시간이 45분이라서 45)를 발표.
후에 46도 발표.
앨범을 발표할때마다 점점 정치색을 분명히 드러내자 공산주의 정부에서는 당연하게도
그의 공연을 금지시켜버림. 하지만 당시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등으로 어지럽던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유명해짐.(우리나라는 공산주의도 아닌데 왜 이런거임?)
1987년에 발표한 앨범 "혈액형(Gruppa krovi)" 앨범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며
러시아 전국민이 키노에 열광하게 만들었다.(윤도현 밴드가 한국어로 리메이크함)
이 앨범으로 키노와 빅토르최는 영웅등극.
이후 계속된 앨범발표들은 모두 사회문제를 다루며 비판하는 내용이었으며
당연히 정부에서는 곱게 볼수 없었으며 모든 러시아인이 키노에 열광하자 당연히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음. 한사람이 영웅시되고 수많은 사람이 따르게 된다면 사회주의 정부에서는
당연히 마크 하게될수밖에 없음
그러는 사이에 1990년 모스크바의 레닌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열어 6만2천명의 관중을
모으는 신기록을 세우고 같은해 8월14일 다음 앨범을 위한 녹음을 마치고
다음날 15일 아침 빅토르최가 운전하던차는 마주오던 대형버스와 충돌하여 빅토르최는
그자리에서 절명하고 만다.
차는 휴지조각처럼 갈갈이 찢겨지고 차안에 있던 물품들은 모두 부서지고 나머지 타이어
하나는 결국 찾을수 없을만큼 엄청난 사고(아닐지도 모름)임에도 불구하고 빅토르최의
다음앨범을 위해 녹음했던 그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는 멀쩡했다.
그의 멤버들은 그의 마지막을 추모하기 위해 그 녹음테이프로 빅토르최의 목소리가
담긴 마지막 앨범을 발매한다. 그것이 "black album"
솔직히 여기에 있으면서 러시아 군대를 전역한 사람도 보고 그들의 친구중에는
그 유명한 스페츠너츠 출신도 있는데 웬만하면 효도르와 맞짱떠도 꿀리지 않을것같은
사람들임.. 내가 여러 인종들과 만나면서 쉽게 이야기를 트는 법을 배웠는데
각 나라별로 사람들이 관심 있어할만한 토픽을 던져줘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방법인데 일본인은 다운타운(일본내라면 시큰둥하겠지만 설마 외국에서 한국인한테
들을만한 토픽이 아니기 때문에 꽤 놀람. 오타쿠적인 토픽도 있지만 보통은 이정도로 충분함..)
러시아 사람들은 어느정도 분위기 괜찮다 싶으면 빅토르최 이름 평소에 과묵하기로 유명한
러시아사람들도 입열기 시작함. 그러다가 들은건데 빅토르최의 죽음이 워낙에 석연찮은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가장 잘나갈때 죽었는가, 아무리 대형버스와의 교통사고라지만 10미터나
튕겨나갈정도로 충격이 클수가 있는가, 버스운전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거나(밟았어도
버스기종이 이카루스 대형버스라서 무게가 좀 많이 나가서 많이 밀림) 사고조사 기간이 너무
짧았고 사고운전기사가 너무 빨리 풀려난후 행적을 바로 감춰버림.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
까지도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만약 그 버스운전기사가 공작원이었다면 어차피
일반인이 진상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해" 전직 군인이었던 인간이 이런소릴 하니 더욱 러시아
공작원이 살벌해 보임.. 요즘 푸간지 막내딸 교제 한국인 횽이 자취를 감췄다길래 많이 쫄았음
하지만 빅토르최의 죽음이 하늘의 뜻이었든 러시아정부의 뜻이었든
그를 영원히 영웅으로 만들기엔 충분한 조건이 되었고 후폭풍 역시 거셌다.
자유와 저항을 노래한 빅토르최.
세상을 뜬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노래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걸그룹시대. 핫팬츠 미니스커트로 눈과 잦이를 유혹할뿐
언더그라운드라면 모를까 이제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사회비판이나 자유를 노래 하는일은
이제 없어진게 너무 안타까움. 뭔 맨날 사랑타령에 화살을 쏘니 어쩌니 내친구 여친이
날 유혹하니 어쩌니 그런거 말곤 노래 쓸게 없냐? 우리나라 7~80년대 음악이 훨씬 낫다.
솔직히 나는 음악, 노래는 음율이 담긴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함.
하지만 요즘 노래는 이제 시라고 생각하기가 힘듬..
그게 몸으로 발광하는거지 멤버 하나당 마이크잡고 입떼는 시간이 10초도 안되잖아 -,.-;;
아 그리고 사랑타령좀 그만해 무슨 20년동안 사랑타령하고 있냐. 벌써 애를 10명은 낳았겠다
좀 다양하게 노래좀 들어보자..
우리나라에는 2000년도에 빅토르최 사망 10주기로 빅토르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어 소개된후
2개정도의 앨범이 발매되었음. last hero와 change.
나는 그 노래들이 너무 좋아서 앨범 모두 구입했는데
시장반응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지 그 이후로는 사라짐.
CD들을 한국에 두고왔는데 MP3뜰 생각을 전혀 못해서 다운로드 해보려는데
이런 니기미 검색어가 러시아어라 난 읽지도 못하겠고 찾지도 못하겠음 -,.-;;;
빅토르최는 하도 귀에 못이 박힐정도로 들어서 어느정도 따라 부를수 있는데
정작 읽지는 못함..
아무튼 요즘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이야기가 몇개 올라오길래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 써봤음.
빅토르최 무덤은 내 스스로 정한 "죽기전에 가봐야 할곳 100군데" 중 하나임.
http://www.youtube.com/watch?v=VgmEL8GDPzY
요건 그의 노래중 내가 좋아하는 곡 하나를 유튜브에서 링크해봤음..
상당히 어두운 느낌이지만 계속 듣다보면 어둠속에서 밝은 빛줄기가 있는 그런 느낌..
http://www.youtube.com/watch?v=Kz8WFvCHc4E&NR=1
이건 히트친 노래 "혈액형"을 러시아 여가수가 리메이크해서 추모행사때 부른건데
상당히 들을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