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치킨 팔던 노인

제에엘리이 작성일 10.12.19 01: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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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닭세권에 내려가 살 때다. 피자를 사러 가는 길에, 롯데마트에서 일단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BBQ 본사 맞은편 길가 롯데마트에서 닭을 튀기던 노인이 있었다. 닭 한 마리 가지고 가려고 튀겨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은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닭 한 마리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BBQ 나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은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튀겨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처음에는 빨리 튀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묻히고 저리 뒤집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익었는데, 자꾸만 더 튀기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축구 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튀기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구울 만큼 구워야 피자가 되지, 밀가루가 재촉한다고 피자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튀긴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축구가 곧 시작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텀블러나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축구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튀겨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안 익는다니까. 닭이란 제대로 튀겨야지, 튀기다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튀기던 것을 꺼내어 식히면서 태연스럽게 치킨무를 직접 만들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다시 튀기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닭이다.

축구중계를 놓치고 재방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 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맞은편 BBQ본사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선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통크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치킨을 내놨더니 아내는 바삭 하게 잘 튀겼다고 야단이다. 전에 배달시킨 네네보다 참 맛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튀김옷이 얇으면 퍼져서 맛 없고 기름 흡유량이 많아 느끼하며, 튀김옷이 두꺼우면 속까지 안 익을 수도 있고 옷에비해 치킨살이 적다고 한다. 요렇게 꼭 알맞게 튀긴 것은 좀처럼 먹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BBQ만 해도 그러다. 브라질닭을 국산닭으로 속여 팔아가며 돈은 4배가 비싸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튀긴 것도 아니고 단지 깨끗한 기름에 튀긴 것이다.
한번 튀긴 것보다 두 번 튀겨 더욱 바삭함을 주고 처음 튀기면서 흡수된 기름이 빠져나와 기름이
쫙 빠졌던 것이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튀겨 낸 치킨을 만들어 냈다.

이 닭다리도 그런 심정에서 튀겼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치킨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치킨에 맥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튀기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튀기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BBQ점을 바라보았다. 파리 한 마리 날리지 않고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전화기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닭을 튀기다 한번도 울리지 않던 전화기를 바라보던 노인의 통큰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아들이 오븐에 구운닭을 뜯고 있었다. 전에 통큰치킨을 먹던 생각이 난다. 튀긴닭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시장치킨을 볼 수가 없다. 양념반 후라이드반인 애수를 자아내던 서류봉투에 담긴 치킨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닭을 튀기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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