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도와 일본도의 차이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으시던데요.
심지어는 방송에서 조차 조선의 생활양식에 왜도가 버젓이 걸려 있는 모습조차 보여서.잠시 조선도와 일본도의 차이를 올려 볼 까 합니다. 그래서 그 전에 조선도의 특징을 알아 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운검, 패도, 패검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름이 다를 뿐 환도의 일종이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예도, 쌍수도, 쌍검, 왜검 등의 명칭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검범의 명칭일 뿐이며, 실제로는 대부분 환도를 사용하여 수련했고,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환도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이며, 중국에서는 원나라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습다.
초원에서 널리 유행한 외날 곡도가 몽골의 영향을 받아 고려말부터 유입된 것이 유래로 보고 있으며. 길이는 비교적 짧고 칼의 휘임은 일반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칼의 중간 정도지라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유물로 보면 그 정도가 제각각입다.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의 설명을 보면, 당시의 환도는 칼머리에 두석 장식을 둘렀고, 칼자루에는 구멍을 뚫어 홍조수아紅條穗兒를 드리웠으며, 칼자루감개나 칼자루싸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칼집은 어피로 감싸고 검은색이나 주홍색으로 칠했다고 나옵니다.
보병용 : 칼날 55.63cm / 자루 20cm / 합계 73.63cm
기병용 : 칼날 49.60cm / 자루 16cm / 합계 65.60cm
조선시대의 병사들은 일반적으로 활1~2자루에 화살 20여 대, 갑옷과 환도를 착용한 중무장이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 300보를 달려갈 수만 있어도 갑사(직업군인)로 채용될 수 있었다. 때문에 가벼운 검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갑옷 때문에 찌르기에 효과적인 직선형의 짧은 칼날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도에 대항하기 힘들다는 것이 확인되어 환도의 길이가 90cm까지 늘어났지만, 결국 조선 후기에는 환도 자체가 의장품화 되어 50cm정도의 짧은 환도나 아예 대나무로 만든 것들이 제작되었죠.
사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기에는 화약무기와 활에 대한 의존도와 무보다 문을 숭상하여 무예나 무기는 천한 것이라는 사상이 팽배했기에.
칼이나 기타의 무기류가 발전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사진은 왕의 호위무사인 운검이 소지한 환도인 운검(雲劒)
조선 환도는 상당수가 배형도로서, 이 경우 단면의 구조가 완만한 배 모양이인데요. 이는 중국에서도 당나라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호사설>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의 육각도(일본도)를 얻으면 경사면을 갈아내서 배형 구조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고. 일본도와 같은 육각구조나 조각도와 같이 한쪽만 깎아 날을 세운 사각구조도 있습니다.
왼쪽 배형 조선도의 단면 오른쪽 일본도의 한 형태인 6각도
이것이 왜도와 조선도의 차이점 첫번째입니다.
개화 부근의 기록을 따르면 아예 서양함선에서 노획한 세이버도 환도로 묶어서 기록해 놓고, 그에 영향을 받은 서양식 외장의 스타일을 참고한 변종환도도 나오니말입니다..;;;.
암튼...
왜도와 조선도의 두번째 차이는 요코테의 유무라고 보시면 될 것 입니다.
세번째로는 코등이인데요.
바로 이것이 코등이입니다.
네번째의 차이는 잠금장치인 잠금장치의 유무인데요.
이후 조선 중후기에 들어서면서 클립을 이용한 버튼식 잠금장치가 도입되었다.이러한 잠금장치는 클립을 호인의 내부에 장착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클립 자체는 물론 잠금장치를 보호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일본도의 경우 군도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장치가 거의 없습니다.
다섯번째로는 칼자루의 모습인데요.
<무예도보통지>에서는 한쪽 방향으로 엇갈려 감기가, <융원필비>에서는 일본도와 유사하지만 끈이 교차하는 매듭의 횟수가 훨씬 적은 방법이 나와있다지요~.칼자루는 칼집과 동일한 목재로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하며, 가끔은 사어피(沙魚皮, 상어가죽)로 싸고 가죽끈으로 감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이, 세종실록에 나타난 환도를 보면 칼자루에 끈으로 감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잡이가 어피로 되어 있는 어도(일명 역날검, 역인검이라 함)
여섯반째로는 패용 방식입니다.
우리나라 환도의 경우 손잡이를 뒤로 가게 패용을 하죠.
이런 방식은 조선시대는 칼보다는 활이 더 중요한 무기였기 때문에 칼을 일본처럼 손잡이가 앞으로 향하게 찰 경우 활 쏠 때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만큼 빠른 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칼은 보조무기이고 최우선 고려 대상은 활을 얼마나 편하게 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관심사였다는 것이죠.
이런 것은 비단 조선 뿐이 아니라 옆동네인 청나라도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다들 아시다 시피 뭐... 킁...;;;;
그리고 7번 째로는 띠돈의 차이인데요.
칼집에 쿠리카타라고 불리우는 고정장치가 있어 허리춤에 그냥 찔러 넣어도 빠지지 않는 왜도에 비해 우리는 띠돈이라는 고리등을 사용해 뜨로서 허리춤에 묶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띠돈이 도드라져 보이는 어도
일본의 왜도의 경우 대나무 못인 메쿠기(뭘 메꾸는지..;;;;)를 사용해 날을 고정 시킵니다. 그래서 왜도는 칼을 자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칼을 분해해 쉬게 만든다는 시라사야에 보관하죠.
시라사야 형태로 보관중인 왜도(결합사진)
시라사야 형태로 보관중인 왜도
그와 반면 우리의 환도는 구멍뚤린 금속 핀으로 고정하여 이곳에 홍조수아라는 끈을 넣어 사용합니다.이 홍조수아는 잡고 있는 칼자루가 손에서 미끌어 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손목에 묵어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한번 만들어 지면.. 떄려부시(?)기 전에는 분해가 불가능 하다는거....
9번째는 칼집의 재조방법입니다.
왜도는 단풍나무등을 반으로 갈라 칼날이 들어갈 부분을 파내고 둘을 찹살풀등으로 붙여 옷칠등으로 마무리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칼자루는 왜도에 비해 상당히 가볍고 가는데요.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아주 가는 갈대나 한지, 삼배등을 엮어 그 위에 옷칠을 하여 마무리하죠..... 즉.. 가볍고 단단하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