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약 20일간 한국에 머물렀었습니다. 미국에서의 5년의 시간이 짧을 수도 있겠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가 보니 그동안 당연시했던 것들이 참으로 생경하게 다가오더군요. 여기서 한국 체류를 통해 느낀 몇 가지 충격(장점들)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당일배송의 충격
입국 당일, 새벽부터 인터넷을 하다가 지인들께 선물할 요량으로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책을 몇 권 구입했습니다. 결제를 마치고 점심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세상에. 경비실에 책이 도착해 있더군요. 이건 빠른 정도를 넘어서서 그냥 '왜 이렇게까지 빨리 와야 했나요..'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의 스피드였습니다.
입금시점부터 배송까지 채 1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미국에서 배송에 대해서는 한도 끝도없이 관대했었습니다. 한국처럼 반나절 생활권이 불가능한 나라이다 보니 물품 배송에 보통 3일은 기본이고, 심한 경우 3주까지도 기다려 보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익일 배송을 하려면 물건값의 몇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니 포기한지 오래입니다. 한 미국 가전 판매 웹사이트에서 30달러(약 4만원)짜리 메모리카드를 장바구니에 담은 뒤 배송료를 조회해 보았습니다.
다음날 도착하려면 제품 가격(4만원)+배송비(약 5만원)가 추가로 붙는 미국의 현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오픈마켓과 비슷한 아마존의 개인거래 코너를 이용하는 경우 판매자들이 자신이 어디 사는지를 적어 놓는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판매자가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지가 제품구입의 최종 결정 요소(빠른 배송)가 되곤 하니까요.
노란색 표시부분을 보고 거주지에서 가까운 판매자에게 주문해야 배송기간을 하루라도 단축시킬 수 있다.
초고속인터넷의 충격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서는 전자기기와 별로 친숙하지 않으신터라 집안에 설치된 인터넷의 종류가 무엇인지, 사용중인 070전화 사업자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십니다. 한국으로 들고간 노트북으로 무심코 집에서 잡힌 무선인터넷을 통해 700MB가 넘는 데이터를 회사로 전송해 보았는데, 잠시 부엌에서 물을 끓이는 사이에 전송이 완료되더군요. 한국의 인터넷이 빠른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가격대가 높은 상품을 일부러 신청하거나, 속도를 올리기 위해 좋은 공유기를 구입하는 등의 튜닝을 거치지 않은 '컴치' 부모님 집에 달린 무선랜 성능도 이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인터넷 속도 광고. 3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50Mbps급 인터넷을 할 수 있다.
미국에서 50Mbps 서비스를 받으려면 액면가만 15만원이 넘는다.
미국에서의 인터넷 상황은 어떨까요?요즘에는 광케이블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고속 상품이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제가 거주하는 지역(미국)의 초고속 인터넷 상품의 경우 가격이 한달에 8-15만원정도(60-130달러) 합니다. 이걸 저렴하게 이용하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사용할 일도 없는 집전화와 케이블TV 결합상품으로 신청해야 하는데, 이경우 인터넷 자체 가격은 저렴해진다 해도 총액은 이미 월 10만원을 훌쩍 뛰어 넘습니다. 이마저도 시한부 행사인 경우가 많아서 기간이 끝나면 사용료가 배에 가깝게 뛰고, 상담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넷을 해지하겠다고 떼를 써가며 연례 행사처럼 가격 협상을 하곤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홍보하는 속도와 실제 이용 속도와의 차이가 큽니다. 제가 사용중인 패키지의 경우 30Mbps급이라고 홍보하지만, 그 체감 속도는 훨씬 느립니다. 오죽하면 미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공짜 무선인터넷 속도를 측정해 올린 뒤 '한국의 공짜 무선 인터넷이 미국에서 쓰던 50달러짜리 인터넷보다 훨씬 빠르다.'며 자랑을 하는것이 유행일 정도입니다.
한 미국 누리꾼이 한국 숙소에서 올린 공짜 무선인터넷(왼쪽) 비교한
나의 미국 현지 인터넷 속도(오른쪽, 월 8만원). 절망이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충격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의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을 주간생활자와 비슷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당, 대형 마트, 편의점, 사우나들이 24시간 영업을 하며, 대중 교통의 경우 택시 외에는 크게 대안이 없어 보이지만, 대신 교통체증이 없다는 엄청난 잇점이 있어 할증료가 있다 하더라도 주간에 비해서는 요금이 저렴하거나 비슷한 수준입니다. 만약 문을 닫은 곳은 배송 신청을 하면 바로 다음 날 해결이 되지요.
미국에서는 올빼미족들이 밭을 붙일 곳이 많지 않습니다. 일단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은 뉴욕 등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야간에도 꾸준히 손님이 몰리려면 인구밀집도가 높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미국 상점가는 주택가와 거리가 멀어서 손님 유치도 힘들고, 지역 자치단체별로 영업제한시간을 두고 있어서 24시간 영업 허가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월마트 같은 대형 수퍼마켓은 종종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도 있지만 이마저도 주택가와 멀찍이 떨어져 있기에 차를 끌고 30-40분 운전해야 도달하는 거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갑자기 한 잔 생각이 나거나,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볼 때 가볍게 전화 한 통으로 근사한 식사가 가능한 한국의 배달 인프라, 그리고 주택가와 인접한 상점가들이 부러웠습니다.
한국, 맨날 시끌벅적하고 불평불만도 많지만, 강대국,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바라보면 부러운 점도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