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인생을 살아간 과학자 프리츠 하버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며 인류가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 구세주클로린을 비롯한 여러 독가스를 개발한 파멸자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던 조국 독일로 부터 배신 당한 불운아 1.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한 구세주
그가 살던 시절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농업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질소는 식물의 성장에 없어서는 안될 원소인데 땅속에 있는 질소화합물은 식물에게 착취를 당한 후 보충되지 않아 농업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질소는 공기중 5분의 4를 차지한다. 수 많은 과학자들은 공기 중의 질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얻는 방법을 연구했지만 아무리 해도 에너지 소모가 적은 경제성 있는 암모니아를 생산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버는 1905년 1천℃에서 철을 촉매로 사용해 질소와 수소로부터 소량의 암모니아를 합성할 수 있다고 발표했으며 촉매를 바꿔 5백℃ 2백기압에서 6~10%의 수율로 암모니아를 합성해냈다. 결국 하루에 20t의 암모니아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그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고 인류는 식량난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2. 독가스를 개발한 파멸자
그가 보여준 독가스 개발에 대한 집념은 그야말로 광적이였다. 그는 독성이 더 강한 시안화수소산 개발을 부추겼고
이 독극물은 훗날 자이클론B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비롯해 집시등을 제거하는데 사용된다. 1915년 4월 22일 독일군은 프랑스군에 대해 인류 최초로 독가스를 살포한다. 독일군 진영 쪽에서 노란 안개가 피어 오르고 그들에게 접근한다. 프랑스군은 이 노란 안개가 연막탄이라 판단 참호의 사격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 노란 안개가 프랑스군 진지에 도달한그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폐가 타들어 가는 인간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으며 프랑스군인들은 온 몸을 떨며 죽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날 최소 5000여명의 프랑스 병사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이 인류 최초의 독가스 살포 역시 프리츠 하버의 발상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철저한 독일민족주의자이자 주전론자였으며 독가스 개발에 미쳐있던 살인자이자 과학자였다.
3.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한 불운아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은 충성스러운 독일인임을 믿고 있었으며 그 누구보다 자신의 조국 독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였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은 자신의 조국 독일을 회생시키기 위해 바다 속의 금을 찾아 10년이란 시간을 조국에게 바치기까지 한 인물이 바로 프리츠 하버다. 독가스 개발도 그렇다 그는 자신이 개발해놓고도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이 신뢰하고 충성하는 독일 그 자체의 몫이라 선언까지 하던 인물이였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그는 충성스러운 독일인이기 이전에 유태인이다. 그의 친적 중 일부는 그가 만든 자이클론B로 인해 집단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 역시 이민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 내평생에 지금처럼 유대인이었던 적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