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 편]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고대 유렵의 기사 및 군인, 순례자와 성직자, 여행가들에 의해 알려지게 된 7가지 신비롭고 경이로운
건축-조형-조상물들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7 wonders in the world)★ 라고 합니다.
7가지 중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건축물은 이집트 기자에 있는 대피라미드뿐이네요..
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는 모두 제 4왕조(B.C. 2600 ~ B.C.2480)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큰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높이가
무려 148미터에 이른다고 한다(현재는 137미터).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사용된 돌은 무려 230~250만개. 돌 하나당 무게는 2.5톤이나 나간다. 이런 돌로 돌집을 쌓으면 무려 12만명이나 수
용할 수가 있다고 함.
대피라미드 옆 지하 구덩이에서 발굴 복원된 쿠푸왕의 '태양의 바지선' 수천개의 파편들을 이어붙여 복원한 것이다.
쿠푸왕의 '태양의 바지선'이 뭍혀 있던 지하 구덩이의 지붕 역할을 했던 거석들
태양의 바지선에서 발굴된 잔디로 꼬아만든 밧줄 더미
기자의 피라미드 ,좌로부터 쿠푸의 대 피라미드 ,카프레 피라미드
멘카우레 피라미드 ,카프레 피라미드 정상에는 회외벽이 남아있다
피라미드에는 2개의 입구가 있는데 사진은 두 입구가 만나는 지역의 통로 모습이다.
화강암으로 쌓여진 쿠푸왕의 묘실
바빌론의 공중정원
바빌론의 왕이였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녹음으로 우거졌던 메디아에서 자란 왕비는 평탄하고 비가 잘 오지 않아 황량한 바빌론으로 시집오자,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였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왕이 왕비를 위하여 메디아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중정원이라 불리는 이유는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닌 정원이 높이 솟아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단식 테라스로 된 노대에 흙과 풀,
수목 등을 심어 멀리서 보면 마치 삼림이 우거진 작은 산처럼 보였다고 한다.
에피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
사냥,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인 아르테미스를 모시기 위해 에페수스 사람들이 건설한 신전으로 기원전 6세기경에 만들기 시작하
여 120년에 걸려 완성되었다.
높이 20미터 정도의 백색의 대리석을 깎아, 127개의 기둥을 이오니아 식으로 세우고 지붕을 이어 만들었다.
하지만 기원전 356년 10월,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후세에까지 유명해질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고의적으로 이 신전에 불을 질렀다(덕분
에 후세에까지 이름이 남아있긴 하다).
신전이 불타버리자 에페수 사람들은 재건에 착수하였는데 이때 그 곳에 살던 여인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의 귀금속을 팔았고,
각지의 왕들은 기둥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에페수스인들은 복구 사업을 하며 그 당시 가장 훌륭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시전보다 2배나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으로 만들려고 마음먹
고, 파르테논 신전이 높이 10미터 대리석 기둥 58개를 사용한 점을 감안하여 높이 18미터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하여 만들었다.
기원전 250년경에 완성되자 그 규모의 화려함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화려한 신전이 세워지고 그를 보기위해 관광객들과 상인이 몰려들어 영화를 누르던 에페수스시에 기독교의 물결이 밀려왔다.
우상 숭배를 금했던 초기 기독교인들과 에페수스인들과의 마찰은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사도 바울도 이곳에서 우상 숭배를 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페수스 사람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기원 후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해온 고트족들에 의해 신전은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 제우스 상을 조각했던 올림피아의 고대 작업장 유적
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페이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당대 제일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신상으로 높이 90cm, 폭이 6.6미터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신상의 높이는 무려 1
2.4m로 천장에 닿아 있었다.
426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신전파괴령에 의해 신전이 헐리고, 그 후 지진과 하천의 범람으로 신역이 3-5미터 아래 모래층에 매
몰되어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지중해 로도스섬의 콜로서스(Colossus)
▲ 로데스섬의 고대 그리스 유적
지중해에 있던 도시연합국가는 로도스섬에서 상업을 번성하고 지중해 유수의 무역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이를 마케도니아의 데메트리오
스 1세가 함락시키기 위해 로도스를 포위하였는데, 도시연합국가 쪽이 그를 무찔렀다.
그 기념으로 36m짜리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청동상을 세우게 된다.
알려지기는 한손으로 눈을 가리고 항구 입구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거상은 BC 225년경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다.
페르시아의 마우솔레움
카리아의 통치자 마우솔로스의 무덤으로 그의 누이이자 미망인인 아르테미시아가 BC 353년~351년경에 지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건축가 피테우스와 예술가 스코파스, 브리악시스, 레오카레
스, 티모테우스 등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거의 정사각형으로 지어진 이 묘는 그 둘레가 125m에 이르렀다고 한다.
훗날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남아있는 돌은 그 지방의 건물을 짓는데 다시 사용된 듯 하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현 카이트베이 요새 자리에 세워졌으나 대지진으로 함몰)
BC 280∼250년 무렵 이집트 파로스섬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등대.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시로 소스트라투스가 건설하였다고 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는 제방(길이 약 1km)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대는 이 섬의 동쪽 끝에 있었다.
등대의 높이는 135m이고 대부분 대리암으로 되어 있었으며 3단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맨 밑단은 4각 모양, 가운데 단은 8각 모양, 맨 윗단은 원통 모양이었다. 등대 안쪽으로는 나선 모양의 통로가 꼭대기 옥탑까지 나 있었고 옥탑 위에는 거대한 여신상이 솟아 있었다. 옥탑 부분에는 불을 태우는 설비가 있었다고 하며 불빛을 비추기 위해 반사렌즈나 거울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 오르면 수십 km 이상 떨어져 있는 지중해가 보였으며 반사렌즈에 비친 불빛이 40여 km 밖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등대는 1100년과 1307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알려져 왔는데, 지난 1994년 바닷속에서 높이 4.55m, 무게 12t에 이르는 여신상을 비롯한 등대 잔해 수백 점이 인양되어 그 존재를 드러냈다.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이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세웠는지, 어떤 방법으로 불을 지펴 비추었는지 현재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