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의 셀프 빅엿

vngn7 작성일 11.12.20 19: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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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지아 & 소속사가 '돈 때문에 이혼 소송 했던 게 아니다'는 것을 방증하기 위해서 정치가들까지 동원해서 "할아버지가 부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부를 하는 등 덕망까지 갖춘 분이었다" 라고 언플하며 육영 사업까지 기여를 했다고 대대적으로 떠들어 댐.   Ex) 배우 이지아가 육영사업에 기여한 재력가 집안의 자손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이지아 소속사 키이스트 관계자는 19일 "이지아는 고 김순흥씨의........."
    2. 일제 치하 시대에 부자? 라는 것에 의혹을 품은 네티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   3. 친일파 사전에 등재ㅋㅋ   4. 알고보니 김구 선생이 작성한 친일파 살생부 목록의 1순위권에 올라와 있을 정도.   5. 일제 치하에서 서울 사대문 안에 유일하게 두 채 있던 99칸(약 180평) 저택의 소유자   6. 업적 : 총독부 중추원 참의까지 지내고, 독립운동가들 탄압하라며 자금도 지원.             참고: 김순흥    그는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국방 관련 단체에 헌금을 기부했다. 그가 일제 시대에 활동한 내역은 다음과 같다.[2]
1933년 8월 조선나예방협회 기금으로 1000원을 냈다.
1934년 6월 29일 조선중앙일보사 감사역을 맡았다. (사장 여운형)[3]
1936년 2월부터 합자회사 구정상회 사장으로 있었다. 이때 교하간역교(校河簡易校)를 지을 땅을 1,500평을 기부하였다.[4]
1936년 7월부터 금융신탁회사인 우익상사 취체역[5]으로 있었다.
1937년 7월 22일 국방헌금 1만원을 종로경찰서에 헌납했다. 그는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하고자 적은 돈이나마 바치오니 받아주십시오"하고 돌아갔다.[6]
1937년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로 2500원을 냈으며, 같은해 9월 '경기도군용기헌납발기인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비행기 대금 500원을 냈다.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일선융화'를 내걸고 결성된 동민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가 전시체제 강화와 유도황민화를 위해 전 조선 유림을 동원하여 조직한 조선유도연합회에서 참사를 맡았다.
  1939년 9월 주식회사 쇼와직물을 설립하여 사장을 역임.
  1940년 9월 중앙연료주식회사 취체역을 맡았다.
  1943년 8월 징병제 실시에 감격하여 국방헌금 3000원을 헌납했다.
  1944년 4월 일본 정부가 주는 감수포장을 받았다.   당시 1만원 = 현재 5억원...
              덧) 이지아씨가 친일파의 후손이니..연좌제로 처벌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소속사가 이지아를 띄울려고 정치인들까지 동원해서 언론플레이했는데... 까놓고 보니.. 셀프빅엿이었다는 게 개그!!!!!   이래저래... 이지아씨 좀 안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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