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은 독립군의 군자금을 만들기 위하여 노름꾼, 주색잡기,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살면서도 자기 가족에게까지도 철저하게 함구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임종 무렵에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독립군 동지가 머리맡에서 “이제는 만주에 돈 보낸 사실을 이야기 해도 되지않겠나?”.고 하자 “선비로서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 할 필요없다”고 하면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지금 안동 독립운동기념관이 이 김용환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용환의 무남독녀 외딸로서
시댁에서 장롱 사라고 받은 돈도 아버지가 노름으로 탕진하여
어머니의 헌 농을 싸가지고 간 김후옹여사는
1995년 아버지 김용환의 공로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습니다.
훈장을 받는 그 날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회한을
‘우리 아베 참봉 나으리’ 라는 글을 발표합니다.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 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서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 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 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