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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전 광주 북구 효령동 영락공원묘지는 울음바다였다.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막내 동생을 잃은 정모(21)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머니가 무덤에
안장되는 순간 "나 때문에, 나 때문에"라며 울부짖었다.
정씨는 3일전까지만 해도 이런 비극이 자신과 가족에게 찾아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24일 오전, 강원도 한 부대에서 이등병으로 복무 중인 정모(21)씨는 면회를 오기로 했던 어머니(45)와 누나(23),
그리고 막내 동생(13)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병 교육 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된 이후 첫 면회였다. 정씨에게 가족들을
기다리는 1분, 1초는 마치 1년처럼 길었다.
그때 부대로 정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정씨는 면회 온 가족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울음 섞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면회를 오던 중, 누나와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한
막내 동생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도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군대에 간 아들과 동생, 형을 3개월여 만에 처음 보는 날.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기 위해 새벽 일찍 광주를 출발했던
정씨의 가족들이 이날 오전 4시10분께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안성휴게소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정씨는 곧장 휴가를 얻어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모든 게 꿈이길 바랐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교통사고 후 의식을 잃은 어머니는 결국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큰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다음날 새벽 숨을 거뒀다.
사실 정씨는 아버지가 상의군경(국가 유공자)이기 때문에 복무 단축 혜택을 받아 공익근무 등으로 6개월만 근무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군 복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이 같은 참변으로 가족들을 잃게 됐다.
이 때문인지, 정씨는 광주 한 장례식장에 모신 어머니의 빈소에서 "나 때문에 한순간 가족 절반이 사라졌다"는 말을
반복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정씨의 사정은 앞으로가 더욱 힘들다. 하반신 마비로 보훈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을
정씨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야 하지만 다음 주 정씨는 일단 군에
복귀해야만 한다. 생계유지 곤란으로 병역 감면을 받을 수 있지만, 이 과정만 수개월 가량이 걸린다. 당장 동생
뒷바라지와 아버지의 병간호를 아무도 해줄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자치단체와 각 기관,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정씨의 한 대학교 선배는 "너무나 큰일을 겪어 아직도 경황이 없다. 주변의 관심이나 위로까지도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몸이 아픈 아버지와 여동생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큰 것 같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