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홍명보, 그의 리더쉽

생갈비전문 작성일 12.12.07 14: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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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 처음으로 뽑혔을 떄 같은 방을 썼던 선배가

홍명보 감독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제 성격이 훨씬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룸메이트가 홍명보 감독님이라니 ..

아마 상상이 가실껍니다.

명보 형이나 저나 말이 없는 편이라 함께 방에 있을 때는 정말 고요했습니다

대선배와의 긴장되는 동거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명보 형은 방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명보형은 저를 배려하려고 그랬던 겁니다

몇년 전 출간했던 제 책에 실렸던 명보형의 글입니다

박지성은 띠 동갑 후배다.

그가 막 대표팀에 들어왔을때 나와 한방을 써야 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내 경험상 그럴때는 선배가 자리를 비켜주는 게 상책이다

지성이가 불편할까봐 잠을 잘때까지 웬만하면 방에 들어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 박지성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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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파주NFC에서의 일이다

갓 20세이하 청소년 대표팀 지휘를 잡은 홍 감독은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선수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가만히 보니 선수들은 맛있게 먹고도 잘먹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식당 문을 나섰다.

숙소를 청소해주는 아주머니와 마주쳐도 그냥 쌩하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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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어린 친구들이 자기들 챙겨주는 분들한테 인사할줄도 몰라?'

홍감독은 그길로 선수들을 소집했다

우리가 숙소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해주시는 분들에게 존경심을 표현해야돼

그 모든 분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도록 해

선수들 대다수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성을 중요시하는 홍 감독은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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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지 않는 선수는 다음 선발 시 불이익을 줄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홍감독은 먼저 솔선수범했다

주방 아주머니는 물론,숙소에서 방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들과 청소 아저씨

장비 담당자,마사지사등 그들을 위해 고된 일을 해주는 스태프를 공개적으로 챙겼다

감독이 솔선수범하는데 하물며 선수들이 안 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홍감독은 당시 소집 훈련을 마치고 이집트 3개국 국제대회 참가 차 떠날 때에는

파주 NFC 사상 처음으로 관리 직원들을 모두 모셔놓고 선수들에게 단체인사를 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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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감독님 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특정 선수의 실수를

지적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선수 이름을 거론하는 건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일입니다.

무엇이 잘못인지 팀 안에서 말하면 될걸 밖에다 얘기하는 건 절대 안됩니다

홍감독은 지도자가 특정 선수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도 피해야한다고 말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어떤 선수가 잘했다고 말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경기 중 그 선수를 도와준 사람이 많은데 그렇다면 모든 선수의 이름을

다 말해야 하지 않나요 ?

골을 넣은 선수도 훌륭하지만 어시스트 해준 선수도 훌륭하고

그전에 상대에게 볼을 뺏어 공격수에게 전달한 수비수들의 활약도 소중한겁니다

잘했든 잘못했든 감독이 선수의 이름을 밖에다 얘기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 얘기는 개인적으로 전하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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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감독의 리더쉽은 선수 시절부터 남달랐다

타국의 땅,J리그에서도 그의 카리스마는 특별했다

가시와 레이솔과 나고야 그램퍼스 간의 1999년 나비스코컵 2차전,

1차전에서 3:1로 승리했던 가시와는 2차전에서 전반에만 2골을 내줬다

가시와의 하프타임 락커룸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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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는 물론 J리그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니시노 아키라 감독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켄토 상, 이리 좀 와 봐요,"

락커룸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홍명보가 일본어 통역인 타카하시 켄토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켄토가 오자 홍명보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제 얘기 하나도 빼지 말고 일본말로 전해주세요"

과묵한 홍명보의 뜻밖의 부탁에 당황한 켄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냐?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서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유럽에서라면 흔한 풍경이겠지만, 여긴 일본이다.게다가 감독도 앞에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켄토는 일단 홍명보의 말을 전하고 선수단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불쾌한 표정을 짓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니시노 감독이 입을 열였다.

"명보가 말한 것처럼 모두 스스로가 힘을 내지 않으면 안돼"


 


홍명보가 가시와에 입단한 건 1999년 초였다

나비스코컵 2차전이 열린 10월까지 홍명보가 선수단 앞에서 큰소리를 낸적은 없었다.

하지만 홍명보의 카리스마는 스폰지가 물에 젖듯 조용하게 선수단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실력,상대를 압도하는 눈빛 ..

가시와 선수들은 ' 보스 ' 가 왔다는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보스가 입을 열자 바닥났던 가시와의 근성은 살아났고

가시와는 연장 승부 끝에 거둔 극적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홍명보는 경고 누적으로 결승행이 불발되었다

경기 후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때 가시와의 막내 선수가 용기를 내고 물었다

"홍 상 , 결승전에 못 뛰는거 아쉽지 않으세요?

아까 나고야의 역습 상황에서 경고를 받을 줄 알고도 반칙으로 끊어 내신 것 아니예요?"


 

홍명보는 결승전 출전 따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가 결승전에 못 뛰는 건 중요하지 않아,팀이 결승전에 가냐,못가냐가 중요한 거지"

니시노 감독은 결승전을 준비하는 선수단에 홍명보를 포함시켰다

선수단 미팅 때도,숙소로 쓰던 호텔에도 홍명보의 방을 따로 마련해주었다.

니시노 감독은 경기 직전 홍명보에게 선수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무표정하게 감독의 말을 듣던 홍명보가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2위는 필요 없어,2위한테 돌아오는 건 위로의 말뿐이야"

그 다음시즌 니시노 감독은 홍명보에게 주장직을 맡기게 됐다

2000년 전기 리그 세레소 오사카와의 경기가 있었다.

가시와 선수들은 경기 전부터 기가 죽어 있었다.

시쳇말로 가시와는 세레소의 밥이었다.

가시와는 세레소만 만나면 고양이 앞의 쥐였다.

모두가 '세레소 악몽'을 떠올리고 있을 때 홍명보가 말했다.

 

"난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어.오늘 우리는 세레소에 복수를 할 기회를 잡았어.

흥분되지 않나?"


 

그날 가시와는 세레소를 5:1로 꺾었다.


 

홍명보 감독은 종종 말 대신 글로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주었다.


 

멕시코와의 조별예선 1차전과,스위스와의 2차전을 앞두고는 승점 3점을 뚯하는

"3"을 보여주며 1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위스전에서 승리해 목표를 달성하자



 

가봉과의 3차전 전에는


 

붉은색 글자로 된 '투혼'을 비춰주었다.

3일 간격으로 두 경기를 치러 힘들겠지만 젖 먹던 힘까지 짜자는 의미였다.

 

 

 

영국전에서는 한자로 '배수진'과 '더이상 물러설 수 없어 힘을 다해 싸운다'란

뜻풀이를 함께 적어서 보여주었다.

브라질전을 앞두고는 홍감독이 직접 작성한 편지를 선수들에게 띄웠고,


 

한일전을 앞두고는 이순신의 어록 중 '필사즉생필생즉사'얘기를 꺼냈다.


 

2009년 청소년 대표팀의 첫번째 소집 훈련이 열렸던 날

훈련 중 선수들을 절반으로 나눠 8대8 볼 뺏기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홍명보감독님은 갑자기 공을 멈추게 하더니 고함을 쳤다




"너희는 지금 감독이 틀리게 하고 있는데 왜 그대로 하는거야,왜 다들 꿀먹은 벙어리야 ?

마침 감독님이 공격팀에만 유리하게 공을 줘 불공평하게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찰나였다.

감독님은 "시키는 대로 훈련하지 말고 생각을 하면서 해"

"왜 저쪽에만 공을 주는거냐'고 말할 줄 알아야 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동안 배워온 축구는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됐었거든요.

하지만 감독님은 정반대로 지도하시는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선수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훈련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야 선수가 책임감을 더 갖고 훈련에 나선다는 논리였습니다.

- 김보경 -

 

 

일본과의 3-4위전에 앞서 올림픽 팀에 가장 큰 고비는 홈팀인 영국과의 8강전이었다.

'축구 종가'영국과의 대결에 홍감독은 물론 코칭 스태프,선수들 모두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는 이기지 못하면 탈락,한순간의 실수가 팀의 운명을 경정짓는 벼랑 끝 승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조별 예선 3경기를 일주일 사이에 치르다 보니



 

선수들 체력은 방전 지경에 이르렀고 선수들 몸도 성한 데가 없어 최선의 조합을 구성하는 데 애를 먹었다.

많은 수비 훈련을 한 덕분에 수비와 미드필드 구성은 어느정도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공격진은 선뜻 결정하기 힘든 상태였다.


 

박건하 코치는 회의에서 조심스럽게 현 상황을 보고 했다.

"오른쪽의 남태희는 체력적으로 떨어진 상황이고,김보경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동원은 컨디션도 조금 그렇고 예선에서 많이 뛰지도 않았고 ..."

 

 

혼란스러운 상황 홍감독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의외의 선수를 호명했다.

"동원이 어때 ?"


 


코치들은 다소 흔들렸지만 뭔가 확신에 찬 홍감독의 목소리와 눈빛에 코치진도 이내 동의했다.

홍감독이 100% 준비가 되지 않은 지동원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1년간 EPL 선더랜드에서 당한 벤치 설움을 토해내기 바란것이다.

지동원은 첫시즌 19경기 출전을 했지만 그중 17경기가 교체 출전이었다.

게다가 올림픽 팀에서도 벤치 대기멤버니 기분 좋을리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동원이었다.

홍감독은 그런 지동원을 생각하며 14년전 일을 떠올렸다.

1998년 4월 1일,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

당시 스물 아홉살의 선수 홍명보는 소집 멤버 26명 중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결전의 순간을 기다렸다


 

당시 몇달전 벨마레 히라츠카로 이적한 홍명보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고 패스도 받지 못했다.

때문에 홍명보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홍명보는 마음속으로 칼을 갈며 한일전을 맞이했고

울분을 쏟아내는 투쟁력 넘치는 플레이로

2대1 승리를 이끌어 냈다

홍감독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영국을 상대로 가장 독이 올라 있는 선수가

지동원일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홍 감독은 지동원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었다.


 

회의실에서 지동원과 마주한 홍감독은

"1년동안 영국에서 어떻게 생활했고

혹시 무시당한 것 있으면 말해봐"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지동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해도 될까'하는 망설임'

지동원은 이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흑인 선수들과는 괜찮았는데,백인 선수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자존심 상하는 일도 생기고 ...

경기에도 나서지 못해 힘들었어요.'

홍감독이 생각한 대로 14년전 자신의 심정과 비슷했다.

그러고는 지동원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동원이 너 영국전에 내보낼 거야,실수해도 괜찮으니깐 영국에서 축구하면서

힘들었던 거 다 풀어."


 

지동원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표정도 확 바뀌었다.

"할 말 있어?"

홍감독의 물음에 지동원의 표정은 '맡겨만 주십시오'라는 것처럼 결의에 차올라있었다.


 

회의실을 빠져나온 지동원은 방에 들어와서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동안 벽을 쾅쾅 치면서

"영국 XX들,다죽었어!"

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얌전한 지동원의 그런 행동에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지동원은 그렇게 한동안 영국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홍감독의 약속대로 영국전에 선발 출장한 지동원은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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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29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용병술이 정확하게 들어맞는,소름 돋는 순간이었다.

 

 

 

 

홍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며 벤치를 박차고 나왔고


 

지동원은 영국을 상대로 한풀이 골 세레머니를 했다.

홍감독은 전반전이 끝난 뒤에는 욕설을 섞어가며 지동원과 선수들의 승부욕에 불을 질렀다.

"영국 애들 봤지?X도 아냐,해보니깐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후에도 지동원은 영국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고 기회가 될 때 마다 슈팅을 날렸다.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지동원의 골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선수들은 하루 이틀이 지났지만 영국전 승리에 도취되어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4강 상대로 브라질로 결정되어 더욱 냉철한 준비가 필요했지만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홍감독은 아직도 영국전 분위기에 도취돼 비몽사몽인 선수들을 흔들어 깨워야한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브라질 경기 영상을 본 후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편지를 띄우고는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우리가 모두 이룬것 같아 보여?

봐!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우리 아주 먼 길을 왔을지 몰라도 우린 언젠간 갈 거란걸 알았지.

사람들이 말했지,"걔들은 안 될 거야."

하지만 이렇게 있는 우릴 보라고.

우리는 여전히 함게이고 여전히 강하잖아.

여전히 너흰 그런 사람이야.

여전히 너흰 내가 달려갈 바로 그사람들,

내가 속해 있는 사람,

여전히 너흰 내가 사는 동안 원하는 사람,

여전히 너흰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니까 ..

선수들의 사기는 유지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쓴소리도 해야 했던 홍감독이 내놓은 묘안이었다.

선수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차분하게 현 상황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영국전이 끝나고 브라질전을 준비하면서 골키퍼 정성룡과 수비수 김창수는

예비명단에 들어있는 선수와 교체될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홍감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때 와일드카드로 뽑혀 호주 시드니까지 날아갔다가 장딴지 부상이 악화되어

결국 짐을 싼 적이 있었기에 이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격려차 직접 이들의 방을 찾았다.

 

 

 

 

홍 감독의 방문에 이들의 표정은 잿빛이 되었다.

"혹시 우리를 대체 선수로 바꾸려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부상이 심했던 김창수에게 홍 감독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몸은 좀 어때?괜찮아?"

괜찮다고도 안 괜찮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깁스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홍감독의 말에 김창수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너무 아프면 그냥 여기서 수술해.집에 갈 생각 하지말고.

구단에도 안 보낸다고 말해놨어.팀이랑 한국에 같이 돌아가는 거야,오케이?"

 

 

 

 

정성룡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지?빨리 회복해서 다음 경기 준비해"

더이상의 낙오는 없다는 말이었다.

부상해도 부축해서라도 함께 가자는 말이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홍감독의 선언적 의미에 선수단에 모처럼

해피 바이러스가 퍼졌다.

사실 선수들은 '대회 중간에 다치면 짐을 싸야 하나'란 걱정이 가슴 한구석에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이런 생각 없이 훈련과 경기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


 

부상자 잔류 소식은 김창수 대타격인 요재석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체자를 뽑지 않다는 건 오재석 본인의 중용을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 아니면 이제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브라질전부터는 정말 죽기 살기로 뛰었다."는 게

오재석의 말이다.

리더의 결정과 말은 이렇게 파급력이 컸다.


 

저는 동메달을 따고도 '독도는 우리 땅'세레모니를 했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생애 한번 뿐일 올림픽 메달 시상식 참석을 위해 런던 웸블리구장으로 가는 버스안에서였습니다.

IOC가 제가 일본과의 3-4위전 승리 직후 문제의 피켓을 들고 뒨 것을 문제 삼아

'동메달 수여를 보류했다'고 전해온것입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적 같았는데 .. 이제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랄까요 ?

그때부터 저는 혼자였습니다.

 

 

 

 

 

동료들이 메달을 받으러 나갈 때도 ..


 


 


그리고 모두가 환영 받으며 귀국한 인천공항에서도 저는 홀로 남아 침묵을 지켜야 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문제가 될수 있으니

인터뷰는 물론,모든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습니다 ..

단지 경기장에 있던 팬이 건네준 피켓을 들었을 뿐이고,애초에 기획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을 텐데,

저를 그렇게 몰아붙이더군요.

더군다나 동메달 수여 보류로 병역 면제 혜택까지 박탈될 수 있다는 말에 크나큰 상실삼에 빠졌습니다.

축하를 받기는 커녕 집에 틀어박혀 가족들과 실의에 빠져 있어야 했습니다.


협회는 귀국 다음 날,대표팀 환영 만찬을 열기로 했는데

제게 그자리에도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행여나 불필요한 잡음이 일어날까 봐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고동락했던 선수들과 마지막으로 추억을 나눌 수 없다는 데 서운함이 컸습니다.

허탈감이 바닥까지 치고 있을 무렵,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홍명보 감독님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감독님의 말씀을 들으며 의기소침해 있던 저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종우야,내일 만찬회 같이 가야지.누가 뭐래도 떳떳하게 입장하게 입장하는 거야.

내 손 잡고 함께 들어가자"

단순히 위로해주시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감독님이 나를 잊지 않으셨구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너희를 위해 나는 마음속에 칼을 품고 다닌다"던 감독님이 저를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저는 당당하게 만찬회에 참석해 땀 흘린 동료들과 다시 런던을 추억하고

이별을 할수 있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 개인을 질책하는 법이 없었다.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쓰고 싶다'며 나선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는 3골이나 내주며 패했는데

이경기에서 선수들의 실수가 종합세트처럼 나왔다.

하지만 홍감독은 그건 팀의 실수라고 일갈했다.

잘해도 팀덕분,못해도 팀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홍감독은 선수 개인을 겨냥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왜냐하면 다 큰 선수들 스스로 무엇을 잘못한지 이미 알고 있기 떄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잖아도 긴장하고 있을 선수에게 채찍을 가하면 정신이 무너질수밖에 없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그다음부터는 좋은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다.

'또 실수하면 어쩌나'란 자괴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홍감독은 이런 얘기를 선수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반복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실수를 두려워해 안 하는게 더 나쁜거야."

특정 포지션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도 가급적 하지 않았다.


 

가령 역습을 허용해 위험한 상황을 맞으면

공격수들이 상대 적진을 수비 안해주면 어떡해.

수비수들이 어떻게 다 막으라고,축구는 열한명이 하는 것이야."라며 선수들을 감쌌다.


 

 

 

 

홍명보감독의 특별한 리더십을 극명하게 알 수 있는 사례로 바로 박주영의 병역 연기 기자회견을 꼽을 수 있다.

당시 기자회견의 주인공이었던 박주영 선수보다 더 화제를 모은 것은 홍감독이었다.

홍감독은 병역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상황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칫 해명 기자회견에서 더 큰 문제가 불거지고

역풍이 박주영을 넘어 자신에게 향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감독으로서 제가 갖고 있는 철학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건 팀과 선수를 위한 감독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선수가 필드 안이나 밖에서 어려움을 겪고 잇을 때 언제든 선수들과 같이 하겠다는 마음이고

그래서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주영이 기자회견이기도 하지만 팀을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나간겁니다.

병역문제는 물론 주영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였지만

올바른 선택을 위한 용기를 주는 것 까지는 감독을 넘어 축구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 기자회견에 참석한 걸 두고 홍명보 답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 반대 의견도 있었다.

올림픽 성적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한 박주영을 감싼다는 것이다.

 

 

 

 

 

"인터넷 댓글은 잘 안 보는 편입니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기사도 일절 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제가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정당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지만

아니라면 내가 설정한 길을 묵묵히 가는 게 중요합니다.

몰론 전제 조건은 내 판단이 옳으냐는 겁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제가 가장 신경쓰고 노력하는 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겁니다."


한일전 준비는 심리전으로 시작했다.

3-4위전이 할일전으로 결정되자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큰눈을 하고는 또박또박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절대로 상대를 자극하는 말을 하면 안돼.칭찬하고 띄워줘.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것만 잘하면 돼.

오케이?"

대체 무슨 말이지? 일본에 직격탄을 날려도 모자랄 판에 일본을 칭찬하라고 ?

선수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홍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홍감독이 이런 지시를 한 것은 영국과의 8강전에서 비슷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 한국 선수들을 잘 모른다"며

우리 선수단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콧대 높은 영국 언론들도 한국을 꺾으면 4강에서 브라질을 만난다며 한국은 안종에도 없다는 듯 김칫국을 마셨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선수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뭐야? 우리를 무시해?""

뿔난 선수들은 미팅룸에 빙 둘러앉아 전의를 다졌다.


 

"긱스,쟤 나이 많잖아.늙었잖아,우리가 한번 발라버리자.tv에서나 보던 박지성의 맨유 시절 동료이자

38세 노장인 영국의 상징,라이언 긱스를 겨냥해 승리를 다진것이다.

피어스 감독이 의도했든 안했든 그의 도발은 우리 올림픽 대표팀의 결속력과 조직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의 다부진 의지는 '축구종가'영국을 비탄에 빠뜨렸다.

이렇게 영국전을 떠올린 홍감독은 '일본을 칭찬하라'는 주문을 하고는 일본이 도발행기만을 기다렸다.


 

한일전 최종 훈련을 마친 뒤 김보경등 선수들은 홍감독의 인터뷰 지시를 잘 따랐다.

"일본 선수들은 스피드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굉장히 좋기때문에 ..."


반면


 

조별 예선에서 세계최강 스페인을 1대 0으로 꺾는등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 일본은

아니나 다를까 의욕이 넘쳤다.

과유불급

일본은 우리를 자극했다.


 

 

 

골잡이 오츠 유키는 " 한국전에서 3골을 넣고 싶다"고 했고


 

기요타케 히로시는 "메달 없이 귀국하는 일은 없다"며 자신만만했다.

일본 언론은 이같은 선수들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한국을 꺾고 동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홍감독의 노림수가 적중한것이다

우리선수들은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접하며 똘똘 뭉쳤다.

 

 

 

- 홍명보의 미라클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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