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인 25일을 사흘 앞두고 눈이 내렸다. 이 때문에 소방관 100여 명이 국회로 출근해야 했다. 박 당선인 취임식장이 마련된 국회의 눈을 치우기 위해서다. 소방관 100여 명은 한 손에 녹색 솔이 달린 빗자루를 들고 국회 앞마당에 소복하게 내린 눈을 치웠다. 지난 밤 중부지방에는 3cm의 눈이 내렸다.
국회 앞에서 물걸레 짠 119 소방관들, 왜?
2주일 전부터 국회에 내린 눈은 항상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언제, 얼마가 내리던 상관없이 싹 치워진 눈은 '이례적'이었다. 2년 동안 정치부 기자로 국회를 출입하는 동안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런 친절은 모두 박 당선인의 취임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간밤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자 '국회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고생 꽤나 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길거리 뿐 아니라 이미 국회 앞마당에 깔아 놓은 4만 5000여석 규모의 의자에도 눈이 쌓였을 터. 그런데 '고생하는 분'이 소방관일 줄은 미처 몰랐다.
이날 오전 9시께 '119' 마크가 찍힌 점퍼를 입은 소방관이 대거 국회에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비좁은 의자 사이를 오가며 눈을 치웠다.
고참으로 보이는 소방관에게 '소방관이 왜 눈을 치우냐'고 하자, "눈을 치우는 게 아니라, 빨리 녹으라고 흩트리고 있다"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치하는 것으로,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과 관련된 것이니 소방관의 업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고생 많으시다'는 인사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웃었다.
그런데, 빗자루를 든 소방관 사이로 걸레를 손에 든 소방관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의자에 맺힌 물을 훑어내고 있었다. 허리를 구부려 4만 5000여 개의 의자를 일일이 닦는 일이 녹록해 보이지 않았다. 금세 걸레가 물에 흠뻑 젖는지 소방관들은 수시로 걸레를 짜야 했다.
이번에는 젊은 소방관에게 말을 걸었다. '소방대원이 왜 의자를 닦나, 이게 업무의 일환이냐','사람을 고용해서 일당을 주고 해야 할 일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아....내가 대답할 부분은 아닌 거 같다"며 말을 아꼈다. 오전 9시부터 눈을 치우고, 닦고 있다는 그에게 '고생 많으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쓴웃음이 돌아왔다. 검은 고무장갑을 낀 그는 "오늘 하루 종일 할 것 같다"며 바삐 손을 놀렸다.
취재 들어가자 '전원 철수'..."행정적 착오"
그런데, 오전 11시께 소방관들이 모두 '철수'했다. 어찌된 일일까. < 오마이뉴스 > 와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실이 '소방관 동원'에 대해 취재를 시작하자 서둘러 이들을 철수시킨 것이다.
임 의원실 관계자는 "여러 곳에 문의했던 것이 상부로 보고가 올라간 것 같다"며 "이날 오전 10시께 행안부 차관이 전화가 와 '(소방관들이 동원된 건) 행정 착오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행정 착오'로 눈 치우기에 동원된 소방관들은 이후 모두 국회를 빠져나갔다.
임 의원실이 파악한 결과, 영등포 소방서에서 파견된 소방관의 규모는 100여 명에 달했다. 소방관과 내근직이 모두 눈 치우기에 동원됐다. 이들 가운데에는 이날 비번이었던 70명도 포함돼 있었다. 행정안전부에 문의했을 때는 "50명이 나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100여 명을 단박에 철수시킨 조치에 대해 임 의원실 관계자는 "장관 청문회도 앞두고 있어서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 시절,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해 소방관을 단계적으로 증원하겠다고 공약했다. '눈 치우기' 등을 안전 업무로 봐, 충원을 공약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소방관이 뭘 하는 걸까...
간호사가 성형수술하고
청소부는 불끄러가고
가정부는 집주인 행세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