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감독은 1992년말 33세의 나이로 현대에서 은퇴했다. 당시 차범근 현대 감독과의 불화로 동계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991년 정점을 찍었던 경기력은 바로 다음해 급락, 선수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Q: 선수은퇴과정에서 당시 소속팀감독인 차범근과 마찰있었다는 루머가 있다 사실인가?
최강희감독: 마찰이 있었다. 어떻게보면 축구관의 차이였다.
지금은 차감독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는 조금 독선적이었다.
자신이 비행기를타지않는다고 모두 울산에서 기차를타고 다녔는데 국방색바지에 하얀색아디다스 면티를 입고 공을들고 열맞춰서 기차를 탔다.
그리고 내가 19세 선수들과 같이 뛰어도 뒤지지 않았는데 운동을 너무 많이 시켰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일이생겼다.
당시 주중 수요일에는 아디다스컵 경기를 하고 토요일에 리그경기를 치렀는데, 포항전을 앞두고 선발명단에서 나를 뺏다. 10년동안의 프로팀생활과 국가대표팀 생활에서 베스트멤버가 아닌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입장에서는 '내가 고참이니까 감독이 언질이라도 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가기는 했다. 그런데 그다음날 훈련을 하는데 나에게 "게임을 안 보냈더니 최선을 다 안한다."면서 운동장을 돌라고 했다. 그대로 택시타고 집에갈까 하다가 운동장을 돌았다.
그런데 차감독이 후배들에게"나이먹고 감독이 경기 안보낸다고 불만을 표시한다"고 한마디 했다.
그래서 나는"불만을 표시한적도 없고 최선을 다했는데 선입견이 아니냐"고 따졌고, 차감독은 "너 알고 보니까 나쁜놈이구나"라고 말했다.
결국"나는 나쁜놈이고 축구그만 하겠다"고 말하곤 돌아서버렸다.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1991년에 나는 5골4도움을 기록하면서 최우수 수비상을 받았다.
그런데 연봉계약을 앞두고 12월30일까지 나를 부르지 않더라, 31일에 단장이 불러서 갔더니만 이미 액수가 적힌목록을 보여주면서 사인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단장님 이거는 아니다. 연봉계약은 선수의 마지막 권리이고 자존심인데 액수를 정해놓고 사인을 하라고 하면 안된다.누가 액수를 정했나?"라고 물어보니 차감독이 정했다고 했다.
알고보니 일괄적으로 연봉을 30%인상한거였다.그래서 난 계약을 안하고 나왔고 그러고나서 울산에 안내려갔다.
최강희의 선수 말년은 차 감독을 만나서 꼬였다.
최강희와 차범근 감독의 사이가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은 91년 시즌을 마치고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는 과정에서 터졌다. 당시 현대 구단은 차 감독에게 큰 권한을 주었다. 선수들의 연봉을 유럽 처럼 감독이 상당부분 결정했다.
최강희는 91년말 구단 사무실에 불려가서 미리 정해놓은 연봉에 사인하라는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그는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고 92년초 선수단 소집에 불응했다. 선수 은퇴까지 생각하고 버티다 합류, 그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당시 차범근 감독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었다. 최강희는 그런 넘지 못할 벽과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