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멧돼지 이야기에 썰 몇개 더 풀어달라는 분들이 계셔서 몇 개 더 풉니다.

오늘 제가 할 이야기는 운전병 고문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재미없더라도 양해해주시길...

저는 운전병 출신으로 운전을 함과 동시에 대대 배차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배차 담당의 권력은 운전병들만 아는 것이니 간단하게 풀어보자면, 맘에 안드는 운전병 후임이나 선임은 이상한 곳으로

배차를 보내 탄약이나 1종, 3종과 같은 짐을 나르게 한다거나 아예 배차를 안내서 근무, 잡일을 시킬 수 도 있으며

간부들 역시 꼬장을 부리면 고문관 운전병을 붙여줘서 그날 하루 된통 고생하게 만드는 등 여러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람찬(?) 일과를 보내던중 연대RCT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각 부서 훈련 차량을 배차하던 중 대대 전 운전병이 출동해야 하는 큰 훈련인 만큼 고문관들에게 역시 배차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누가 이 폭탄을 안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마침 무선분대와 트러블이 있던 차라 어디 한번 혼나봐라 하는 심정으로 고문관

병사 A를 무선분대 차량에 배차를 내주었습니다.

훈련이 시작되고 상황이 발령되자 대대 전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대대 수송부에서 그 장관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수송부 차량을 점검한 뒤 저 역시 차를 몰고 출동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켤

때 였습니다.

저 멀리서 차량 한대가 수송부로 복귀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고문관 A 였습니다.

"무슨일이야? 출동하다가 말고 왜 돌아와?"

"아 죄송합니다. 계기판을 보니 차에 냉각수가 부족한 거 같아서 돌아왔습니다."

"이 색히 어제 예방정비 할때 뻘짓했냐? 죽을래?"

"죄송합니다. 분명 어제 확인할때는 괜찮았는데..."

"빨리 채우고 출동해."

"저 근데 냉각수 어디에 있습니까?"

"X친... 정비고에 있겠지 너 운전병 맞냐? 빨리 가서 채우고 와"

당시 상병이었던 고문관 A는 1여년 넘게 수송부에 있으면서 그 정도도 파악 못하는 고문관 중의 고문관이었습니다.

여튼 정비고에서 냉각수를 들고 뛰어온 A는 차량에 냉각수를 보충하고 다시 출동했습니다.

저 역시 다시 출발하기 위해 짐 점검과 운행증등 각종 기록철을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서 다시 A의 차량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또 뭐야! 왜 돌아와!"

"저 XXX병장님 차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냉각수를 채웠는데 차가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전 이게 뭔 개소린가 싶어 A 차량의 본네트를 열고 냉각수 마개를 열었습니다.

그 때 냉각수 통에서 역하게 올라오는 기름냄새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형광 녹색의 액체가 들어있어야 할 자리에 기름이 둥둥 떠있는것 이었습니다.

"야 X발 이거 뭐야. 너 아까 뭐 채웠어 갖고와봐 새꺄"

헐레벌떡 A가 정비고에 들어가서 가져온 통에는 노르스름한 경유가 담겨있었습니다.

"아하하하...." 웃음 밖에 안나오는 상황에 저는 수송관과 정비병들을 모두 호출했고, 훈련 출동을 나갔던 수송부 인원들

대부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전 그때 수송관이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하지만 A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아 어쩐지... 냄새가 조금 이상하더라" 라며 혼잣말을 중얼 거렸습니다.

정비병들이 차량 하부로 기어들어가 냉각수 통을 비워내고 엔진 전체를 씻어내는 큰 정비를 시작했지만 차량은 결국 회생

불가능의 상태가 되었고 그 길로 공업사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병이었던 정비병 중 한명이 "X발 이건 이등병도 알겠다!" 하며 소리 지를때 그 어느 누구도 하극상이라고 말하지 않

고 묵묵히 정비병들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습니다.

운전병 생활 1년이 넘도록 냉각수와 경유를 구별하지 못했던 김 군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낼지...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