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리베로.

나딕사 작성일 13.09.08 02: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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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이름 : 홍명보 / 洪明甫 / Hong Myung-Bo


 생년월일 : 1969년 2월 12일
 신장/체중 : 183cm / 71kg
 포지션 : DF / MF
 국적 : 대한민국
 국가대표 : 135시합 9득점 (역대최다 출장기록 보유)

 아시아의 리베로, 자랑스러운 홍명보. 
 




 사실 홍명보는 어린 시절을 마냥 쉽게 보낸 편이 아니었습니다. 
홍명보는 어릴 때 부터 공을 차고 싶어 했는데 홍명보의 부모님은 축구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으며
, 또 키가 작아서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꿈"을 막을 수는 없었지요. 
홍명보는 축구선수가 되었고,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으며, 
나아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베로로 불리게 됩니다. 그가 대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저는 홍명보 선수의 좌우명을 들고 싶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一心" 바로, 하나에 집중하는 자세입니다. 홍명보는 축구만 생각했고,
 축구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공을 차왔습니다. 혹여 다소 고지식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이런 올곧은 마음가짐이야 말로 무엇보다도 큰 힘일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빛낸 스타로 올리버 칸,
 호나우두, 홍명보를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리버 칸 역시 
매경기 집중에 집중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홍명보는 1990년부터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4대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참가했습니다.
 K리그에는 1992년에 데뷔하게 되는데, 데뷔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고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도 우승을 차지합니다. 첫 시즌부터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홍명보였습니다.
 그렇게 1994년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홍명보는 이제 한국의 손꼽히는 선수로 성장해 있었고
, 큰 무대에서도 기죽지 않고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한국은 강호 독일, 스페인과 한 조 였기 때문에
 사실상 조별리그 돌파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첫 경기 스페인전,
 한국은 후반에 두 골을 연이어 내주면서 패색이 짙었습니다. 그러나 종료 5분을 남기고,
 홍명보의 추격골! 종료 직전에는 서정원의 그림같은 동점골! 이 터지면서 
강호 스페인과 2-2 무승부를 기록합니다.
 서정원의 힘찬 어퍼컷 세레모니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가능성 있는 축구에 환호했고,
 월드컵 16강에 대한 기대는 커져만 갔습니다. 아쉽게 두 번째 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는 0-0 무승부.

 그렇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지난 대회 챔피언인 독일을 맞이합니다. 
클린스만의 활약이 펼쳐졌고, 전반에만 0-3... 하지만 후반전은 좀 달랐습니다.
 황선홍이 한 골을 넣었고, 이윽코 홍명보의 놀라운 중거리슛이 터집니다
. 힘있게 날아간 공은 그대로 독일의 골망을 가릅니다. 
2-3! 이제 독일은 좇기는 상황이 됩니다. 독일도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아쉽게도 끝내 시합은 2-3 으로 패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만,
 홍명보 선수는 대단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월드컵이 끝나자, 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의 클럽팀들까지 홍명보에게 오퍼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소속팀의 반대 등으로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 무렵 홍명보가 유럽에서 활동했다면, 그의 명성은 더욱 퍼져나갔을 수도 있었겠지요
. 홍명보 선수는 실력외에도 특유의 강한 정신력까지 있었기에, 
분명 유럽에서도 충분히 활약을 펼쳤으리라 생각하는데, 팬들로서도 사뭇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1996년, 기쁜 소식이 들려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2002년 월드컵 개최를 하기로 정해집니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이 마냥 적대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될 무렵, 홍명보 선수는 일본으로 건너가는 결정을 합니다.
 한국에서야 홍명보가 1994년부터 3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멋진 활약을 펼쳤지만,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대단한 선수였다" 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홍명보는 2000년에는 카시와 레이솔팀의 주장까지 맡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볼까요? 한국 K리그팀의 주장이 일본인이라니, 상상이 가십니까? 
그만큼 홍명보는 많은 신뢰를 받았으며, 엄청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1999년 소속팀의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0년에는 J리그에서도
 당당히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됩니다. 역시 홍명보! 90년대 홍명보는 
아시아 전체에서 손꼽히던 수비수 중 한 명이었으며, 아시아의 리베로라고 불렸으니까요.

 일본에게 있어서 홍명보는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었지만, 한편으로는
 넘어야만 했던 큰 벽이기도 했습니다. 홍명보가 출장했던 
축구 한일전에서 일본이 이긴 적은 1993년, 딱 한 번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일본의 많은 축구관계자들이 "아 홍명보만 없었으면..." 하고 탄식했다는 이야기들도 있구요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참으로 든든했던 홍명보였습니다. 

 홍명보 선수는 평상시에는 조용하면서 쿨하게 보이는 이미지인데, 경기장에서는
 정말 확 달랐습니다. 위치선정이 뛰어났고, 시야가 넓었습니다.
 근성있게 수비했으며, 특히 세련된 패스감각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강한 정신력,
 리더십, 조율능력, 한 마디로 팀의 기둥과도 같은 선수였습니다. 
요즘도 인터뷰 할 때면, 홍명보는 정신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마음가짐의 중요성은 몇 번이나 강조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유명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겠지요.
 한국은 4강에 진출했으며, 홍명보 선수는 브론즈 볼까지 수상합니다
. 대회 최고의 수비수 였다고 아낌없이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합니다. 135시합 출장. 대한민국 역대최다출장 입니다.

 현역 마지막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약했고, 2004년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1. 오늘 이후 내가 뛰는 경기에서 일본에게 패하는 경기가 있다면 그날로 축구화를 벗겠다.
( 홍명보가 선수시절 10여년 동안 이말을 인터뷰 하고난뒤 일본에게 단한번도 진적이없음)
曰 홍명보        * 출처 - http://fifa3.gamechosun.co.kr/board/view.php?bid=fun&num=3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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