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간 김치녀

타칭장동건 작성일 13.10.04 08: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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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오전,


밤새 클럽에서 술을 얻어마시고 뻗어 자던 김치년.





버티컬 사이로 들어오는 오전의 가을 햇살이


김치년의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 딸, 햇볕 잘 드는 좋은 방 써야지, 대학도 졸업했으니 취업해서 열심히 일해!' 라며


애써 좋은 방을 내어준 아빠가 원망스러운 순간.





퉁퉁 부은 눈두덩이를 부비며 멍한 시선으로 방 안을 훑는데,


뱀 허물벗듯, 둘둘 말린 옷가지와 휴지, 머리카락으로 엉망이 된 방 안 모습이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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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으로 전날 어떻게 놀았는지 생각하다가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원래 클럽에 가서 놀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취업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거지 뭐..'





졸업 후,


온갖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넣고


토익, 회화 등등 수두룩한 학원들을 등록해놓으며 '나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이 될거야' 라 다짐했지만,





대학에서 노력해서 배운 것이라고는 남자 선배, 동기들 어장관리와 밀당, 그리고 뒷담화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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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학점은 떨어질대로 떨어져 학사경고를 겨우 면할 수준이었고,


이력이라고는


'커피향 맡으며 일하고 싶다' 며 한 달 보름정도 일하고 때려친 스타벅X 매장알바에


단순히 '빵집 아가씨' 이미지가 좋아 일했으나 일주일만에 때려친 파리바게X 점원이 전부인 김치년에게


서류전형 통과 자체가 무리수였다.





보다못한 아버지가 어렵사리 작은 회사의 일자리를 소개시켜주었지만,


대기업에 지원하며 높아질대로 높아진 눈높이에 비해 성에 차지 않는것이 사실.


"이정도 회사는 안다니거든? 하, 자존심상해 아빠." 라며 오히려 아버지에게 면박을 주었고,


그것을 계기삼아,


'스트레스' 를 핑계로 더욱더 탱자탱자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흘려보낸 몇 년의 허송세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만나


시간이 갈수록 더 비싼 옷들을 사재끼며 아빠 명의의 신용카드를 박박 긁었고,


맛, 영양보다 사진이 예쁘게 찍히며, 뭔가 그럴듯 해 보이는 이름의 음식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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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주제는 늘 남자친구의 뒷담화와 성에 차지 않는 경제력, 성형, 그 날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친구의 뒷담화.


그렇게 열심히 친구들과 별 소득없는 대화들을 나누고 나면 왠지 '바쁘게 하루를 보낸 신여성' 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왠지 뿌듯해지고는 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모임의 끝 마무리는 늘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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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공짜술도 실컷 얻어먹고,


멋드러진 남자들 품에 은근슬쩍 안기다보면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라는 자신감이 마음 한 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또다른 '조건좋은' 남자들을 찾아 헤매는 자신의 모습에


'요즘은 이런 게 당연한거지, 이정도도 이해 못해주면 왜 만나? 쿨하지 못하게.' 라 스스로 반문하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데쉬하기도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퍼뜩 어제 밤에 클럽에서 만난 '괜찮은 오빠' 의 번호를 받은것이 문득 떠올랐다.


'휴대폰..휴대폰 어디있지..?'





열심히 옷가지를 헤치며 휴대폰을 찾고 있는데,


순간 거실에서 엄마의 오열소리가 들린다.


이어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아빠.





"외할머니 돌아가셨단다, 얼른 준비해라 장례식장 가게."





고등학교 1학년때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았던 외할머니.


매번 명절에 '보고싶다' 는 외할머니의 연락에도 


학생때는 '용돈을 적게 준다, 냄새난다' 는 생각에 공부 핑계대며 가지 않았고,


졸업 후에는 '남자친구와의 여행, 친구들과 놀러가야한다' 는 생각에 취업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었던.


이제는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외할머니.





"오늘 나 약...속..."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던 중, 거실에서 오열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과


아빠의 무서우리만큼 굳어진 표정을 보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아이씨...오늘 휴일이라 좀 맛난거 얻어먹고 놀려고 했는데...'





옷장을 열어 값비싼 브랜드의 옷을 뒤적거리며 장례식장에 입고 갈만한 옷을 찾아본다.


한참을 뒤적거리다 옷장 구석에서 발견한 검은색 원피스 한 벌.


'이거 유행 한참 지난건데..'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꾸역꾸역 입어보고 전신거울에 비춰본다.


'그럭저럭...에휴, 나중에 남자친구한테 원피스 한 벌 사달라해야겠다..음~포인트로 목걸이 하나 해야겠네..'





감지않은 떡진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화장을 시작.


장례식장에 어울리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지만 청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메이크업을 위해 정성껏 화장을 한다.


그러나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퉁퉁 부은 눈.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알 없는 커다란 뿔테안경을 쓰는 것으로 결정.





"얼른 나와"


재촉하는 아빠의 성화에 못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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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10개월 할부로 사준 샤넬 핸드백에 가을 햇살을 막아줄 선글라스 하나를 쑤셔넣고 방에서 나온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


보조석에서 울고있는 엄마와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없이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에 금세 지루해지고 하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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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데...아...가기싫어...놀러가기 좋은 날인데..이게 뭐야..'





아쉬운 마음에 카톡에 등록된 어장관리하는 남자들에게 선톡을 날려본다.


'뭐해~?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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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같이 오는 답장들에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밀고 당기는 것에 도가 튼 김치년은 가는 내내 호구남들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며


일주일, 한 달 후의 약속을 미리 잡아놓는 김치년.





그렇게 밀고 당기다 도착한 장례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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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로 후다닥 달려가는 부모님과는 달리


느긋한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달려가 다시 한 번 화장을 점검하고,


차 안에서 바꿔낀 선글라스를 뿔테로 다시 바꿔 낀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어 슬픈 표정으로 셀카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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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로 가 보니 이미 도착한 친척들, 오열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


부모님을 찾아가 애써 슬픈 표정을 지으며 애써 눈물을 몇 방을 쥐어짜낸다.


눈물이 한 두방을 흐르자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밖으로 살짝 나와 또 셀카 한 장.





조문객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자


더욱더 복잡해진 빈소.





'아..집에 가고싶다...아참, 해장도 해야 하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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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친척들의 눈치를 슬슬 보더니 이내 한 쪽 구석에서 육개장에 밥을 말아 '훅훅' 소리를 내 가며 


흡입하기 시작한다.


'아..얼큰하니 좋다..'





그렇게 열심히 밥을 먹고,


조문객들 중 젊은 남자를 힐끗힐끗 스캔하길 몇 시간.


슬슬 눈치를 봐 가며 '집에 언제쯤 가냐' 는 눈빛을 아빠에게 보내보지만,


도저히 집에 갈 기미가 없는 아빠의 모습에 고개를 젓고


'바람이나 쐬자' 는 마음에 장례식장 밖으로 나간다.





이미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 붉게 물든 하늘.


'와..하늘 멋있다' 며 사진 한 장.





'오늘 찍은 사진들, 페이스북에 올려야지..' 하면서 사진첩 폴더에 들어가


오늘 찍은 사진들을 편집하기 시작.


피부 톤 보정을 기본으로,


이미 성형수술로 깎은 턱을 더 갸름하게 깎고,


어깨를 좁히고, 팔뚝을 가늘게 만들고,


눈을 더 크게.





혼신의 힘을 다해 찍은 눈물셀카는 촉촉한 눈가가 더욱 도드라지게 편집한 후,


방금 찍은 하늘 사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도 모르게 (소리없이) 찍은 외할머니의 영정사진까지 페이스북에 업로드하고 글을 남긴다.





'마음이 미어지는 오늘. 외할머니.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하세요. 손녀딸이 많이 사랑했어요. 고마워요.'


'여러분, 힘내라고 '좋아요' 한 번씩 눌러주세요...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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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보빨러 호구남과 친구들로 인해 빠르게 올라가는 '좋아요'





그렇게,


가파르게 상승하는 '좋아요' 숫자와 영혼없는 '힘내세요' , '이런 말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예쁘시네요..' 하는


댓글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 김치년의 모습을


빌딩 너머로 저물기 시작하는 해가 붉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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