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대악녀의 막내인 청나라의 서태후
나머지 2명 여태후와 측천은 그나마 왕조의 초반부를 살다 간 인물들이지만
하필이면 서태후는 나라가 폭삭망할때 등장한 바람에 여러모로 평가가 야박합니다.
그녀가 태어난 것은 청나라시절인 1835년.
그녀는 가난한 농민집안에서 태어났으며 4살,12살때 각각 팔려가며 이름을 개명했습니다.
그리고 16~17세때 궁녀로 들어갔다고 되있습니다.
다만 일설에는 몰락한 말단 관리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 관리가 서태후가 어릴적에 사망하기 때문에
이 버전에서도 서태후는 매우 고생스럽게 어린시절을 보낸것이 됩니다.
어찌되었든 10대의 나이로 황제를 모시게 된 서태후
당시 청나라의 황제인 함풍제는 경극을 좋아했는데 서태후가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불러재꼈다고 합니다.
그 노래에 푹 빠진 함풍제는 서태후를 총애하게 되었고
그녀는 함풍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는 동치제를 낳게됩니다
자연스레 그녀의 신분도 up up
비록 후궁의 몸에서 난 자식이지만 함풍제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함풍제에게 유일한 아들을 선물한 셈
아들을 낳아 신분이 귀비로 상승한 그녀였으나
그녀의 야망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고
어린 아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황제의 마음을 계속 사로잡기 위해 노력할 뿐
황후 말고도 황제가 총애하던 이귀비라는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아들인 동치제는
자신은 별 안중에도 없고 성격도 강하기만한 친모 서태후보다는
함풍제의 정부인이고 자신에게 자애롭던 동태후를 더 따랐다고 합니다.
한편 이시기
우리나라를 비롯
동아시아 여러나라의 큰형님 노릇을 하던 청나라는 개망신을 당하게 되는데
바로 아편전쟁.
아편전쟁의 여파로 함풍제와 서태후를 비롯한 황실의 식구들이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아편전쟁의 여파로 배상금은 배상금대로 지불하고 땅은 땅데로 뺏기고
존심마저 와장창 박살이 난 함풍제는 병을 얻어 얼마안가 죽고맙니다.
죽기전에 함풍제는 서태후를 경계하기 위해 동태후에게
'나 죽으면 자희(서태후)저년 확 죽여버려 여보. 저년 저거 나라절단낼 년임.'
라는 유서를 남깁니다.
그러나 동태후는 자신을 졸졸 따르는
함풍제와 서태후 사이에서 난 어린아들 동치제가 맘에 걸렸습니다
그녀는 동치제를 이미 아들처럼 사랑하고 있었기때문에 동치제의 친모를 죽이는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
그래서 일단 유서를 간직만 하고 있었습니다.
자식이 황제가 되자 친모인 서태후 역시 지위가 격상되었고
글자를 몰랐던 동태후와 함께 섭정을 하게됩니다.
우선 그녀는 함풍제의 총애를 받던 이귀비를 잡아들입니다.
달밤에 끌려온 이귀비는 서태후에 손이 발이되도록 빌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서태후는
이년아 ! 황제가 살아있을땐 네 미래가 요 모양이 될줄 몰랐더냐?
그러자 귀비가 변명하기를
저는 그저 황제께서 부를때 따랐을 뿐이에요ㅜㅜ
그러자 서태후가 다시 호통을 치기를
그래?그럼 오늘 네가 뒤지는 운명도 어쩔수 없는거란다 ~
저년의 더러운 손발을 자르고 몸뚱이는 항아리에 처박아라!
측천이 다른 왕비들을 처단할떄도 나온 항아리는 다시 서태후한테 살인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이러니.
한편 이귀비를 처단하자 그 다음 타겟은 동태후.
아들인 동치황제마저 동태후를 어머니 처럼 따르자 서태후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오죽하면 동태후와 서태후가 신붓감을 서로 황제에게 추천했는데
황제는 동태후가 추천한 여인은 황후로 삼고 친모인 서태후가 추천한 여인은 후궁으로 삼아버린것.
서태후는 이를 계기로 동태후뿐 아니라 아들인 동치제한테도 이를 갈게 됩니다.
어찌됬든 동태후먼저 처리하기로 한 서태후는 동태후가 몸이 아플때 그녀를 극진하게 간호합니다.
순진했던 동태후는 서태후에게 감동하여 그녀를 믿게되고
황제의 유서를 불태워버리는데
그리고 얼마후에 맛난 떡을 드시다가 동태후는 하늘나라로 뿅!
그 떡을 서태후가 보냈다나 뭐라나
한편 동태후의 추천으로 황제의 짝이 된 황후를 언제나 의심하고 있었는데
후궁들이 서태후에게 이런 모함을 합니다.
황후가 황제곁에서 태후 마마를 욕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처럼 달려간 서태후는 황후를 보고 불문곡직 머리채를 잡고 아구창을 후려갈깁니다.
그리고도 분이 안풀리는지 내관들을 보고
야이놈들아! 몽둥이로 저년 돌려가면서 조져라!
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를 지켜볼수밖에 없던 아들황제는 결국 기절
가뜩이나 자신을 떼어놓고 정치의 일선에 나서는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컸던 황제는 이런일까지 생기자
갈수록 몸이 약해져 죽습니다.
죽은 원인은 천연두나 매독같은 질병이였다고 .
동치제 사망시 동치제의 황후는 황제의 아이를 임신중이였으나
그 아이가 사내아이면 서태후의 위치는 흔들리고 동치제의 황후가 실권자가 되기에 아예 동치황후를 가둬버리고
음식도 주지말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동치황후가 기적적으로 친정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서태후가 얼마나 두려웠으면
친정아버지 반응조차
너 죽든 살든 니 알아서 하셈;미안;
결국 그녀는 죽고
서태후의 동생의 아들이 황제가 됩니다.
그리하여 서태후는 계속 정권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광서제도 머리가 커가면서 슬슬 자신이 권력을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개혁을 시도하는데
서태후도 처음엔 개혁에 찬성했으나 알고보니 이거 자기 권력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단방에 때려치자고 난리
그러자 개혁파들이 서태후를 아예 잡아버리기로 계획을 짭니다.
그때 개혁파중 우리에겐 원세개로 잘 알려진 위안스카이가 배신을 하고 서태후에게 고자질
빡친 서태후는 광서제를 잡아 가두고 개혁파들을 싸그리 잡아 족칩니다.
이렇게 권력에 집착하는 서태후의 사치는 대단했으며
그녀는 특히나 입고 먹는것에 굉장한 비용을 썼다고 합니다.
한끼에 처먹는 반찬이 120개가 넘었고 그 비용은 당시 중국 평민들이 1년치 식사비에 해당했다고 하네요
요새로 치면 점심에 국밥 한그릇이 6천~8천이니 여기에 곱하기 365하면 되겠습니다.
또한 비싼옷과 보석을 매우 좋아하여 낭비가 극에 달하였고
옷은 상자로 3천상자가 넘는 양을 갖고 있었으며 하루에도 수차례씩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톱에까지 비취같은 보석을 달고 있었고
식기나 그외 생활용품역시 비취보석으로 썼다고 하네요
(서태후의 사랑을 받았던 비취)
또한 이화원이라는 호화스러운 시설을 재건하는데 돈을 무지막지하게 들였는데
이돈으로 군비라도 좀 충당하지 무슨 뻘짓이냐 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치향락을 누리면서도 그녀의 몸에 진행되는 노화는 막을수 없었고
기울어져 가는 청나라의 운명도 막을순 없었습니다.
광서제는 원세개가 보낸 약을 마시고 죽어버리고
그녀는 곧 광서제 동생의 아들을 황제로 지목하는데 바로 이사람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곧이어 서태후 역시
자기처럼 깝치는 여자가 없도록 하시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러나 명색의 악녀인데 이렇게 편안하게 가버리면 서운한법
그녀는 사후에 재난을 당하게 되는데
청나라가 쪽박찬후 중국에는 수 많은 군벌들이 나타나는 시대가 되버렸고 그중 한명이 돈이 떨어지자
서태후 무덤을 파해치기로 결심합니다.
결국 값비싼옷은 찢겨지고 서태후의 시체마저 개걸레짝이 됬다는 이야기
중국 3대악녀의 마지막 서태후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