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 중 한분이 요청하신..
중국 주변 이민족들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더불어 몽골의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의 이야기도 패키지로
넣어보겠습니다.^^
자칭, 세상의 중심에 살며....예로부터 지금까지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지들이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중화민족 (한족)...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중원을 기준으로..
*동, 서, 남, 북에 위치한 모든 나라와 민족을 *오랑캐라 정의함 .
* 동쪽의 오랑캐, 동이(東夷)
-->우리가 여기 포함됨. 그래서 우리가 '동이족'이라 불림.
서쪽의 오랑캐, 서융(西戎)
남쪽의 오랑캐, 남만(南蠻)
북쪽의 오랑캐, 북적(北狄)
* (오랑캐: 여진족의 부족중 하나인 우량하(兀良哈)에서 나온 말.
우량하(한문)->우랑카이(중국식 발음)->오랑캐(우리말))
(당나라 지도)
사진은 618년, 이연이 건국한 당나라.
10세기,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907년,
후량의 주전충에 의해 망하기 전까지..
무려 290년간.... 중원 땅을 통치,지배하고..
20대의 황제를 배출한...자타공인 중화민족 최강국.
밖으로는 여러 이민족을 제압하여 실크로드를 개척 했고..
안으로는 *율령 체제를 확립하여 번영을 누림...
(* 율령: 균전법, 조용조, 부병제가 합쳐진 개념의 국가정책으로..
나라가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경작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응당, 세금을 내도록 하고.. 병사로서 병역의무를 지게 하는 것. )
그러나..물이 고이면 썪는법.. 장기간의 번영과 치세 속에...
어김없이 탐욕스런 환관 + 신하들이 등장함..
이들은 왕권 개입, 대토지 소유 등을 통해..
중앙 정부의 기능을 혼란케하고.. 율령체제를 엿바꿔 드심.
또 지방 절도사(장관급)들은 중앙 정부의 약세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병제의 특권을 이용하여
사병화를 이루고.. 세력을 더욱 강화함.
많은 백성들이 땅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굶어 죽었으며..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중앙 권력자들의 말빨은 그야말로
씨알도 안 먹히는 지경에 이름..
결국, 민심이 폭발, '안사의 난' '황소의 난'이 연달아 터지며
이를 제압한다는 구실 아래, 각지의 무장한 절도사들이 들고 일어남.
(오대십국 지도)
이들 중.. '황소의 난' 을 제압한 절도사 주전충이
정국을 수습하고.. 진정시킨다는 대의명분 아래,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화북땅에 '후량'을 건국...
이꼬라지를 눈여겨 본 그밖의 절도사들과
지방 실권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통제력을
상실한 망국의 영토에 자신들의 깃발을 꽂음.
이렇게 시작되는 '오대십국시대'
오대는.. 중원의 상징적 지역인 화북을 지배하고,
과거의 정통 5왕조(양, 당, 진, 한, 주)의 정신계승을 기치로 내걸며
건국된 다섯 왕조를 말함.. 역사가들이 앞서 존재한 왕조와 구별하기 위해
앞에 '후' 자를 붙임.
나머지 10국은 오, 남당, 오월, 민, 형남, 초, 남한, 전촉, 후촉, 북한
으로 지역주의와 지방색의 동질감을 바탕으로 형성된 나라를 말함.
(요하의 위치)
오대십국이 중원에서 서로 더 잘 살아보겠다고 정신없이 치고
받고 있던 그때... 중원의 변방...
*요하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일어 나고 있었음.
(* 요하: 동북아시아 3대 문명 발상지로.. 한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큰 강.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건국한 우리 '배달족' 과도 인연인 많은 곳.)
예부터 요하의 상류, 시라무렌 유역에는 여러 부족이
분열되어 살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만주 지역의 퉁구스족(여진,말갈,만주족으로 불리우는)과
북방 초원지대의 몽골족의 혼혈로 형성된 유목 & 농경민이었음.
그러나...중원의 오대십국 시대를 전후하여...
이곳의.. 단합 조낸~ 안되는 이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출현 하였으니...
(거란의 지도자 야율아보기. 상상도)
그의 이름.....야율아보기. (거란은 야율씨가 왕족.)
916년, 그는 요하 주변 부족들의 대통합을 이루어낸 뒤,..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며.. 나라 이름을 *거란이라 한다.
(* 거란: 퉁구스족(여진,말갈,만주족으로 불리우는)+ 몽골족의 혼혈로 형성된
여러부족을 야율아보기가 통일. 이윽고 그가 붙인 나라 이름. 또 그 나라
사람을 칭하는 말. 쉽게 말해 여진족+몽골족= 거란족. )
이내 곧, 통일의 기운을 모아 풍요로운 중원땅을 노림.
926년. 중원으로 향하기 전에...꼭 넘어서야 했던 발해를 멸망시킴,
(아 고구려의 기상이여....ㅜㅜ)
(위: 후당,후진의 위치(북쪽) / 아래: 연운 16주의 위치)
또 오대십국의 강대국 중 하나였고, 자신들의 국경과 맞닿아 있던 후당을
견제키 위해....후진의 건국을 서포트함. 그 댓가로 중원의 알짜배기 땅
연운 16주를 얻는 외교적 성과를 올림.
연운 16주를 얻자마자.. '의리는 개나 줘.'..의 정신으로
자신들이 서포트한 후진을 멸망시킴.
947년, 산뜻한 마음으로.. 격조있게 나라명을 거란에서 요나라로 바꿈.
이러자 중원엔 '다음 타겟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
결국 중화민족 대동단결~! 안 좋았던 감정 뒤로 하고...힘을 합쳐 요나라를 견제함.
이때, 후주의 근위군 총사령관 조광윤이 960년, 송을 건국하고...
오랜 다툼과 요나라에 대한 견제질로 인해 지치고 쇠약해진
오대십국의 나라들을 하나하나씩 병합함.
마침내 979년.....송나라(북송으로도 불림. 그 이유는 아래에서..)는
오대십국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원을 통일함.
(송나라, 요나라(연보라)의 최대영토, 서하(황토))
송나라는 이전 당나라, 오대십국의 시기를 통해.....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음.
그리하여 군인을 홀대하고, 문인들을 우대하는 '문치주의' 의 노선을 택함.
니미 ...군대가 약하니....요나라 입장에선 완전 땡큐....
결국.. 진종(997~1022) 때, 요나라가 송나라에 쳐 들어옴..
그러자 이 평화주의자.. 황제는 비단과 은 등을
요나라에 헌상하며.. 달래기에 나섰고...
이에 삘받은 요나라... 매년 공물을 바치면 침범하지 않겠다는
맹약을 제안....이에 송나라 황제 제안서에 싸인.....
한족의 자존심이 바닥을 침...ㅜ.ㅜ
(위: 서하의 위치 / 아래: 서하의 위치(황토색))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님.... 진종 다음으로 즉위한 인종(1022~1063)때에는
지금의 중국 북서부 간쑤지방을 평정한 *탕구트족의*서하와 잦은 마찰이 있었음.
(* 탕구트족: 티벳계 부족의 일파. 본래 쓰촨성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했던 유목민.
당나라 중기, 그들의 뿌리격인 토번(지금의 티벳)의 세력이 커지자 북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중국 간쑤지역에 정착한 8개 부족으로 구성된 민족. 그중 가장 강력했던 부족인
탁발부가 '황소의 난' 당시, 당나라를 지원하고 당 황제에게 이씨 성을 하사 받는 등.
중화에 우호적이며 형님의 나라로 사대 했으나.. 오대십국, 송나라에 이르러 축소된 중화의 힘을
만만히 봄. 결국, 1032년 이원호가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서하를 건국.)
양국은1040년~1042년 사이 여러차례 전투를 치루다 서로 지쳐...
화친을 맺는데...평화조약의 결과로 서하는 송나라에 대해 신하의 예를 취하고...
송나라는 서하에 매년 은 7만 2천냥, 비단 15만 3000필, 차 5만근을 보내주기로 했다하니...
니미~ 싸우기만 했다하면.....오랑캐들에게 돈질....ㅜ.ㅜ
그렇게 시간은 흘러 1115년....
등따시고 배부른 요나라의 무관심속에...
당시, 요나라(거란)의 지배를 받고 있던 만주지역의
퉁구스족(이제부터 '여진족'이라 하겠음.) 여진족이....
한명의 강력한 통치자에 의해...통합됨...
(여진족의 지도자 아골타 상상도)
그 강력한 통치자의 이름은....아골타.
이윽고 그는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라 이름을 금이라 함.
요나라는 애초 그들의 팔자엔 없었던 거대한 영토관리에다..
한족의 거센 저항, 여진족의 대두 등으로 그 기세가 위축 되었고,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어 유목민의 정체성을 잃어버림....
그 결과, 아골타가 이끄는 신흥강호 금나라(여진)군과
송나라 군의 이해관계~ 연합 어택을 감당치 못하고...
1125년에 망함.
이와중에 요나라의 왕족 야율대석이 잔당 세력을 이끌고..
몽골을 지나 중앙아시아로 탈출함.. 그곳의 토착 세력인 위구르족과
윈윈하여 후에... 요나라 시즌2인 '서요'를 건국함.
(금나라의 최대영토)
이처럼 비슷한 건국사를 지닌 오랑캐국...요나라와 금나라의
연이은 등장으로 제일 똥줄 타는 건.. 송나라.
양국은 요나라를 칠때, 잠시..힘을 합하기도 했지만..어디까지나
서로의 이해관계로 맺어진....불안한 로맨스였을 뿐....
우려가 곧 현실로 나타나며...1126년 금나라가 중원으로 쳐들어옴.
당시, 송나라의 수도는 카이펑(개봉)이었는데... 금나라의 아쌀한
공격력으로..이내 곧...함락됨.
(금나라 군사에 의해 끌려가는 송나라 황제 흠종,휘종)
이 과정에서....송나라의 황제인 흠종과 그의 아비인 상황 휘종이....
금나라 군에게 붙잡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데....이것을...
'정강(흠종의 연호)의 변' 이라 함.
충격도 잠시....흠종의 동생 고종이....개봉을 빠져나와 삼십육계하여..
중국 하남 지역의 한 도시인 임안에....수도를 세움. 이것이 남송임.
역사가들은 송나라의 초대황제 조광윤에서 흠종까지의 개봉 시대를 '북송'
또는 그냥 송나라로 부르고..고종의 임안 천도 시대부터를 '남송'으로 구분해 불렀다.
한나라 이후, 두번째로 한족 출신의 황제가 이민족에게 붙잡히고...
유배지에서 개처럼 죽는.. 수모를 당하는데...어차피 다 자기들 역사라며
한족과 이민족들을 두리뭉실~묶어 버리는 동북공정 앞에...
그저.....씁쓸한 웃음만.....
여하튼 금나라는 중원의 장강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이후에는 남송과의 평화를 공고히 하며....
요나라의 거란족이 그랬던 것처럼...
한족의 우수한 문화에 깊이 빠져든다....
대부분이 한족과 혼인하여.... 유목민의 정체성을 잃고..
유유자적한 삶을 영위하게 됨.....
요나라에 이은 중국정복 왕조에 의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함.
하지만 동북아시아는 태평성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나보다...
이윽고 금나라의 북쪽....유라시아을 가로지르는 대초원지대에서...
푸른늑대의 후예들이.....그들의 영광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몽골 초원의 모습과 그들의 집인 게르(몽골텐트))
스텝(Steppe) 지역.
동북아 만주 벌판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의 러시아, 시베리아, 헝가리의
일부 지역까지 이르는...대초원지대.
(몽골의 겨울 모습과 그들이 기르는 가축, 매를 이용한 수렵활동)
이곳의 환경은 그야말로 척박&척박....
연강수량이 200mm~500mm에 지나지 않아 관목들이 형성되지 않는 단초지대.
더불어 농경생활이 불가능했고... 양과 소, 말등의 단초지대에 최적화된
가축들을 이끌고 다니며.. 신선한 풀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음.
또 식량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신기의 가까운 기마술과 활솜씨로 수렵 활동을 함.
일교차가 심하며...겨울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
그중에서도 동북아 패권국인 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몽골.
수많은 부족들이 국가의 개념없이 혈연 또는 정복, 납치 등으로 세를 불렸다
줄였다를 반복하는....완전 무법천지.
금나라는 지들 피는 생각 안하고...몽골 지역의 여러 부족들을 미개한 오랑캐로
폄하함과 동시에....그들의 팽창을 두려워하여 이이제이의 전술로 끊임없이
그들의 통합을 방해함.
몽골 지역의 많은 부족들 가운데 가장 거칠고 잔인한 타타르 라는 부족이 있었음.
금나라는 이런 그들에게 당근을 쥐어줘가며... 그밖의 부족들에 대한 공격을
사주하고...서로를 분열시켜..중원을 거들떠도 못보게함.
(칭기즈칸의 아버지 예수게이 상상도)
이때, 키야트족의 지도자가 자신의 구역에 또다시 시비를 걸러 온 타타르족의
장수를 죽여버림... 죽은 장수의 이름은 '테무친'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엘룬)
키야트족 지도자의 이름은 예수게이.....그는 비록 적장이었지만
용맹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타타르족 장수 테무친을 동경하고 애도함.
예수게이는 당시, 호엘룬이라는 메르키트족에 시집가던 여성을 납치해와
부인으로 삼고있었는데... (개판이다..) 곧 이들 사이에서 사내 아이가 태어남.
그러자....예수게이는 기다렸다는 듯....2세의 이름을 테무친으로 지음....
그가 후에..... 세계지도를 싹다 바꿔버린다는.....
오랑캐의 갑 오브 갑......
정복의 끝판왕.........칭기즈칸...........
테무친은 1162년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엇갈림.)
몽골과 시베리아 지역이 맞닿는 오넌강 유역에서 태어남.
몽골어로 테무친은 대장장이 라는 뜻. (당시, 초원에선 대장장이가 귀했다.)
가족관계로는..
키야트족의 수장인 아버지 예수게이와 그의 첫부인 소치겔이 낳은
이복동생 벡테르와 베르구테이 자신의 어머니 호엘룬이 낳은
친동생 카사르,카치운,테무게,테무룬(여동생)이 있었음.
(위: 몽골의 전통주 마유주(아이락)/ 아래: 타타르족에 독살된 예수게이)
테무친이 9살이 되던 해..예수게이는 초원의 전통대로 테무친과 함께 그의
배필을 찾아나섬. 옹기라트 부족의 보르테라는 여자 아이를 테무친과 정혼시킨 후,
키야트로 돌아가다가 원수인 타타르족이 대접한 술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함.
지도자를 잃은 부족원들이..내부 회의를 통해 테무친 가족들만 남겨두고
싹다 떠남. 험하디 험한 몽골초원에선 이것은 거의 죽음을 의미함.
게다가 예수게이의 생전, 그의 의탁을 받았던 탈크타이 키릴툭이란 놈은
배신도 모자라서....후환을 두려워하여 테무친을 잡아다 제 몸집만한
칼를 씌워놓고... 영내에 가축처럼 묶어놓았다.
몇년 뒤, 몇몇 부족원의 도움으로 탈출 성공.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테무친은 장성하여.. 정혼한 여식 보르테를 데려옴...
그러나 자신의 부족에 시집왔어야 하는 호엘룬을 인터셉트한 예수게이에게
빡쳐있던 메르키트족이 똑같이 테무친의 아내 보르테를 납치해감.
(자무카 상상도)
이에 테무친 자신과 안다(의형제의 몽골어) 사이였던 자다란족의 자무카와
아버지 예수게이의 안다였던.. 케레이트 부족의 토그릴 옹칸의 지원을 받아
보르테를 구출해옴.
(토그릴 옹칸 상상도)
여기서 잠깐~
토그릴 옹칸은 몽골지역 부족들 중 가장 강력했던 케레이트족 최고 지도자였음.
금나라 황제에게 왕한(王汗)의 칭호를 하사받는데..이것이 몽골 발음으로 옹칸임.
예수게이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많은 부분 도와줬음. 그런 이유로 둘은 안다(의형제) 관계로 발전함.
케레이트족은 유목민답지 않은 조직 체계를 갖추고, 준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종교 또한 자연신앙이 아닌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였음.
시리아쪽에서 몽골초원까지 선교를 하러 온 사제에 의해 기독교 세례를 받음.
어쨌든...그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
당시, 이슬람 세력과의 십자군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던 중세 유럽인들에게
전설의 동방 기독교국 군주 프레스터 존으로 알려짐....
(말을 포획하는 몽골인)
테무친은 보르테를 구출한 뒤, 뿔뿔이 흩어진 키야트 족을 규합하고...
과거의 서운함에서 벗어나 선정을 베푸는 등의 탁월한 리더쉽을 선보임.
결국 1189년. 키야트족 칸으로 임명됨.
키야트의 씨족 대표들은 자연스럽게 테무친을 칸으로 추대하고 충성을 맹세함.
그즈음에 안다 자무카의 친동생이 테무친의 말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
테무친은 그런 그에게 활을 쏘아 죽임.
(몽골의 활)
이에 자무카 격분. 안다(의형제) 무효화.
자무카 또한 구르칸(우주적인 왕)에 오른 상황..
냉혹한 현실 앞에 테무친,자무카 모두 의리보단 권력을 택함.
이윽고 초원의 진정한 칸을 가리기 위해....전쟁이 발발...
첫 전투에선 테무친이 짐. 그러나 절치부심.
결국 최종승자는 테무친에게 돌아감.
최고의 친구이자 최대의 적이었던..자무카 참수.
철천지 원수 타타르족을 몰살, 멸망시키고 (수레바퀴보다 큰 자들은 모두죽임.)
의붓아부지 격인 옹칸의 케레이트족도 그 씨가 마름..
이어 타이치우드, 나이만, 메르키트를 포함하는 몽골 초원의 모든 부족들이
테무친의 깃발 아래 통합됨.
결국 1206년,
쿠릴타이라는 몽골 고원 유목민의 족장 회의가 개최되고...이 자리에서
테무친은 위대한 지도자라는 뜻의 '칭기즈 칸'이란 칭호를 받으며...
몽골 초원의 진정한 대칸으로 추대되고.....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됨.
칭기스칸은 대칸의 자리에 오르면서 씨족적 공동체를 해체하고,
모든 유목민 집단을 군사조직으로 재편. 95개의 천호로 편성함.
천호 및 그 하부조직인 백호는 동시에 행정조직이며, 천호장, 백호장에는
공신들을 임명하여, 이들을 좌익, 중군,우익의 각 만호장의 지휘 아래에 둠.
또 케시크테이라고 하는 친위대를 천호장, 백호장의 아들들로
편성하는 특권을 부여, 몽골 유목군단의 최정예 부대를 구성하였다.
(중화 접경지대의 왕조들. '카라카타이'가 야율대석이 세운 서요.)
군 체제를 재편하자마자... 서나이만, 키르키즈, 오이라트, 바르군,
우르수드, 캉가스, 투바스 같은 몽골초원 인근의 부족들을 통합.
1207년 서하로부터 항복을 받았고.
1209년, 위구르가 스스로 복속해옴.
이에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파죽지세로
금나라로 쳐들어가 대륙을 짓밟으며 약탈했으며,
1215년. 금나라의 수도 중도를 점령하며...
중원을 몽골의 속국으로 전락시킴.
중원에서 한참 재미보고 있던 칭기즈칸에게 파발마가 도착함.
그들은 그들의 영내에 40km 마다 역참을 둬....
가장 빠르게 핫한 소식을 전했음.
이는 역참제와 그들이 타고 다니는 말의 위력이 배가 되어 나온 결과물인데..
몽골말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서양말보다 몸과 다리가 짧았음.
허나 지구력이 좋고, 사료 없이 오로지 풀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었기에
장거리 이동시...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었음.
파발마가 잔한 소식은.....지금의 우즈벡,이란 지역을 합친 영토에 군림했던
이슬람의 맹주...호라즘 왕조에 파견한 사신단이....몰살 되었다는 것.
호라즘과의 무역루트를 개척하여 경제적 이득을 꾀하려했던 칭기즈칸...
이에 호라즘 왕조의 술탄이었던 무함마드에게 전할 금은보화와 친서를
지닌 사신단을 그들의 수도 사마르칸트에 파견했는데...
오트랄 태수이자 무함마드의 심복인 이나르추크가
몽골의 사신단을 약탈하고 그것도 모자라 학살한거임.....
빡친 칭기즈칸....기수를 호라즘으로 돌려 그대로 진군....
무함마드에게 항복을 권고. 그러나 대답은 NO~... 그럼 뭐 닥공!
1219년 칭기스칸은 오트랄을 포위하고.
1220년 오트랄을 함락시킴. 원인 제공자....이나르추크 바로 처형.
이때, 그의 눈과 귀와 코에 은을 녹여 부어버렸다 함.....ㅎㄷㄷ
그리고 군대를 둘로 나눠...한팀은 사마르칸트로 직접 공격. 또다른 한팀은
아랄해 근처인 오트랄에서 남진...
(아직도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당시의 사마르칸트 성. 그대로 보존중이라고)
살아있는 그 모든 호라즘의 생물들을 학살.
논과 밭에 소금을 뿌려 재기불능의 폐허로 만듦...
역시, 1220년 호라즘 수도 사마르칸트 함락.
찬란한 이슬람의 문화를 간직한 호라즘 멸망.
무함마드는 몽골군을 피해 도망다니다...
카스피해 인근에서 사망.
호라즘까지 나온 김에...
1223년 킵차크, 러시아, 헝가리 일대와 페르시아, 인도 일대를 공격하고.
1225년, 서정을 마치고 귀환함..... 이윽고 호라즘 원정 때, 원군요청을 거절한 서하를
작살내기 위해 원정을 감행..... 그렇게 서하를 멸하고 한달 후 사망함.
집안이 가난하다고 탓하지말라.
나는 9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쥐를 잡아먹으며 생명을 연장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였고 내
일이였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는 10만
백성은 어 린애와 노인까지 합쳐도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해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이 아니라.. .
내 안에 있었다.
-칭기즈칸-
그리고 그와 그의 자손들이 이룬 몽골족의 영토.....
중화~ 조오오까..... 우린 세계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