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우리 할머니

라쿠우미 작성일 13.11.03 18: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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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꿈에 할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제 할머니는 친할머니도 아니고 외할머니도 아닙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의 사정상 저는 3돌이 지나서 부터

 

보모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보모가 아닌 우리 가족이고 내 할머니였습니다

 

작은 방에서 할머니와 누나 , 저는 매일밤 할머니의 팔을 베개삼아 잠이들었습니다

 

누나와 저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제 볼에 비비면서 서로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잠들길 원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럴때면 너희 둘다 사랑하니까 할머니는 가운데서 천장 바라보고 자마

 

라고 말씀하셨어요

 

흰머리카락에 비녀로 쪽진 정가운데 가르마를 타시고 항상 머리기름으로 단정하게

 

단장을 하시고 저고리와 주름치마를 입으셨습니다

 

유치원 소풍이나 행사에 할머니는 빠짐없이 오셔서 김밥도 같이 먹고

 

보물찾기도 같이 했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동네를 누비며 평상에 앉아 쉬기도 하고 시장구경도 했습니다

 

그런데 9살무렵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바리바리 짐가방을 싸시더니

 

수척한 얼굴로 어디 좀 다녀온다는 것이었습니다

 

" 할머니 어디가 ? "

 

" 할머니가 몇일 갈때가 있어 .. 몇일밤만 자고 올께 기다려 "

 

" 할머니 몇일밤인데 어? "

 

"금방 올께 "

 

그리고 몇일이 지나고 몇달이 지났습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길 " 할머니는 너희를 돌봐주던 분이셨다 "

 

" 우리 집의 친 할머니가 아니란다 "

 

저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충격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마냥 할머니를 그리워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죠

 

할머니가 떠나고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요일인데 부모님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시면서 어디 갈 채비를

 

하시는 겁니다 그러고 어머니께서 잠깐 같이 나가자고 하시길래

 

영문도 모른채 차에 올랐습니다

 

몇시간을 달려 다다른곳은 조용한 암자였습니다

 

스님들께서 마중을 나와 간단한 인사를 하고 한적한 곳으로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조그마한 주거형식의 방이 하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잠시 잊고 지냈던 존재

 

우리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수척하고 야윈 할머니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체

 

돌계단을 힘겹게 내려오시더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잠시 흐느끼시더니 누나와 제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셔서

 

" 내 새끼들 잘 있었어 ? "  

 

" 아이구 안보는 사이에 키도 많이 컷네 .. 이제 할머니보다 더 크네 "

 

몇 마디 하시더니 숨이 벅차신지 부모님께

 

" 아이고 날이 많이 춥다 나는 들어가봐야 겠다 어여 가 "

 

라고 말씀하시며 법당으로 들어가 스님과 할머니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저는

 

차를 한 잔 하고 짧은 시간을 뒤로 한체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는 할머니에 대해서 묻지 않았습니다

 

이미 어린나이지만 할머니가 어떤 상태이신지 짐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어머니께서 하셨습니다

 

그날이후 어머니는 우리 할머니의 연등을 달고 절에 기부도 하시고

 

매년 기일에 찾아뵙고 누나와 저를 7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탈하게

 

잘 돌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 향을 피우며 할머니의 넋을 달래주십니다

 

우리 할머니는 제 가슴속에는 언제나 영원도록 살아 게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명절때 고향집에 내려가면 오래된 사진첩을 봅니다

 

거기 빛 바랜 사진속에는 아주 어린녀석이 할머니 치맛자락을 부등켜 쥐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브이자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진 뒷면에는 한자와 뒤섞인 흘림체로

 

『 87年 夏 8月 집에서 』

 

할머니가 떠난지 20년도 넘었지만 문득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우리 할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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