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과장에서 어느 날 테러리스트가 된 이야기

모나드 작성일 13.11.16 20: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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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기사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임옥현(37)씨는 지난 6개월 동안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나날을 보냈다.

지난 5월 17일 새벽 임씨는 대림동 자택을 나섰다가 순식간에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긴급체포를 당했다. 옮겨간 곳은 서울 관악경찰서 강력계였다. 예기치 않은 극한 상황에 닥치자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되묻기 시작했다. 경황이 없어 경찰이 자신의 혐의를 언급했지만 듣지도 못했다. 유치장에 갇히기 직전 한 경찰관이 "뭐 때문에 온 것 아시죠?"라고 물었지만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경찰은 CCTV 영상을 보여줬다. 5월 5일 새벽 원세훈 전 원장의 자택에 화염병을 던지고 도망간 범인들을 추적한 영상이라고 했다. 임씨는 말문이 막혔다. 경찰이 영상 속 인물을 가리키며 "여기 나온다"라고 하자 헛웃음까지 나왔다. 경찰이 자신을 '범인'이라고 부르자 심각한 상황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임씨는 그렇게 테러리스트가 됐다.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은 원세훈 전 원장 자택에 화염병을 던진 30대 용의자 임씨를 긴급체포했다며 용의자는 삼성 SDS 과장이고 통합진보당 당원이자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민권연대 소속 회원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언론은 임씨가 통합진보당 당원이면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한 것에 더해 대기업 과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붙이면서 화염병 '테러'를 더욱 극적으로 연출했다.

이틀 동안 경찰서 조사를 받는 동안 임씨는 진술을 거부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라고 한 증거인 영상을 보여줬지만 자신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말도 많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부인해도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진술을 거부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범행 전날 저녁 10시경까지 지인과 술을 마셨고 사건 발생 시간인 오전 4시부터 오전 9시경까지는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이 임씨의 주장이다.

재판부는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영상 속 인물의 체형과 임씨의 체형이 다르다며 임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몸은 비록 자유가 됐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그는 이미 범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회사 인사팀은 언론보도를 통해 임씨의 사건을 파악하고 "주말에 무슨 일 있었죠?"라고 물어왔다. 억울했다. "조심하라"는 당부까지 들었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임씨는 기업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제작 업무를 맡아 본사에서 다른 기업으로 파견돼 일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 일주일만에 임씨가 일하는 파견 회사로 찾아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임씨의 컴퓨터와 휴대폰을 압수해갔다. 파견 회사가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하자 영장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사건 때문에 본사와 파견 회사의 관계까지 금이 갈 수 있는 상황이 이르면서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7월 9일 임씨는 또다시 경찰에 체포돼 서울구치소에 갇혔다. 임씨가 찍혔다는 CCTV 영상과 걸음걸이 등 증거를 추가로 보강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시국사범에 붙는 세자리 수감번호를 받았다. 경제사범들과 함께 옥살이를 했다. 같은 방의 재소자들이 임씨의 사연을 듣고 오히려 자신보다 분통을 터뜨렸다. 임씨는 무언가 잘못됐지만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검찰은 재판에서 임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CCTV 영상 분석을 한 국과수 감정 결과에서도 임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재판은 자신도 모르는 CCTV 영상에 대한 검증 공방으로 흘러갔다. 임씨는 "저의 영상이라고 하는데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고, 범행이라고 하는 장면도 차라리 얼굴이 정확히 나왔으면 논란이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흐릿해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오히려 임씨는 뚜렷한 영상이 나오기를 바랬다. 다른 인물임을 특정할 수 있는 영상이 있다면 자신의 무죄가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검찰은 임씨를 영상 속 인물이라고 지목했지만 재판장조차도 영상 속에서 임씨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검찰이 제시한 CCTV 영상도 증거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경찰은 임씨가 찍혔다는 CCTV 영상을 소유자로부터 적법한 절차가 아닌 임의 제출로 받았다. 게다가 CCTV 영상은 촬영 당시 정보인 해시값이 없는 사본 영상이었고 녹화된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찍어놓은 영상도 있었다. 시간과 날짜도 기록되지 않아 설령 임씨가 찍혔더라도 범행 당일의 영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검찰은 임씨의 걸음걸이와 CCTV 영상 속 인물의 걸음걸이가 일치한다는 점도 주요 증거로 내세웠지만 증거로 채택될지도 불분명하다. 검찰은 걸음걸이 기법 전문가인 캘리 박사(영국)의 의견서를 토대로 임씨의 걸음걸이와 영상 속 인물의 걸음걸이가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캘리 박사 의견서의 원문은 제시하지 않았다. 캘리 박사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다면 걸음걸이 기법을 통한 증거가 법정에서 채택될지도 불투명하다. 임씨는 검찰이 자신의 걸음걸이 특징 중 오른쪽 다리 무릎이 바깥쪽으로 벌어진다고 했지만 어떻게 이 같은 특징을 가지고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찰은 임씨가 화염병을 만들기 위한 물품을 구매한 흔적, 인화물질이 묻은 흔적 등 직접 증거도 찾지 못했다. 급기야 검찰은 임씨의 병원기록과 중학교 생활기록부까지 증거 목록으로 제시하고 임씨 주변 지인 20여명에 대한 계좌까지 추적했다. 임씨는 화염병을 던진 범죄 행위와 중학교 생활기록부의 평가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재판부는 임씨를 보석 석방시켰다. 검찰조차 재판 공방이 길어질 것을 감안해 임씨의 석방에 합의했다.

 

 

임씨는 옥에 갇힌 지 4개월 만인 지난 11월 12일 사회로 나왔다. 14일, 서울 종로의 한 찻집에서 임씨를 만났다. 임씨의 주장대로라면 아무런 죄도 없이 옥살이를 한 셈인데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임씨는 "처음에는 왜 이런 사건이 저한테 일어났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엮으려고 해도 제가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무죄가 나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길고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씨는 "얼마나 참고 기다리느냐가 관건이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허용하면 오히려 풀려나올 수 있는 시간이 당겨질 수 있지만 제 사건이기 전에 또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증거 능력 여부를 짚으면서 이번 수사가 얼마나 부당한지 불법성을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무죄 판결을 받으면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킨 언론매체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책임한 언론 보도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임씨는 "체포되고 구속이 되기까지 제 신분을 노출한 언론 보도 자료를 모아놨고 무죄를 받으면 언론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임씨는 이번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 최근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공소장에 자신이 민권연대 회원이라며 민권연대가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원세훈 전 원장의 자택 앞에서 1인 시위 활동을 했다는 점을 명시한 것은 수사당국이 미리 자신의 범행 동기까지 추정해 표적 수사를 했다는 주장이다. 임씨는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이 계속 커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단체를 압박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벌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포함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압수수색 등도 자신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에서 생겨난 일이라고 보고 있다. 임씨는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에도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시민들의 분노가 일고 있었지만 안에서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하고 진보당 해산 청구를 하는 등 독재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어 오히려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자신을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임씨는 "안에 있을 때 오히려 추운 바깥 공기를 쐬지 않아서 건강에 좋았던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임씨는 다음 공판은 오는 26일 열린다.

 

미디어오늘이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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