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나는 수능을 보았다.
당시 우리집은 컴퓨터가 없었다.
그 말인 즉슨
답을 맞춰볼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는 말이다.
결국 나는 버스를 타고 집에오는 길에
작은누나한테 정답을 문자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집에가서 맞춰봐야지
라고 생각을하고 1시간이 넘는 버스여정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졸다가 내리는 곳을.지나쳐 종점에서 15분 내려 집에왔으며
폰을 버스에 두고내려 기사아저씨가 내려가는길에 전해주기도 했다.
그런 엄마는 나를 위해
액땜한다 생각하라 일러주시기도 하였다.
수능 답안을 맞춰보기 전
목욕재개 정히하고 청정예복으로 갈아입는.의식을.거치고
엄마와 아빠흘.다른방에 피신시킨뒤
나는 몰래 답안을 맞춰보기시작했다.
나는 국립대를.지원했고
수시에서 부산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를 합격한 상태얐고
최저등급도 무난히 넘길 수 있는 성적이었기에
큰 걱정은 안했다.
그래도 혹시모르니 찬찬히 답을 맞추기 시작했다.
정말 아까 그 일들이 액땜이었을까
20번까지 하나의 오답도 없이 전부 동그라미를.치고 있었다.
하.지.만
..........
내 언어영역 최종성적은 50점대....
그렇다.
그 후로 두어문제 정도만 맞고 다 틀렸던 것이다.
언어가 그 성적이 나오니 수리 외국어는 채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순간
내 두눈에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리고
나는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소리를.듣고 달려와 내게 말해주었다.
"수능이 인생의.전부는 아니잖아. 괜찮다. 엄마는 그래도 널 믿어. 너의 그.노력을 믿어. 그러니 울지마.."
라는 말로 나를.위로해 주었다.
그때였다.
내 핸드폰이 울렸다.
작은누나.
작은누나였다.
야 어떻게 됐냐
라고 묻는 누나의 목소리를 들으니
난 또 울음이 터졌다.
망쳤냐? 라며 약올리는.누나에게 응..ㅡ 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누나는 갑자기 미안하다고 하는것이다.
이유를 들어보니
20번부터 정답이 아닌 배점을 보냈다는 것이다.
어쩐지...
2222231222221222
이런식으로 반복되는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엄마가
나의 핸드폰을 뺏어들더니
"야 이 가시나야 수능이 얼마나 중요한건데 그걸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보내? 어? 이 가스나가 증말!!"
이라고 소리치는 엄마였다.
오유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