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간단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원자로가 완전히 파괴되더라도 발전소 외부에는 피해가 없다. 이미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원자력발전소 사고(이하 TMI 사고)에서 실제로 확인된 사실이다. 지금까지 원자로가 파손되어 오염물질이 바깥으로 누출되는 사고는 3번 있었다. 순서대로TMI 사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다. 원자로는 냉각을어떤 물질로 시키는지, 중성자가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도록 감속시키는 데 사용하는 물질에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사고가 일어난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모두 다른 종류의 원자로를 운용했다. TMI에서는 <가압경수로(PWR)>였다. 참고로 한국에서 운용하는 것도 PWR이다.체르노빌에서는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RBMK)>였다.후쿠시마에서는 <비등경수로(BWR)>였다. 이들 원자로는 모두 특성이 다르다. 비유하자면 사람과 원숭이만큼. 사고가 날 수 있는시나리오도 다르고, 대처 방식도, 결과도 다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PWR과관련된 TMI 사고는 잘 언급되지 않고, 전혀 엉뚱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만 언급된다. 왜 그럴까. TMI 사고는 오히려 PWR이 얼마나 안전한지 증명해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TMI에서도 핵연료가 녹아내렸고, 원자로가 파손되었고, 후쿠시마 원전을 파괴시킨 수소폭발까지일어났다. 하지만 발전소 외부로 방사능이 유출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오염된 건물 내부를세척하는 것으로 사고 수습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후쿠시마에 비하면 무척 간단하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겁을 잘 먹지 않는다. 대중들에게 원자력은 위험하다며 겁을 주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나가려는원전반대론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니 원전반대론자들은 TMI 얘기를 잘 안한다.
1.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에서도 원전반대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중에는 어디의 단체 대표나 의학박사 같은 훌륭한 분들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의학박사라는 타이틀은 그분의 두뇌가 얼마나 명석하며 의학적 전문성은 또얼마나 높은지 증명해줄 수 있을 뿐, 원자력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나는수학이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들을존경하지만, 그렇다고 수학과 교수님들께 심장수술이나 뇌수술을 맡기지는 않겠다. 수학 박사학위는 그 사람들이 의학적 전문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원자력 비전문가 <박사>가 하는 이야기에 쉽게 귀를 기울인다. 더 고약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사실과 주장을 교묘히 섞어 이야기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사실은 숨긴다는 것이다. 사람은 새빨간 거짓말에는 잘 속지 않지만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섞으면 의외로 간단히 넘어가버리고 만다. 또 불리한 사실을 적당히 숨기면 사람들의 생각을자기가 원하는 대로 몰아가기 쉽다. TMI 사고 사례를 숨기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그래서 나는 전공자의 입장에서 원자력 안전에 대해 이야기해볼 작정이다. 전문용어는 최대한생략하고, 맥락 위주로 쉽게 이야기해보려 하니 부담 없이 읽어주길 바란다.
2. 간단하게 원자력발전의 역사를 원자력안전과 함께 살펴보자. 원자력의 이용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장 먼저 군사 분야에서 원자력의 가능성이주목받았다. 특히 미 해군이 원자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원자력을 이용하면 무한에 가까운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해군에서는 해군핵추진프로그램(Naval Nuclear PropulsionProgram)이라는 조직을 설립하기까지 했다.
[ ▲ 해군핵추진프로그램 로고. 오늘날 미 해군이 원자력 해군으로 거듭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도,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방사능 위험한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니 사고가 나면 어쩌나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육지에서 사고가 나면 먼 데로 달아날 수라도있지, 바다 한복판이나 잠수함에서 사고가 나면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원자로를 만든다. 그것이 가압경수로(PWR)다. PWR의 구조는 이렇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원자로와 직접 닿는 1차 계통(빨간색)과, 1차 계통에서 열을 전달받아전기를 생산하는 2차 계통(파란색)이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는데, ① 물의 양이 많다. 특히 원자로 전부가 물에 항상 잠겨 있다. 물의 양이 많으면 더 많은 열을저장할 수 있다. 같은 화력으로 물 한 컵을 끓이는 것보다 물 한 동이를 끓이는데 더 많은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니 사고가 났을 때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② 원자로가 손상되어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어도, 1차 계통과 2차 계통이 분리되어 있으니바깥으로 오염이 유출될 수 없다. 오염은 1차 계통에 가둬진다. 그러나 PWR도 문제가 있다. 주로 효율에 관한 부분인데, ① 물로 물을 끓이니 증기의 온도를 높이기가 어렵다. 증기 온도가 높아져야 발전 터빈을효율 좋게 돌릴 수 있는데, 온도가 낮으니 효율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② 1차 계통과 2차 계통으로 시스템이 나눠져 있으니 장치 사이즈가 커진다. 커다란 장치를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고, 그걸 올릴 땅도 많이 필요하다. 즉 건설비가 비싸진다. 말하자면 안전을 위해 효율을 희생한 것이 PWR이다.미국은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쉬핑포트를 PWR로 지었다. 한국도 미국을 따라 PWR을 선택했다. 참고로 고리 원전을 지을 때는 한국에 독자적으로원자력발전소를 설계하고 건설할 능력이 없어서 미국 업체가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건설이 끝난 뒤 운영만 한국 측에 넘겨줬다. 그러므로 TMI 사고 사례를 통해 고리 원전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3. 다른 많은 공학 분야들처럼 원자력 분야에서도 안전과 효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중요하다. PWR은 안전을 선택함으로써 효율을 희생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원자력이 이미충분히 안전하므로, 좀 더 효율을 추구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BWR이 만들어졌다. 비등경수로(BWR)에서는 PWR의 단점이 극복되었다. BWR의 구조는 이렇다.
① PWR과 달리 BWR은 원자로의 열로 직접 물을 끓인다. 그러니 증기 온도를 더 높게 올릴 수있어 발전 효율이 올라간다. 같은 양의 연료로 더 많은 전기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다. ② 1차 계통과 2차 계통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니 발전소를 더 작게 만들 수 있다. 장치를만들기 위한 돈도 적게 들고, 필요한 땅도 좁다. 건설비가 훨씬 저렴해진다. 반대로 PWR의 장점은 BWR의 약점이 된다. ① 장치 사이즈가 작다. 그 안에 들어있는 물의 양도 적어진다. 사고시 오래 버티기 힘들다. ② 1차 계통과 2차 계통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 방사능 누출 위험이 더 크다. 요즘은 기술이 많이 발전해 PWR은 BWR 못잖게 효율이 좋고, BWR은 PWR 못잖게 안전하다고한다. 그러나 PWR과 BWR은 태생 자체가 다르다. PWR은 안전에 집중했고, BWR은 효율에 집중했다. 그러니 수소폭발이 일어나도 TMI는 무사했지만 후쿠시마는 무너진 것이다.
4. 이처럼 PWR이 사고가 일어나도 안전한 것은 TMI 사고에서 증명됐다.그러나 사고가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사고 수습보다 더 중요하다. TMI 사고 이전까지 미국에서는 <결정론적 방법>이 안전 분야의 대세였다.원자력발전소에서 어떤 사고가 가장 치명적일지에만 주목해, 그것을 방지하는데 집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원자로가 파손되어 방사능물질이 누출되는 것이 최악의 사태다.그래서 물리적 안전장치로 5겹의 방호벽을 만들었는데, ① 핵연료는 단단한 원기둥(Pellet) 모양으로 성형되어 있다. 핵분열로 만들어진 유독한방사능 물질들은 펠릿(Pellet) 안에 갇히게 된다. ② 지르코늄이라는 튼튼하고 부식에 강한 특수합금으로 만든 봉으로 핵연료 펠릿을 감싼다. ③ 25센티미터 두께의 강철판으로 원자로 용기를 만든다. ④ 6센티미터 두께의 강철판으로 그 위를 보호한다. ⑤ 1.2미터 두께의 철근콘크리트 벽으로 그 위를 둘러싼다. 우리가 원자력발전소에서 볼 수 있는콘크리트 돔 건물이 바로 마지막 5번째 방호벽이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미국 에너지부에서 실시한실험 사진을 첨부했다. 비행기가 충돌해도 벽은 무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비상냉각장치, 전기가 끊어져도 대처할 수 있는비상전원장치 같은 것을 몇 개씩 안전장치로 갖췄다. 그런데도 TMI 사고는 일어났다.다행스럽게도 안전장치 덕분에 시설 밖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전문가들은 충격을 받았다. 왜 사고를 막지 못했을까. TMI 사고의 경위는 이렇다. 2차 계통에 물을 공급해주는 장치가 멈췄다. 장치 고장이었다. → 보조장치가 작동하지 못했다. 운전자가 장치 테스트를 마치고 수동으로 차단해놓은 밸브를다시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 2차 계통으로 열을 전달할 수 없게 되자 1차 계통의 온도가 상승한다. → 온도가 상승하니 압력도 함께 올라갔다. 그러자 내부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압력을방출하는 밸브가 열렸는데, 이게 열린 것을 운전자가 인식하지 못했다. → 사고 발생시 2차 계통에 냉각수를 공급해주는 장치가 자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압력을방출하는 그 밸브를 통해 냉각수가 계속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알지 못하고 운전자는 이것을 꺼버렸고, 1차 계통이 냉각되지 않게 된다. → 2시간이 지나서야 밸브가 열려있다는 걸 알게 된 운전자가 다시 밸브를 닫았다.그러나 그 2시간 동안 원자로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말하자면 사소한 실수와 불운이 계속 이어져 발전소 전체를 망가뜨리게 된 것인데, 이렇게<기기고장>과 <인간의 실수>가 결합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기존의 <결정론적 방법>으로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고 이후 미국에서는 <확률론적 방법>을 본격 도입한다. 사고 이전에 실시했던<확률론적 방법>에 의한 안전 평가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예측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확률론적 방법>으로 안전성을 평가하는 방식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고장수목해석(Event Tree Analysis)이다.그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데, 어떤 장치가 고장 났다. 안전장치가 작동했나? → No → 사고↓Yes↓운전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나? → No → 안전장치가 작동했나? → No → 사고↓ ↓Yes Yes↓ ↓다음 안전장치가 작동했나? 다음 안전장치가 작동했나?↓ ↓Yes Yes↓ ↓안전 안전
이런 식으로 발전소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지를 일목요연하게정리하고, 각 요소들이 오작동할 가능성을 확률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일반적으로사용되고 난 이후 미국에서는 TMI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도쿄전력이 비상전원장치에 대한안전성 평가만 했더라도 후쿠시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까지 한다. 후쿠시마가 결국 폭발한 것이 발전소에 비상전원을 공급해주던 디젤발전기가 쓰나미 때문에물에 잠겨 작동하지 않게 되어, 원자로가 오랜 시간 냉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는 현재<확률론적 방식>의 안전성 평가가 이뤄지고 있고,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안전성 평가를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은 NASA 등에 수출되고 있다.
5. 한편 원자로 그 자체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는 대단히극단적인 경우지만 그런 경우에도 대비하려는 것이 엔지니어들이다. 원전의 안전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개발 중인 4세대 원자로 중에 VHTR이라는것이 있다. 이것은 헬륨가스를 이용해 원자로를 식히는데, 기체를 이용해서 냉각을 하니 공기중에 내놓기만 해도 원자로가 알아서 식는다. 자연냉각이 이뤄지는 것이다.
[ ▲ AP1000 컴퓨터 이미지 ]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현재 중국에 짓고 있는 AP1000은 냉각이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세계최초의 PWR이다. 뜨거운 공기가 위로,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가면서 대기 중에서 바람이 불고,뜨거운 물이 위로, 차가운 물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바다에는 해류가 흐른다. 이러한자연대류현상을 이용해 모터나 펌프 없이 원전 전체가 자동적으로 냉각되는 시스템을,미국에서는 30년 동안의 연구로 만들어냈다. 후쿠시마처럼 전원이 끊어져도 AP1000은 어차피자동으로 냉각장치가 돌아가니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치를 원전에 도입했다. 원전 전체를 냉각시켜주는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못했지만, 원전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로를 자동으로 냉각하는 장치는 이미 존재한다.
6. 원자력 분야는 안전에 무척 민감하다. 그래서 외부에서도 꾸준히 관리, 감독, 규제를 해 줘야한다. 규제, 감독기관에서 이것을 전담한다. 발전소 설계를 제대로 했는지 기술적으로 검증하고,법적으로 하자는 없는지 검토해 사업 인허가를 내주고, 사업자가 규정대로 발전소를 운영하고있지 않으면 <빠따를 치는 것>이 규제, 감독기관의 임무다. 미국에서는 NRC라는 기관이 이런 업무를 담당한다. NRC에서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만3천 명에 달하고, 이들이 미국 전역에서 운전 중인 100기의 원자로를 감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200명이 안 된다. 20기가 넘는 원전을운영하고 있고, 여기에 건설 중인 원전과 계획 중인 원전을 다 합하면 장차 30기가 넘는 원전을운영하게 될 텐데도 이처럼 인력이 부족한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니 감시가 안 된다.감시가 안 되니 문제를 숨기기 좋다.문제를 숨기니 탈이 난다. 안전하게 원자력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최근 불거지고 있는 원전 관련 문제들의 배경에는 이러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원전반대론자들은 이와 같은 시스템적 문제를 외면한다. 대신 원자력 업계 종사자들을<원전마피아>로 싸잡아 매도한다. 사실 원자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병폐가 발견되고 있는데도 이처럼 자극적인 용어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자력은 <부도덕>하다는 낙인을 찍기 위해서다. 마치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정권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 낙인을 찍어비난하던 것과 같은 행태다. 이게 얼마나 혐오스럽고 무시무시한 짓인지 모르는 게 아닐 텐데도<마피아>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모른다.
7. 원자력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고리 원전이 터지면 어떻게 하나요?> 같은 막연한 공포심이 아니다.그런 걱정 하든 안 하든 고리 원전은 안 터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시스템에 존재하는 문제를 냉정히 파악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대략적으로 원자력 안전 문제를 살펴봤다. 긴 글 읽어줘서 감사한다.궁금한 점 댓글로 달아주면 다음 번 글 쓸 때 참고하겠다. -출처 개드립 스컬핀I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