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美 아카데미 3개부문 수상작. 전세계를 울린 2차대전 실화
1942년 부모와 남동생, 두 여동생 모두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난다.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그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폴란드에서 다시 대중 음악 작곡가가 된다.
이후 그는 나치로부터 살아남은 내용을 담은 '도시의 죽음(?mier? Miasta)' 이라는
자서전을 세상에 공개했지만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검열당했고,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나 1998년, 슈필만은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다시 출판한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 '피아니스트'의 바탕이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제2차 세계 대전 홀로코스트 영화.
전세계를 충격에 잠기게 만들었던
2002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비하인드 스토리.
1935년부터 폴란드 국영 라디오 방송을 위해 연주를 해왔던 폴란드 유명 피아니스트 슈필만.
그러던 1939년 9월 1일 그가 생방송 연주를 하는 동안에
바르샤바 국영 라디오 방송국은 나치의 폭격을 맞았다.
곧이어 방송국에 들이닥친 독일군은 총질을 하며 연주를 중지시키고 전직원을 내쫓았다.
전쟁이 끝나고 1945년 슈필만은 다시 폴란드 국영 라디오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는 첫 방송에서 쇼팽의 녹턴 C샾 단조를 연주하였다.
이 작품은 그가 1939년, 나치의 위협에 중단해야 했던 바로 그 곡.
슈필만이 살아남게 된 당시 상황,
슈필만의 가족이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오르기 직전
유태인 경찰 이작 헬러는 유대계의 유명 피아니스트인 슈필만을 알아봤고,
이작 헬러는 재빨리 슈필만을 끌어내서 숨겨 주었으나,
그의 가족들은 트레블링카 수용소행 열차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이 가족의 마지막 모습.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세계 2차대전 기간 동안 자행되었던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유대인이다.
그는 피아니스트 촬영 중에 폴란드 크라쿠프의 위치를 파악하며 돌아다니다
2차대전 당시 자신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을 만났다.
1,400명의 배우들이 슈필만 역의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런던에 모였지만
로만 폴란스키는 에이드리언 브로디를 원했고,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프랑스로 향했다.
브로디는 마침 영화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를 촬영하던 중이었는데
이것을 지켜보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브로디에게 더욱 더 매료되었다.
로만 폴란스키는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다르게
전쟁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인간상을 균형있게 나타내려고 노력했다.
*홀로코스트 (Holocaust)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약 6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사건을 의미한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던 독일군 대위,
빌름 호센펠트 (Wilm Hosenfeld)
그는 1945년에 소련군에게 붙잡혀 25년형을 선고받았고,
고문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인해 1952년 소련의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영화에서 호센펠트 대위가 슈필만에게 빵과 포도잼을 건네는 장면.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는 1944년 11월
내가 숨을 곳을 찾는 걸 도와주고
내게 담요, 음식을 제공했다.” - 슈필만 인터뷰 -
슈필만은 생전에 영화의 원작이 된 자신의 일기와 함께 앞의 내용이 적힌 편지를
홀로코스트 추모관 '야드 바솀' 측에 보내며 호젠펠트의 공로가 인정되길 요청했다.
하지만, 야드 바솀측은 슈필만에게 빌름 호센펠트가
'전쟁범죄에 연관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수상을 연기할 것이라 전했는데,
얼마 후 빌름 호센펠트 대위가 쓴 '나치에 대한 반나치적 내용'이 담긴
개인 일지와 아내에게 쓴 편지들이 증거로 판명되었다.
호센펠트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빌름 호센펠트 대위는 나치독일 내부에서 금지된 행위였던 고해성사를 했던 적이 있었으며,
폴란드의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전해진다.
슈필만은 1950년까지 대위의 신원을 알 수 없었다.
그를 안 뒤에 폴란드 정부와 함께 대위를 수용소에서 구해내려고 백방으로 애썼으나,
대위는 1952년에 소련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942년에서 1944년 사이에 호젠펠트 대위가 쓴 일기에는
그가 슈필만 말고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영화에서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를 연기한 에이드리언 브로디.
그는 만 29세의 나이에 이 영화로 美 아카데미에서
잭 니컬슨, 대니얼 데이 루이스를 물리치고 최연소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이례적으로 프랑스인에게만 주어지는 세자르 영화상과 전미영화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슈필만이 폴란드 유대인 강제 수용구역 '게토'에서 살아남게 되는 순간,
"Don't Run!"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나치의 소굴에서 경험했던 사건으로부터 온 대사였고,
유대인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러 가는 도중 나치가 유대인들을 땅에 눕혀
그들의 머리에 총격을 가하는 장면 역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반세기 전, 직접 본 것이었다.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슈필만 역을 연기하기 위해 6주 동안 무려 14kg을 감량했고,
사지에서 굶주리며 연명하는 슈필만의 모습을 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매일을 달걀과 녹차, 닭가슴살로 버티며 영화를 준비했다.
로만 폴란스키는 영화를 제작하면서 슈필만의 회고록을 참고했지만
자신이 유년시절 겪었던 아픈 기억들을 영화에 그대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영화 속의 페허가 된 바르샤바나 나치에 의해 더럽혀진 움슈라그 광장의 모습 역시,
그가 어린시절 봤던 그대로의 광경이었다.
실제 주인공 슈필만의 손자 다니엘 스필만은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에 나온 움슈라그 광장 한켠의 작은 시장에서 빈민가 소년 역할을 맡았다.
다니엘 슈필만의 모습.
실제 주인공,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은 영화 '피아니스트'가 세상에 나오기 1년 전
2000년 7월 6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피아니스트'는 제 5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제 75회 美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개 부문을 석권했다.
"내 무덤에 영화를 가져가라면
나는 주저 없이 피아니스트를 고를 것이다."
- 로만 폴란스키 -
사과나아나의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