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전미경제학회 / 富불평등 정면 충돌…전미경제학회 개막 ◆
3일 오전 7시 30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쉐라톤 호텔 인디펜던스 볼룸. 2015년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 대표세션 개막(8시) 30분 전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500석 규모인 좌석이 일찌감치 동났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모여들었다. 사회자 겸 토론자로 나선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토론회 시작을 알리기 위해 마이크를 들었을 때는 600명 넘는 청중이 방을 가득 메웠다. 결국 청중 100여 명은 서거나 통로에 앉은 채 세션을 경청해야 했다. 이처럼 전미경제학회 최대 관심사로 부상한 이날 세션 주제는 다름아닌 지난해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토론이었다. 전미경제학회를 뜨겁게 달군 불평등 화두 단초를 제공한 피케티 교수와 피케티 교수 주장을 반박하는 미국 보수파 경제학파 거물 맨큐 교수 간에 날선 공방이 이어지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한국 학생들에게도 친숙한 ‘맨큐의 경제학’을 저술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맨큐는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힌 핵심 주장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맨큐 교수는 ‘자본주의하에서는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크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피케티 교수 주장에 대해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r>g, So what?)”고 반문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게 맨큐 교수 주장. 과도한 저축 등으로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활용되는 게 경제에 더 안 좋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맨큐 교수는 부의 세습에 따른 자산 축적과 부의 불평등 확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 가정의 부(富)가 어떻게 영원히 상속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증여·상속 등으로 자본 규모가 쪼개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케티 교수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자본 축적이 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부의 분산이 이뤄지게 된다고 맨큐 교수는 설명했다. 맨큐 교수는 “부자들이 사치품 등에 쓰는 넉넉한 소비와 자손에게 물려주는 상속 재산, 만만치 않은 재산세와 소득세 등을 감안하면 자본수익률이 7%가량 줄어들게 된다”며 “이를 감안한 자본수익률이 여전히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맨큐 교수는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대를 거론하면서 “사람들은 돈 많은 부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똑같이 돈을 많이 벌더라도 ‘실리콘밸리 점령’ ‘할리우드 점령’ 시위는 없다”고 지적했다.
피케티 교수가 주장한 글로벌 부유세에 대해 맨큐 교수는 “(부유세는)근로자와 자산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세금”이라며 “나쁜 아이디어”라고 단언했다.
맨큐 교수는 “저소득층을 구제하는 것이 부의 격차를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며 “만약 부의 재분배를 원한다면 일부 유럽 국가들이 도입한 누진적 소비세(progressive consumption tax)가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소비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세금을 매기자는 주장이다.
피케티 교수의 반격은 매몰찼다. 피케티 교수는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격차(r-g)를 따지는 것은 소득에 비해 부의 불평등이 왜 더 심할 수밖에 없느냐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모델”이라며 “또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왜 부의 집중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극심했는지를 설명하는 데도 가장 유용한 모델”이라고 맞받아쳤다.
피케티 교수는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격차가 벌어질 때 부의 불평등이 더 심해지는 이유는 명백하다”며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부의 일부만 투자해도 부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케티 교수는 “인류 역사를 되돌아봐도 대부분 시기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며 “경제성장률은 0%에 가까웠던 데 비해 자본수익률은 5% 안팎을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역사상 적절한 상속세율 수준은 50~60%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피케티 교수는 맨큐 교수 등이 누진적 소비세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 “누진적 소비세가 부유세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누진적 소비세를 도입하더라도 부의 세습화를 가져오는 상속 재산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피케티 교수는 “부자들이 소비하는 것은 옷이나 음식만이 아니다”며 “누진적 소비세로는 부를 통해 얻는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과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피케티 교수는 “순자산에 대해 누진적 세금을 매기는 것이 소비에 세금을 매기는 것보다 과세 대상을 정의하고 모니터링하기가 훨씬 더 쉽고 덜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피케티 교수는 세계 최대 부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만난 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피케티 교수는 “2주 전 빌 게이츠와 (소득 불균형 문제와 관련해)토론을 한 적이 있다”며 “빌 게이츠는 내게 ‘당신 책에 담긴 모든 게 맘에 들지만 세금을 더 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피케티 교수는 “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피케티 교수는 “내 생각에 게이츠가 정말로 자신이 정부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며 “실제로 종종 그렇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빌 게이츠 창업자는 피케티 교수가 내놓은 부유세 처방전보다는 자산가의 기부를 통해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낫다고 밝힌 바 있다.
[매일경제 기획취재팀 = 유장희 상임고문 / 뉴욕 = 박봉권 특파원 / 워싱턴 = 이진우 특파원 / 노원명 기자 / 손일선 기자 / 박용범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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