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들이 갖고 놀았던 주사위

중원표국 작성일 15.01.30 19: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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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61284984828.jpg수학여행을 경주로 가면 꼭 들르는 곳 중에 하나
신라가 망하고 아무도 돌보지 않아 쇠퇴했던 정원. 그래서 기러기와 오리들만 있다고 안압지라고 이름붙여졌던 월지. 신라의 왕성이 있던 반월성 바로 옆에 있는 이곳에는 왕자가 사는 동궁전이 있었습니다. 1971년 연못에 쌓인 흙들을 긁어내기 위한 바닥 준설작업을 하는 동시에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려 3만 점이 넘는 유물을 얻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신라인들의 생활상(물론 잘살았던 분들의)을 복원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였고, 양도 많았던 만큼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만 따로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을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유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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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주사위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6면체 주사위보다 더 복잡한 구조의 14면체 주사위에는 각 면마다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이 글씨들을 분석하다 보니 이 주사위는 술자리에서 술 게임을 할 때 썼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주사위 굴려서 맨 위에 나온 벌칙을 수행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벌칙들 지금 봐도 빵 터지는 게 많습니다.
술 석 잔 한 번에 마시기(원샷!!!),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마시기, 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흐흐흐), 소리 없이 춤추기(민망), 여러 사람이 코 때리기(딱밤의 원조), 얼굴을 간지럽혀도 꼼짝 않고 있기,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를 청하기(노래를 못하면 시집을 못가요♪), 팔뚝을 구부린 채 다 마시기(아마도 러브샷?), 술 두 잔이면 쏟아 버리기, 스스로 괴래만이라는 노래 부르기, 월경 한 곡 부르기, 더러운 것을 버리지 않기(더러운 것이라니?!!), 시 한 수 읊기.
저 옛날 신라의 높으신 분들이 주사위 굴리면서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쭉! 하면서 놀았을 광경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군요. 그런데 이 주사위는 황당하게도 잿더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것도 당시 고고학계의 수준과 열악한 상황을 잘 보여 주는 웃픈 에피소드입니다. 이때 발굴에 참가했던 고고학자인 조유전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주사위를 발굴한 다음에 실측 조사하고, 정밀 사진 촬영한 다음에 오랫동안 뻘 속에 묻혀 상태가 좋지 않았던 주사위(참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네요)를 말리려고 하는데, 여기서 사달이 생겼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보존과학 수준이 형편없던지라 유물의 수분을 안전하게 제거할 특수장비가 없어서 전기오븐에 넣어서 천천히 말리는 방법을 썼답니다. 그런데 전압이 왔다갔다 할 만큼 전기 사정도 좋지 않았기에 그만 전기오븐이 과열되었고 그 안에 들어있던 주사위는 순식간에 홀라당 타버린 것이죠. 불행 중 다행으로 전기오븐에 넣기 전에 기록을 남겨 놓아서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여론이 상당히 험악해졌을 겁니다. 실제로 이 일은 한동안 묻혔다가(물론 사고가 일어났기에 관계자들은 조사를 받았다네요) 몇 년이 지나서 지역신문을 통해 보도가 되었는데, 그때도 여론이 상당히 험악했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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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은 타버렸어! 이젠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그런고로 현재 박물관에 있는 것은 진품이 아니라 복제품입니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낸 현실. 하지만 최근에 이 주사위와 똑같이 생긴 물건들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생겼는데, 실상 진품은 타버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 빼돌렸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죠.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로…….
어쨌든 신라의 주사위는 우리에게 당시 신라의 높으신 분들이 뭐하면서 노셨는지 알려줍니다. 왠지 요즘이랑 별로 다른 게 없어서 친근감도 들고, 한국인의 DNA에는 음주가무가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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