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받으러 나선 노인들.

국제호구 작성일 15.03.24 17: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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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서울 이촌동에 있는 한 성당 앞. 1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기다리는 것은 한 주에 한 번씩 성당이 나눠주는 오백원 짜리 동전하나였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성당에서 나눠주는 오백원을 받기 위해, 새벽 첫 차를 타고 성당으로 모여드는 어르신들. 오전 8시가 되자 어르신들은 일렬로 길게 줄을 섰습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동전 하나씩을 받아들고는 또 다시 어디론가 급히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나눠주는 동전을 또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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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의 ‘동전받기 리스트’


이촌동 성당 앞에서 만난 한 할머니를 따라가 봤습니다. 올해 77살의 장현순 할머니는 벌써 5년째 이렇게 동전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촌동 성당에서 동전을 받은 다음, 반포에 있는 다른 교회로 향했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반포에 있는 교회 앞으로 가니 어르신들이 더 많았습니다. 이곳에서는 교회 두 곳, 성당 한 곳에서 각각 오백원씩, 모두 천오백원을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떡과 음료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리잡기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새벽부터 나와서 자리를 잡아두고, 다른 곳에서 오백원을 받은 뒤 이곳으로 온다는 어르신들도 많았습니다.

어르신 한 분은 무료로 오백원을 주는 곳 리스트를 빼곡하게 종이에 적어두고, 일정에 따라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월요일은 사당, 화요일은 신대방, 수요일은 이촌, 목요일은 반포. 이런 식으로 날짜와 시간대별로 동전을 주는 곳과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꼼꼼하게 적혀있었습니다. ‘다만 2,3백원이라도 벌어야 돼. 어쩔 수 없어’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났습니다. 추운 날씨, 낯모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무료 동전을 받으러 다니는 길이 쉽지 만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당장 생활이 곤궁하고, 집 안에 있어도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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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할머니의 하루

 

장현순 할머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할머니는 20년 전 할아버지와 사별했고, 자식은 없다고 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파출부로 일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생계는 막막해졌고, 다른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당장 쓸 돈은 없고, 외로움은 더해가고. 그러다 동전 나눠주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하철은 공짜이니, 지하철을 타고 동전 주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먹는 밥에 외로움이 사무쳤는데 공짜로 밥을 주는 곳에 가니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무료로 점심을 주는 교회 식당에서 황급히 밥을 입에 떠 넣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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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 할머니 댁에 따라가 봤습니다. 제대로 집안을 치울 여유가 없었는지 방안 가득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었습니다. 어지러운 방안에서 할머니가 수북한 약봉지를 꺼내 보여줬습니다. 할머니는 오 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먹어야 할 약이 다섯 종류가 넘었습니다. 할머니는 홀로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아무도 모르게 죽어갈 지도 모르는 자신의 삶이 많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어느 누가 자기가 죽었는지 알겠느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대답할 말을 잘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움직이지도 못할 때는?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 동전이라도 받으러 다닐 수 있다면 오히려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해 꼼짝없이 집 안에만 있는 78살 김기식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는 10년 전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사업을 했지만, 중년이 넘어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50대가 되고 나니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노년을 맞았습니다. 점점 더 싼 집을 찾아 주거지를 옮기다보니, 서울 외곽 반지하방으로 밀려났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수급비만 바라보며 살게 됐습니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도 막막해, 기부 받은 떡으로 세 끼를 해결합니다. 매일 아침 동사무소에 가서 떡 세 팩씩을 받아온다는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무겁고 힘에 겨워보였습니다. 할아버지에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시간 보내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초수급비에 맞춰 그 안에서 생활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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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기초생활수급자였던 68살 할아버지 한 분이 살던 집에서 강제 퇴거해야할 날짜를 앞두고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장례비를 봉투에 고이 넣어둔 채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돈이 들어갈 일을 눈앞에 두고, 그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죽음을 택했습니다.


OECD국가 가운데 노인 자살률 1위, 고독사 하는 사람 숫자 한 해 800여명. 이런 통계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외로이 노년을 맞고, 홀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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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책임, 그리고 우리 모두의 책임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542만 명입니다. 전체 인구 10명 가운데 한 명은 노인입니다. 오는 2025년에는 노인이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인은 많고, 노인을 부양할 인구는 부족합니다. 노인들을 위한 사회의 대책도 변변치 않습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가 넘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 노인들은 가난한 걸까요?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노인들을 위한 연금제도, 나아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벽이 너무 높다는 점입니다. 최저 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습니다. 수급자가 되면 한 달에 50여 만 원을 줍니다. 하지만 수급자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노인들을 울리는 중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는 ‘부양의무자 기준’입니다. 직접적으로 부양 능력이 없는 자식들이 서류상으로 존재하면, 수급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사정이 어려우면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지적에 따라 부양 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에 따른다 해도 여전히 비수급 빈곤층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기초수급대상자는 모두 130만명입니다. 실질적인 부양 능력이 없는 부양가족 때문에, 기초수급자 선정에 탈락한 사람은 모두 1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기초수급비로 책정된 금액이 턱없이 적다는 지적입니다. 한 달에 50만원으로 주거비와 의료비, 식비를 충당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가 복지 혜택을 거저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색출해내는 ‘복지 경찰관’ 역할에만 충실한 나머지, 정작 어려우면서도 혜택을 못 받아 힘겨운 이들을 찾아내는 데는 손을 놓아온 것은 아닌가?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는, 기초수급 노인에게는 수급비에서 20만원을 삭감하고 난 뒤 기초연금을 주고 있으니, 이것은 가난한 노인들을 기만한 것은 아닌가? 여러 지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책 없이 노년을 맞은 분들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답을 내놓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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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방법을 찾고 싶다


취재를 마친 후, 오백원을 받는 긴 줄에서 만났던 78살 최행립 할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방법을 찾고 싶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삼일은 동사무소에서 소개해준 공공근로를 하고, 이틀은 무료 동전받기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원래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공공근로 신청이 잘 되지 않아서,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그 쪽으로 주소지를 옮겨서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노후를 스스로의 힘으로 잘 보내고 싶은 의지가 강해보였습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일주일에 삼일을 일하면 20만원을 받습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작은 일이나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정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삶에 활력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정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복지혜택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이가 들어서도 적절히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고 삶의 활력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노년층들을 위한 적절한 대책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시대의 노인들이 거리에서, 집에서 홀로 불안한 노후를 맞고 있습니다. 사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빈곤과 외로움을 견디며 거리로 나서는 노인들은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오백원을 받으러 거리로 나서는 수많은 어르신들에게 이제 우리 사회가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요약.
노인을 위한 한국은 없다.

 

 

출처: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3042501&re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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