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45g의 무게.
둘레 22.9 ~ 23.5cm.
이렇게 작은 공을 활용하여,
인간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만들었는데요.
야구가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미국'에 있습니다. 즉, 야구를 널리 보급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것인데요.
아시다시피, 미국의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의 야구 프로리그입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꿈의 무대로도 불리며,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야구의 종주국을 미국이라 알고 있습니다.
야구의 종주국은 미국이라는 것은 사실일까요?
사실 어떤 역사 기록물을 보더라도, 야구의 기원이 정확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현대 야구가 존재하기 전부터, 야구와 비슷한 스포츠가 유럽에 있었다는 것인데요.
그것이 바로 '크리켓(Cricket)'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야구가 '크리켓'이라는 영국의 국민 스포츠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죠.
크리켓은 17세기 잉글랜드 남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스포츠였어요. 경기 방식은, 작은 공을 이용하여 두 팀이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며 득점을 겨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초기 야구의 형태는 분명 크리켓과 거의 유사합니다. 크리켓은 미국에 야구가 보급되기 시작한 1850년 전부터 존재했으므로, 크리켓이 야구의 뿌리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크리켓에는 큰 한계가 있었어요. 바로 대중 스포츠로 발전하기에는 제약이 있었다는 점인데요. 일단, 크리켓은 영국 귀족들이나 상류층만이 즐기는 스포츠였습니다.
즉, 크리켓은 대다수의 서민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경기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었습니다.
초기 크리켓 경기는 짧으면 하루, 길면 2~3일 동안 열렸습니다. 이처럼, 경기 시간이 안드로메다 급으로 길었으므로, 관객을 모으기 힘들어 대중화시키는 데 큰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크리켓의 대안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야구(Baseball)'였습니다. 야구는 1800년대 초기, 크리켓에서 살짝 변형된 형태로 미국으로 넘어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초기 야구는 총 9이닝으로 구성되어 경기 시간이 길어야 3시간 남짓이었기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 전인 1845년.
뉴욕에서 최초의 아마추어 야구팀이 창설되었습니다.
이 팀의 이름은 '뉴욕 니커보커스'였죠. 팀 멤버는 총 10명이었으며, 이 팀의 출현으로 인해 현대 야구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뉴욕 니커보커스는 새로운 룰을 만들었는데요. 이 규칙들이 현재 야구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당시 제정된 야구 규칙은 현재와 사뭇 다릅니다. 그리고 매우 웃기죠. ㅋㅋ
이 룰에 따르면, 타자는 한 타석상 총 3번의 스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스윙이란, 그냥 배트(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배트에 공을 맞추는 것을 의미하죠.
다시 말해, 배트에 공이 맞지 않으면 투수는 무제한으로 공을 던져야 했죠. 그리고 투수는 타자가 원하는 위치로 공을 던져야만 했습니다.
이런 느낌?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타자들이 일부러 투수의 공을 치지 않으면서 경기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현상이 발생한 것인데요.
이는 '해가 지면 경기를 종료시킨다'는 당시 야구 규정으로 인해 발생했는데, 타자는 자신의 팀이 지고 있어도 경기를 지연시키면 경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한 거죠.
그래서 1858년, 이런 지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Strike Zone)'이 생겼습니다. 이 존이 생기면서, 만약 타자가 이 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치지 못하면
'스투~~~라이크!!(STRIKE!!!)'라고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투수들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요.
당시 투수들은 지금처럼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쓰며 타자를 속이는 역할이 아닌, 그저 '타자들을 위해 공을 던져주는 사람' 정도의 역할이었습니다.(최소 배팅 가이)
그러나.. 투수들도 사람이죠. 사람은 욕심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변경된 규칙에서도,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존 안의 '타자가 원하는 지점'에 공을 던져야만 했는데요.
그러나 이번엔 투수가 타자가 지정한 코스에서 가능한 멀리 던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현대 야구 관점으로 보면,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야구는 '타자'를 위한 시스템이었죠.
따라서 1863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자가 지정한 코스에 투수가 공을 던졌다고 볼 수 없는 경우', 스트라이크 개념과 반대되는 '볼(Ball)'을 선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볼로 판정된 공이 일정 개수를 넘어가면, 타자는 1루로 진루할 수 있다는 규칙이 생겼죠. 이 규칙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볼넷(Base On Balls)'의 시초입니다.
'Base on Balls'의 뜻은 즉, 볼을 많이 던지면(=ON BALLS)이면 타자에게 진루를 허용(=BASE)한다는 뜻입니다.
여담으로, 최초의 볼넷 기준은 단 3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투수들이 모두 커쇼나 류현진이 아닌지라 이 조건을 충족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웠어요.
결국, 볼넷 개수는 꽤 많은 변화를 거칩니다. 1871년의 볼넷 기준은 무려 9개였죠. 그리고 30년에 걸쳐 8개 7개 6개로 줄다가, 1889년에 4개로 지정되어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야구의 규칙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통해서 점점 다듬어지며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야구는 점점 재미있어졌기 때문에 1800년대 후반, 야구는 미국 전역에서 매우 대중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미국 중서부인 曰
: "요새 뉴욕이랑 보스턴에서 유행하는 스포츠가 있다던데.. 이름이 야구래. 재미있다는데 한번 해볼까?"
야구가 재미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북동부 지역의 상류층만이 즐겼던 야구는 중산층과 서민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었어요.
초기 야구 경기 모습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꽤 웃깁니다. 투수들은 거의 '언더핸드'로 던졌고, 포수는 혹시라도 타자 배트에 맞을까 두려워 타자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을 받았죠.
또한, 수비를 하는 야수들은 글러브를 끼지도 않고 맨손으로 공을 잡았습니다. (겁나 아팠을 텐데..)
그리고 미국에 최초의 아마추어 야구팀이 생기며,
야구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던 1869년.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프로 팀이 탄생합니다. 이 역사적인 팀의 이름은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였죠. -0-
이름은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이 팀이 현재 메이저리그의 내셔널 리그에 소속된 '신시내티 레즈'의 전신입니다.(추신수 선수가 이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죠.)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는 최초의 프로팀답게 거의 리그 깡패 수준이었습니다. 이들은 출범하자마자 89연승을 했죠. 이러다 보니, 리그의 형평성은 거지 상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2년 후, 새로운 리그가 탄생합니다. 1871년에 탄생한 '내셔널 어소시에이션(National Association) 리그'가 그것이죠.
그리고 이름에서도 강하게 느껴지듯이, 현 메이저리그의 양대 리그 중 하나인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의 전신이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이죠.
아시다시피, 현 메이저리그는 두 개의 리그(내셔널 리그, 아메리칸 리그)로 나뉘어 지는데요. 하지만 메이저리그 초창기에는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리그뿐이었습니다.
이 리그는 1871년부터 5년 동안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리그에 소속된 6개 팀이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만든 리그가 바로 '내셔널 리그'였죠.
그리고 내셔널 리그 소속 팀들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경쟁 리그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내셔널리그의 위엄에 미치지 못하여 곧 '듣보잡'이 되어 야구계에서 퇴출됩니다. 그리고 약 30년이 흐른 1901년에 제대로 된 리그가 출범하죠.
그것이 바로 '아메리칸 리그'였습니다. 이 리그는 출범부터 만수르 모드를 가동하며, 내셔널 리그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선수들을 대거 데려오죠.
그 결과, 내셔널 리그와 경쟁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양대 리그가 생기게 되었고, 1903년에는 최초의 양 리그 간의 월드시리즈가 벌어지기도 했죠.'
출처.피키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