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휴전

메밀밭파수꾼 작성일 16.01.08 18: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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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2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발지 전투때의 일이다. 


연합군의 공격으로 계속 밀리던 독일군은 폰 룬트슈테트 원수의 지휘로 마지막 힘을 다해 반격에 나서고 있었다.

전투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벨기에와 독일의 국경 근처의 휘르트겐 숲속에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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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크리스마스 때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여기에 열 두 살 먹은 독일인인 프리츠 빈켄(Fritz Vinken)이라는 소년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고향인 아헨이 연합군 폭격기들로부터 공습을 받게 되자 빈켄의 아버지가 이곳으로 그들을 피난시킨 것이었다.

총소리와 비명소리, 대포의 포격 소리, 폭격기 편대의 비행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었다. 
느닷없이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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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빈켄의 어릴 적 모습

 

 

빈켄의 어머니가 문을 열자 뜻밖에도 적군인 미군 둘이 문 밖에 서 있었다. 


 

 

 

 

 

 

 

 

 

 

 

 

 

 

 

 

 

 

 

 

 

 

 

그들은 눈 위에 누운 동료 한 사람을 가리키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아마 잠시 쉬어가게 해 달라는 것 같았다.

빈켄의 어머니는 영어를 몰랐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답변해보았고 마침 프랑스어를 아는 미군이 있어 겨우 말문을 텄다. 

사연인즉 대대에서 낙오한 그들은 독일군을 피해 사흘이나 숲속을 헤맸다는 것이었다. 

철모와 점퍼를 벗고 나니 그들은 겨우 소년티를 벗은 앳된 모습이었다.

비록 적군이었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아들 같은 소년들로만 보였다. 

그녀는 빈켄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때 쓰려고 아껴 두었던 수탉 한 마리와 감자 여섯 개를 가져오도록 일렀다. 

그러고는 서둘러 부상당한 병사를 돌보아 주었다.

얼마가 흐른 뒤 고소한 통닭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차자 또다시 누가 문을 두르렸다.

'또 미군들이겠지'하는 생각으로 빈켄이 선뜻 문을 여니 밖에는 독일군 네 명이 서 있었다. 

순간 빈켄의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적군을 숨겨 주는 것은 최고 반역죄로 총살감이었다.

빈켄의 어머니 역시 크게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냉정을 되찾고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프뢸리헤 바이낙텐(Frohliche Weinachten ; 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

어머니가 독일어로 인사를 하자 병사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쉬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물론이지요. 따뜻한 음식도 있으니 어서 들어오셔요."

통닭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던 병사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자 빈켄의 어머니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는 이미 다른 손님들이 와 있는데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군요."

"안에 누가 있습니까?"

"미국군인!"

그 순간 독일군들은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문 밖을 살피던 미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다시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요. 당신들 모두 내 아들같은 사람들입니다. 저 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두가 배고프고 지친 몸입니다. 오늘 밤만은 죽이는 일을 서로 잊어버립시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 자리의 어느 누구에게나 그것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그것을 깨뜨린 것은 총소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명랑한 목소리였다.

"뭣들 해요? 우리 빨리 맛있는 저녁을 듭시다. 총은 모두 이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아요."

네 명의 독일군은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고분고분 총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았다. 

또한 어머니는 프랑스어를 아는 미군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 미군은 동료들에게 영어로 다시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미군들도 무기를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가 식탁을 차리는 동안 의학을 공부했다는 독일 병사 한 사람이 부상당한 미군을 치료해 주었다. 

독일군 한 사람은 자기 꾸러미에서 포도주 한 병을 꺼냈고 또 한 사람은 호밀빵 한 덩어리를 내어 놓았다.

드디어 저녁 식탁이 차려지고 모두가 그 앞에 앉았다.

"주여! 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어머니의 기도가 끝났을 때 7명의 병사들 눈에는 모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때까지도 빈켄의 눈에 그 병사들은 어른이 아니라 단지 자기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소년들로 보였다.

그리고 식사 중에 독일군 4명 중 한명은 23세이고 나머지는 모두 16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정 직전 어머니는 문 밖으로 나가 함께 베들레헴의 별을 보자고 말했다. 

모두들 어머니의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는 동안 전쟁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 아침, 독일군과 미군들은 오두막집 앞에서 악수를 나누었다. 

독일군 병사가 미군들에게 부대로 돌아가는 길을 상세히 가르쳐 준 뒤, 

그들은 서로 헤어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1979년 47살의 프리츠 빈켄은 평생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어린 시절의 이 사건을 글로 써서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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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보면 전쟁도 다 높으신양반들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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