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병 총기난사사건의혹

재지팩트 작성일 16.04.16 20: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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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지금으로부터 11년전) 육군 최전방에서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 (일명:530GP사건) 에 대해서 써볼려고 합니다.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은 이미 해결된 사건이지만 찜찜한 의혹이 있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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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에 있는 28보병사단 530GP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

 

김XX일병이 총기난사를 하고 수류탄을 터트려서 전우들을 사망하게 했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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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와서 병영부조리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구타, 가혹행위가 남아있던 시절이었음

(최근에 많이 좋아졌다해도 임병장사건, 윤일병사건 등 빡센 부대는 은연중에 있음) 

범행동기에 따르면

김일병이 원래 530Gp에 오기전에, 다른 GP에서 구타 가혹행위를 당해서 530GP로 전출을 가게 되고,

이곳에서 또 괴롭힘을 당하자 총기를 난사해서 부대원들을 죽였다는것으로 밝혀짐

사고를 일으키기 전까지 시간대별 행적은 다음과 같이 발표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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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진술한 내용은 여기까지이고,

그당시 김일병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지만 그 이후에 의문점이 계속 제기됨

 

상식적으로 봤을때 사건의 시작인 내무실 수류탄투척후 소총난사가 제일 먼저 일어났는데

그후의 상황진술이 앞뒤가 안맞음

 

실제로 건물안에서 수류탄 터지고 소총난사가 일어나면 근처의 다른 막사까지 전부 잠에서깨고 난리가 날텐데

위에 자료를 보면 내무실 수류탄 투척후 인근 체력단련실로 가서 GP장 김중위를 사살했다고 하고

또 그후에는 물마시던 모 상병에 총기를 발사했다고 하는데 이게 앞뒤가 안맞는 상황임

김중위나 물마시던 모 상병은 건물에서 수류탄터지고

소총난사하는 소리가 나는데도 태연히 물마시고 있었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1. 소대 분위기

 

구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하기에는 그당시 소대 분위기가 좋은 편이었음

 

소대원의 진술서

"사병 상호간에는 존중과 경어를 사용하였다. 휴가시 계급 관념을 두지 않고 서로 반말을 사용했다.

휴가시에는 함께 놀기도 했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시에는 위계질서, 선후임병에 맞는 호칭을 사용했다.

김일병도 휴가지에서 상병급에게 반말을 하기도했다. 김일병과 소대원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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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병이 썼던 수양록 일부 발췌

- 2005년 5월 20일

  크헉 공포가 밀려왔다. 후반야 도.정을 하루도 안빼고 나가다니 전부 5시간 도정이다. -_-;; 이제 나도 후반야인데

  어메~토해토해~ㅠㅠ 편지도 쓰고 운동도 하면서 다음휴가때는 이쁘게 몸만들어 나가야징

- 2005년 5월 27일

  ㅡㅡ. 합지검이 안들어 온다는 통보~ 별루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군단장도 안들어오고 다행이구나~

  이제 3일만 지나면 나도 일병이로세

- 2005년 6월 7일

  괜히 은근슬쩍 후임한테 욕도하고 못한다고 지랄했다. 개념없는 석민이~ 킥킥 나도 한때 그랬지~

  석민이도 쫌만지나면 나처럼 개념이 잡히겠지. 그때까지는 욕좀 먹겠지만....

- 2005년 6월 10일(사건 9일전, 마지막 수양록내용)

  지금은 비번잡고 쓰는 수양록이 지루지루하다. 부GP장을 닦고 보니 40분이나 걸렸다.

  어찌나 녹이 슬었는지... 부식도 많이 올라온 금요일 빵만6개다. 크크 좋다! 요즘 관물대가 털리고있다. 짜증..

수양록을 봐도 이모티콘도 있고 일병이 되어서 만족하는 그런 내용이 있음

그 외에는 평범한 내용이고, 이 내용을 보고는 구타 가혹행위가 일어났다고 볼수가 없음

2. 김일병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음

김일병에 의한 자백만 있었을뿐 증거도 없고, GP에 있는 총기 및 수류탄에서 김일병의 지문또한 발견되지 않았음

그리고 생존자들중에서 김일병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도 없었고 소리만 들렸다고 주장했음

즉 김일병의 자백만 있었던 상태

또 거짓말 탐지기로 탐문한 결과 판단불능으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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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거짓말 탐지기 검사결과자료

그리고 김일병의 심리상태가 불안해하거나 긴장하지않았고 매우 차분했다고함

3. 수류탄을 던졌다고 하기에는 천장과 관물대가 매우 깨끗함

수류탄을 던지게되면 폭발과 파편때문에 주변이 엉망이 되어야하는데

천장이랑 관물대의 상태는 손상없이 매우 깨끗했음

신교대에서 수류탄 던져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수류탄 한발로인한 폭발력이 장난이아님

그런 수류탄을 협소한 내무실안에다가 터트렸는데 관물대도 멀쩡하고

특히나 천장의 석고보드도 파편하나없이 멀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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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무실 현장 사진

4. 시신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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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난 관통된 상처

 

보통 군대갔다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쓰는 탄은 5.56mm 크립포탄임.

 

그런데 손목에 있는 총상은 훨씬 크게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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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에 의한 상흔

 

수류탄에 의한 파편은 작은 둥근 구슬모양인데 마름모꼴 모양의 상흔이 있었음

 

*다른 사진들도 있지만 너무 잔인한 것도 있어서 이것까지만 첨부

 

 

 

 

 

5.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범인은 김일병이 아니라고 주장

 

김일병이 총기난사를 했으면 희생자 유가족들이 분노해야하는데

오히려 유가족들은 범인은 김일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

 

 

 

6. 김일병 부모님의 태도가 이상함

 

아들이 그런 미친짓을 저지르고 사형당하게 생겼는데도

김일병 부모라는 사람이 울지도않고 태연하게

알아서 절차에맞게 처리해달라는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여줌

 

 

 

 

7. 육군교도소 수감후 김일병의 행방

 

김일병은 사형선고를 받고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사형집행이나 그 후의 보고는 아직도 전혀 없는 상태.

지금 현재 김일병이 어디있는지 사형된것인지 모르는 상태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김일병보러 면회갔는데도 만나게 해주지않음

그래서 김일병이 있나없나만 보여달라했는데도 거절당함

 

 

 

 

사건은 김일병이 한 것으로 종결되었지만 굉장히 의문이 많은 사건이고

지금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하고 있는 상태임

 

특이한점은

 

*인터넷 커뮤니티상에서 그당시 김일병과 근무했거나 인근부대에 근무한 네티즌이 한명이라도 있을법한데

아직 안나오는 상황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김일병이랑 같이 근무했었다, 혹은 헌병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네티즌들은 있지만

주장하는게 각각 다름

 

-김일병이 한것 맞다

-북한군이 한것이다.

-그 당시 작업하다가 사고가 터져서 그런것이다.

 

등등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누구라도 튀는 행동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수있는 공간임을 생각했을때 신빙성이 없다.)

 

*즉, 현장 증거는 있지만 그당시 정확한 증인은 없는 상황임

 

 

당시 노무현 정부는 김일병이 구타 가혹행위에 의한 돌발행동으로 보고 사형을 선고후 사건을 종결시켰지만

누가봐도 수상한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북한군의 기습침투로 인해 장병들이 피해를 입었고

그 사실을 그대로 발표하게되면 국민들의 군에대한 불신,

그리고 옷벗어야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상황이라

부대 내에서 사건을 조작하고 다른 내용에 대해선 철저히 은폐하여

김일병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서 상황극을 꾸민걸로 보고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팩트 한가지가 있습니다.

 

 

? GOP 중대장 폭음청취

대대상황병 폭음관련 무전내용 일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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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병의 무전내용 일지다...

"530GP 적(북한군) 총격 도발 9발"이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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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김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도 투척했다고 발표했지만,

위 사진에서 보듯이 사실 석고 천장에 수류탄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40%정도는 공중으로 파편이 위로 튀기면서 쇠구슬들이 난사되어 천장이

심각하게 훼손되어야 한다.

 

지금 천장에 파편으로 온갖 형체가 남아야 하는데

 

그러나 천장은 깨끗하다.

 

 

 

 

1.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기전에

제 28사단과 최전방부대는 철원 5사단 27연대에서 북한 사병 리동수를 검거에 따른 조치로

"진돗개 둘" 발령과 최고조의 경계근무가 실시되고 사건당일 2005. 6. 18 - 6. 19일 주간, 야간 차단작전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국방부와 육군은 은폐하였다. (무엇때문에 은폐하였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2. 군 수사발표대로 내무실 취침 중 당한 사고였다면 모두 평상복 차림이었을 것이고,

모든 전투복에 피가 젖기는 힘들다. 왜 모든 전투복을 소각했는가?

 

3. 가짜범인인 김동민일병의 범행총기에는 잠정지문도 없고, 범행 시 목소리를 듣거나,

범행을 목격한 자가 없는 등 직접증거가 전혀 없으며, 사건 당시 전파내용은

"미상화기 9발 피격, 아! 530GP 북한인원으로 추정되는 미상화기 9발 피격, 5명 사망"

등의 부대일지 내용과

"야간 차단작전 중 사고였다,

사고후 그 상황에서 시신을 배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피를 닦아가며 혼자 시신을 배치했다" 는 진술 등이 있습니다.

 

4. 25명의 생존소대원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에게 조기전역 및 "국가유공자"로 지정시켰고 심지어

군복무규정을 위반하고 김동민일병을 괴롭혔다는 7명의 질책사병까지도 군법에 의한 처벌은 고사하고

조기전역과 국가유공자 6-7급의 특혜를 주었다. 이들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와 지원에 관한 법률 제 4조 6항(제외사유)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될 수 없음에도 위법적인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2명의 생존대원은 부끄러운 "국가유공자"는 싫다면서 거부하였는데

대한민국이 수여하는 영광되고 자랑스러운 "국가유공자"가 왜 부끄러웠는지를 밝혀야한다.

 

***. 2002년 서해교전때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실제 교전이 일어난 사건이었는데도 당시 일부 부상자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군의 수사발표내용은 530GP피격사건은 아군에 의해 내무반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적과의 교전도

아님에도 생존 사병들을 모두 조기 전역시키고 국가유공자로 예우했다.

 

***. 심지어 사건을 유발한 질책사병들까지 동일한 혜택을 주었다.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조치로

입막음용 특혜가 아니고 달리 무엇이라 변명 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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