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기증 리뷰

바켄뢰더 작성일 16.10.18 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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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리뷰를 올렸었는데 이번엔 제 그에 관련해서 제가 했던 골수기증 관련 리뷰를 올려보겠습니다.

그때 당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쓰느라 꽤 스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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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한참 감성터지던 1994년

아직 아마 서태지가 한창 날리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신세대 아이돌과 밴드들의 복사 카세트 테이프들을 리어카에서 팔던 시절마로니에의 칵테일사랑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것 같다.어느날 티비에서 미국계 한국인이 백혈병에 걸려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다며혈소판 및 골수 제공자들을 찾는다는 뉴스가 나오던때였다.오래되서 시기가 좀 엇갈릴지도 모르는데 왠지 머리속에는 그런 이미지들이 있었다.나는 그저 그런일이 있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어느날 아버지가 책자를 하나 주셨다.뉴스에 나왔던 백혈병 환자를 통해 한국에서도 제대로된 백혈병 및 골수이식의시스템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모병원 조혈모센터의 책자 였다.그 미국계 한국인의 이름은 세례명이었고 기억은 안난다.(기억나시는분은 댓글)아무튼 그가 뉴스에 나온 덕분에 백혈병이 주목을 받을수 있었고일반인들에게 골수이식에 관해 설명하고 기증자들을 안내할수 있는 단체가 생겼다는거 같다.아버지는 평소에도 꽃동네, 고아원, 노인회등등 단체에 기부나 도움을 많이 주는 사람이라뉴스에서 백혈병에 관해 나오자마자 바로 성모병원으로 연락해 기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당시에는 단체가 막 생긴터라 시스템도 아직 정비되지 않았던 때 였음에도 말이다.그리고 아버지는 나한테 그냥 이런게 있구나~ 하고 알아볼겸 한번 보라고 책자를 준거 같았다.하지만 나는 당시에 반항기도 임계점에 달해있었고 저돌적이라 이런게 있구나~ 하고 끝낼바에야그냥 안보는게 낫거나 차라리 골수기증을 신청하는게 낫다는 생각에 그자리에서 바로 아버지에게 골수기증을 하러 가겠다고 했다.
사실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어디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도 깜깜하던때였다.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어 쉽게 정보를 얻을수 있는 시절도 아니라 일단 부딛혀야 했기에성모병원에는 연락도 안하고 일단 책자에 있는 주소와 전화번호만 달랑들고 지하철을 탓다.돈도 없이 중딩이 거기까지 간다는게 지금 생각해보니 쉬운게 아니었다.그냥 어디역 근처, 몇번 출구 이것만 대충 알고 갔는데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나는 서초역이라고만 생각하고서초역에서 내려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다. 그것도 검찰청 입구로 가서 지나가는 검사들에게.사실 그렇게 멀진 않았다. 검찰청 바로 뒤에 산이 있는데 그것만 넘으면 바로 가톨릭병원이었다.나중에 안건 서초역보다 고속버스터미널역이 더 가깝다고 들었다. 그걸안건 골수기증 신청 10년후..그런데 지도로 보니 그건 또 아니네..?아무튼 나는 무작정 가톨릭병원으로 쳐들어 갔고 조혈모세포 은행이 어딘지 몰라 원무과에서 간호사들을 붙잡고 물어물어 찾아갔다.아직도 그날이 기억 나는데 조혈모세포 은행은 별관에 있어서 본관2층에서 구름다리를 지나 별관 끝으로 가야 한댄다.그렇게 물어물어 조혈모세포 은행으로 갔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 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조수대학생이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골수기증 신청 하러 왔습니다.""아... 혹시 연락은 하고 오셨나요?""아뇨. 그냥 이 책자에서 보고 주소가 있길래 바로 온건데요.""아...허허...""오늘은 안되나요?""아뇨, 일단 앉으시고, 설명을 들으시는겠어요? 어떤 일인지는 아시는거죠?""네. 뉴스에서도 봤고 책자도 읽어봤고, 좋은일 하는거잖아요."
그리고 그 조수대학생은 열심히 나에게 뭔가를 설명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난다.아마도 골수에 대한 지식과 조혈모세포에 대한 제반사항이었던거 같다.그리고 그 자리에서 혈액 샘플을 3개인가 2개인가 뽑았던거 같다.주사기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주사기 같은걸 혈관에 꼽고 시료병만 교체하는 물건이었다.시료병은 색깔별로 라벨이 붙어 있었고 어떤 시료병 안에는 안티푸라민같이 생긴 연고가 발려져 있는것도 있었다.아무튼 그렇게 간단하게 신청이 끝났고 나는 다시 서초역으로 걸어가 집으로 돌아.... 가진 않았고용산으로 가서 애니 포스터와 일러스트북을 몇개 사왔다.그때 당시 용산역에 내려 구름다리를 지나 건물로 들어가면 3층이고 2층 구석에 애니 전문점이 있었다.그리고 그렇게 내가 골수기증 신청을 했다는걸 잊고 지냈다.

3년후, 나는 고3.내 기억으론 한창 에반게리온에 푹 빠져 있었던 시절이었다.틈만 나면 용산으로 가서 레이와 아스카 포스터, 설정집등을 사모았다.지금 생각해봐도 용산역 건물에서 그 애니 전문점만 항상 사람이 붐비고 잘나갔던 시절이었던거 같다.80%이상의 품목이 에반게리온 관련이었다. 나는 엘하자드 OVA LD를 주문했는데 그 사람들은 신경도 안썼다.다른 가게들은 컴퓨터 부품, 워크맨, 노는역(PS1)관련 제품과 개조, 복사게임, 패키지PC 게임등을 팔았다.이때쯤 MP3 파일이 막 활성화 될때 쯤이었고 용산 상가 근처에는 엠피맨 이라는 생소한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용산역 구름다리 중간에는 항상 누군가 뭔지 알수 없는 VCD를 팔고 있었다.아직 인터넷도 지금 처럼 활성화되지 않았고 대형포털이 없어 천리안, 나우누리 정도라 온라인 주문 시스템이란게 없으니뭔가 사려면 직접 가야만 했던 시절이다.X-JAPAN CD를 사기 위해 거금을 줘야했고 야자 시간엔 항상 선생 몰래 엠씨스퀘어 쓰는척, CD플레이어를 틀었다.학주도 엠씨스퀘어 듣는건 허용했기 때문에...솔직히 내가 공부하는데 음악을 듣던 엠씨스퀘어를 듣던 선생들이 무슨 상관인지는 아직도 알수가 없다.그러던 어느날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니 엄마가
"오늘 낮에 너한테 전화 왔었더라? 조혈모 세포 은행이라고.. 너 혹시 아니?"
들어보니 내 혈액성분과 꼭 맞는 백혈병 환자가 있어서 나의 골수 기증 여부를 물어본거였다고 한다.난 물론 OK지만 난 하루종일 학교에 처박혀 있는 신세라 (아침7시 등교, 밤 11시까지 야자) 내가 연락을 할수는 없어또  연락오면 무조건 오케이니 날짜만 알려달라고 했다.생각보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고 스케쥴은 4주후로 잡혔다.환자의 항암치료, 무균실 생활 뭐 기타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바로는 못한다고 했다.아무튼 내가 할일은 학교에 알려 3일간 빠지는것.그런데 우리 학교는 인문계로 굉장히 유명한 학교중에 하나였다.매년초 현수막으로 서울대 XX명, 고려대 XX명 이런식으로 광고하던 학교중 하나라야자에 빠지는것 조차도 매우 깐깐했다.그런데 골수기증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날이 2박3일, 3일동안 학교를 쉰다니..우리 부모님에게 미리 연락을 받은 담임은 날 교수실로 불러 세우고 한숨부터 쉬었다.
"야.. 그거 네가 꼭 해야 하는거냐"
이게 담임이 했던 첫마디였다.나는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왔고 구역질이 났다.당신 선생들이 성과에 따라 어떻게 보상을 받는지는 몰라도 학교 몇일 빠지는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다니. 이게 당신이 선생이 되어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의 교육관인가.당신이나 당신 가족이 병에 걸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 경험이 있다면 그딴 소리가 과연 첫마디로 나올수 있었을까.저녁시간 한시간동안 담임은 나를 골수기증을 거절하게 만들기 위해 설득했고 나는 단호했다.담임이 누군가의 생명을 무시하라고 설득하는 그 작태가 나를 더 골수기증을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오히려 나는 사람의 생명조차 경시하라고 하는 그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교장선생님이 말기암으로 돌아가신지 얼마 안된 이 학교에서 담임이 할 수 있는 말이라니.(당시 교장선생님이 정기검진에서 말기암으로 확인돼 항암치료를 받고 가발을 쓰고 학교에 나오셨다)결국 담임은 나에게 다른 사람을 도우지 말라고 설득하는걸 포기했고 나는 골수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조혈모세포은행에 알렸고 앞으로 필요한것과 일정을 알려주었다.입원하기 일주일전 혈액팩 두개 분량의 피를 뽑아야 한다고 한다.왜냐하면 골수를 뽑고, 그자리 골수 대신 혈액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한다.그래서 아예 주중에 학교를 째고 당당하게 수요일날 혈액을 뽑으러 갔다.그리고 돌아오면서 용산에 들러 에반게리온 VCD를 몇개 샀다.셀렉트 화면은 2호기가 배위에서 커터칼을 들고 있는 화면이었다.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날 여사친이 생겼다.(상당히 애매한 관계였음)평일 오후 한적한 용산에서 젊은 남녀가 같은 애니 전문점에서 같은 에반게리온 포스터와 일러스트북을 사고지하철 1호선 같은 방향을 계속 마주치니 당연히 서로 눈이 갈 수 밖에,지하철 안에서 자꾸 눈이 마주쳐 "혹시 어디까지 가세요?" 라고 하길래내가 "이럴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했던게 시작이었다.그 여자는 끄윽 끄윽 웃음을 참다가 더이상 못참겠는지 푸하하하하하하하 하면서 미치ㄴ듯이 웃어제꼈다.그녀는 에반게리온 카오루 팬이라고 했고 나는 당연히 레이 였다. 그당시 웬만한 남자덕후들은 레이팬이었으니.아무튼 서로 덕후라는 공통점도 있었고 우연히 집도 바로 옆동네 아파트라 역에 도착해버스까지 같은 버스를 탓기에 거의 2시간동안 에반게리온 이야기만 줄창 할 수 있었고버스에서 내리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이 여사친 덕분에 천리안과 나우누리 아이디도 만들었고 전화선을 쓰던 시절이라전화비가 30만원씩 나와 등짝스매시를 맞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은 금방 지나가 입원하는날이 왔다.2박3일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병원이라는게 사실 뭐 할게 없는 공간이라 나는 만화책들과 노는역(플스1)을 준비해갔다.에반게리온 VCD도 들고 갔다.골수기증자는 가톨릭병원에서 1인식을 내준다.지금 생각해보면 환자측의 치료비에 포함된게 아닌가 싶다.기증자에게 1인실을 내주는건 다른 환자들로부터 병원균이 옮는걸 차단하기 위한게 아닐까 추측해본다.왜냐하면 환자는 무균실에 들어가 항암치료를 받는중이라 세균에 취약한 상태이고기증자의 골수도 병균에 오염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때당시 끽해야 고등학생이라 1인실이 얼마나 소중한 녀석인지 몰랐다.집에서도 무덤덤한 분위기라 아침에 집에서 나올때도 만화책과 플스1이 가득든 가방 하나 울러메고지하철 타고 서초역에서 내려 (또) 걸어왔다.오후 일찍 도착해 곧바로 병원에 입실 절차를 마친후또 몇가지 혈액 검사를 하고 이것저것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왠지 바쁜 오후가 지나고 저녁이 되어 병원식을 먹자, 조혈모세포은행 소장님(김태규)이 병실로 들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사실 한국의 백혈병치료는 매우 열악하다고 한다.몇년전 뉴스 덕분에 신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지만 그것도 잠깐뿐,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지자 기증 신청자의 숫자도 급격하게 줄었다.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겨우겨우 환자의 혈액성분과 기증자와 일치한 사람을 찾아 연락을 해도많은 사람들이 변심해 기증을 포기하거나 연락을 피했다고 한다.특히 골수를 체취하는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다고 표현해준 어느 다큐와 드라마 덕분에 변심한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그렇게 기증자를 겨우 찾고서도 골수를 기증 받지 못해 수천명의 백혈병 환자들이 생을 마감했다.기증을 포기한 사람들은 환자가 괜찮아졌을거라고 믿고 현실을 도피한다.자신이 기증을 하지 않아 환자가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하지만 백혈병환자가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게다가 백혈병은 사망율이 높아 치료를 받아 연명하기 위해서는 보험도 되지 않는 약들을 써야 하므로 억대 단위의 돈이 든다.간단히 말해 평범한 가정이 치료비만으로 집안이 풍지박산이 나고 여유가 없는 가정은 치료를 받을 돈이 없어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그래서 환자들에겐 골수기증이 익사하기 직전 잡는 지푸라기이다.소장님은 특히나 어린 아이들이 백혈병으로 소장님 손을 잡고 살려달라고 울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한다.환자와 가족에게 "기증자가 있었으나 변심했습니다" 라고 말할수가 없지 않겠는가.규정상 환자나 가족들이 기증자에 대해 알수없고, 진행과정도 불투명하게 한다.그리고 기증자도 환자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기증을 빌미로 금품을 요구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어느날은 환자의 가족이 어떻게 기증자의 정보를 알았는지 쫒아와서 제발 설득해 달라고 몇시간을 울며불며 매달렸다고 한다.하지만 결국 기증자를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환자는 연명치료를 받다 12살의 나이에 사망했다.그리고 소장님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말 대단해요 XX(내 이름)씨.. 그렇게 어린 나이인데. 결정하기도 쉽지 않죠. 학교에서도 반대 했다면서요?""아뇨 뭐. 제가 대단한일을 하는건 아니잖아요. 검사도 병원에서 다해주고, 저는 그냥 누워만 있는거니까요""정말 고맙습니다. 요즘 기증자도 많이 줄었어요. 그래서 참 어렵죠..""저야 좀 쉴수 있고 좋네요""참 그래요.. XX씨 보면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변심하는 기증자들 참 야박하죠.. 눈앞에서 무균실에 있는 환자를 본적이 없어서 그래요.. 본인이 환자가 아니니까 어떤 상황인지 모르죠..""....""백혈병이란 병이 병도 병이지만 집안을 통째로 뒤집어 놓는 병이라 환자에겐 참 고통 스럽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변심하는 사람들이 많나봐요""열에 아홉은 변심합니다. 얼마전에 무슨 드라마에서 골수 체취하는 장면을 보여준 이후로는 기증의사를 밝힌 사람이 몇개월에 한명정도 나오기도 했고. 그 사이에 참 많은 환자들이 갔죠"
내가 워낙 기증자가 뜸한 상황에 흔쾌히 기증의사를 밝힌 사람이라 소장님도 기분이 복받친 모양이셨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어요. 1996년에 조건이 맞는 환자의 기증자를 찾아서 연락했는데 거부했죠. 아플거 같다고.. 아프긴 뭐가 아프나요. 기증자는 전신마취하는데, 환자는 마취약을 쓸수 없기 때문에 환자만 고통 받는거죠. 아무튼 그렇게 몇주동안 설득했지만 결국 거부했고 기증을 기다리던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안타깝죠. 우리가 억지로 잡아다 놓고 기증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1년후에 어떤 백혈병 환자가 들어와서 혈액 검사를 했는데 기증자로 등록이 되어 있다가 거부했던 사람인겁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환자에게 조혈모 세포 은행에 기증자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가 삭제가 된 기록이 있었군요 라고 넌지시 말했더니 고개를 푹 숙이더군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울면서 계속 말하는데 제가 거기서 뭐라고 말합니까. 아무튼 그 환자의 기증자를 찾을때까지 치료만 계속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몇달후 환자가 너무 힘들었는지 제발 기증자 좀 찾아달라고 울면서 부탁하더군요. 일단 등록되어 있는 사람중에 맞는 사람이 없으니 일단 기달려 달라, 지금은 어쩔수 없다. 라고 했지만 환자에게는 그런 말이 들릴리가 없죠. 병원 복도에서 통곡을 하는데... 만약 그 사람이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기증을 거부하지 않고 기부 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 사람은 기부했던 사람에게 다시 골수를 받을수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혈액성분이 맞았던건 그 백혈병 환자뿐이었으니까요"
병은 사람을 차별 하지 않는다.그게 부자이던 가난한자이던 착한사람이건 못된놈이건 기증을 거부했건 안했건.그런데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카르마라는걸 느끼긴 한다.단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할만한 확률이긴 하지만 그게 하필이면...
소장님은 격려차원으로 내 병실에 방문하면서 음료수를 병실내 소형 냉장고에 넣어주고 가셨다.병원이란게 본인과 딱히 관련이 없다면 사실 크게 할것도 없고 심심해서 만화책을 보는게 다였다.수술전날 저녁부터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실수가 없기 때문에 심심함은 하늘을 찔렀다.다행히 노는역을 가져와서 병실에 있는 티비에 연결했다.가지고온 타이틀은 바하2, 스즈키폭발, 사이폰 필터.바하2는 두부를 플레이 중이었고, 사이폰 필터는 메기솔에 묻히긴 했지만 테이저샷으로 적을 처리하는게 제맛이었다.단지 표지 그림 때문에 샀던 공각기동대도 있었는데 그건 플레이 할 시간이 없었다.정작 주인공인 모토코는 게임내에서 오프닝말고는 코빼기도 안보였던거 같다.오프닝과 중간 영상은 2D, 주로 모토코가 나왔고 게임영상은 3D였다.3D 퀄리티는 박스를 몇개 붙인것 같은 퀄리티로 지금과 비교해서는 안될 수준.하지만 그래도 게임 자체는 꽤 재미있었던 편.그리고 중간중간 간호사누나가 들어와서 이것저것 체크하고 주사를 놔주고 갔다.
다음날 아침.전날 저녁부터 쫄쫄 굶어서 허기가 진 상태라 너무 배가 고파 있었다.10시쯤 되자 소장님과 집도의로 보이는 의사선생님과 제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우루루 병실로 들어와 내 상태를 체크하고 상태는 어떻냐고 물어보길래
"너무 배고파서 얼른 끝내고 고기집가서 거덜내고 싶네요"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푸하하하하하 하고 웃더니 "팔팔하네. 수술은 문제 없겠어" 라며금방 수술 준비하겠다며 제자들과 함께 다시 우루루 나갔다.그리고 11시쯤이 되자 남자간호사가 들어와
"곧 수술 시작하니 준비 과정 들어가겠습니다. 엉덩이쪽이랑 앞쪽 살짝 면도하고 소변줄 넣을게요"
라고 했는데 이때까지 나는 소변줄이 그렇게 무서운건지 몰랐다.남자 간호사는 이제까지 수천번은 다른 남자들 면도를 한것처럼 기계적이고 능숙하게ㄲㅊ 근처와 엉덩이와 등 사이를 면도했다.그리고 고무호스와 내 귀ㄷ에 로션젤리 같은걸 바르더니 요도에 고무호스를 방광까지 밀어넣었다.로션을 발라 매끄럽게 들어갔다지만 요도가 타는듯한 고통을 느꼈다.소변줄 끝에 매달린 봉지 안으로 소변이 나오는걸 확인한 간호사는 "자 이제 준비는 끝났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147673175544792.jpg(내가 당했던 소변줄은 끝이 이렇게 안생겼음. 그냥 고무관 툭 잘라둔 형태였음. 그래서 들어갈때 미치ㄴ 듯이 아프다)


다른건 모르겠는데 소변줄은 정말 불편하고 요도의 고통은 머리까지 지끈지끈하게 만들었다.게다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풀발기가 되고 한참을 애국가생각을 해도 풀리지가 않았다.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전립선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게다가 고2이라는 나이는 스치기만 해도 풀발이 되는 나이니 당연하다고...기증을 받는 환자쪽도 준비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2시간을 더 기다렸다.
그렇게 풀발 상태로 풀발이라도 죽이기 위해 만화책을 보고 있었는데 불편한 느낌은 없어지지 않았다.2시간쯤 지나서야 겨우 이동식 침대를 가지고 들어온 간호사들.두명이서 나를 들어서 이동식 침대에 올리려고 하는데 너무 낑낑대길래 "저 환자 아니예요" 하고 그냥 내가 올라갔다.오랫동안 운동을 한 몸이라 보기보다 체중이 많이 나가서 쉽지 않았나보다.그렇게 이동식침대에 누운채로 지나가는 천장을 보며 오직 한가지 생각만 스쳐지나갔다.'ㅅㅂㅅㅂㅅㅂ 소변줄...'마취실에 도착해서 수술복을 입은 간호사들과 의사들에게 둘러 쌓이자한 사람이 내 입에 산소마스크를 씌우고"이제 마취 들어갑니다. 1부터 10까지 숫자 세보세요""일..이.. ㅅ..."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마스크로 들어와 냄새를 맡았다고 생각되는 순간나는 어디엔가 누워 있었고 수술은 이미 끝나 있었다.그리고 내 팔다리는 이동식 침대에 붕대 같은 걸로 묶여 있었다.간호사가 내가 깨어났다는걸 인지하자 바로 달려와 묶은것을 풀어주며
"와.. 환자분 같은 사람 처음 봤어요. 마취했는데도 힘이 너무 쎄서 의사 선생님들이 수술이 안되서침대에 묶어 놨거든요. 골수 채취는 잘됐구요 이식도 잘됐어요. 허리가 좀 뻐근하겠지만 움직이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소....소..."
"네?"
"소변줄이 왜 아직도 달려 있는거죠....""아.. 많이 불편하시죠? 병실로 돌아가서 금방 빼드릴게요""아.. 아니.. 아직 마취되어 있는 상태에서 수술 끝나면 빼주시지.. 너무 아픔...ㅠㅠ""ㅎㅎ 남자가 그정도는 참을수 있죠""남자라서 더 아픔 ㅠㅠ"
그렇게 다시 이동식 침대에 누워 병실로 간후 곧바로 소변줄을 뺏다.넣을때는 그렇게 살살 넣드니 뺄때는 주욱 잡아 빼는데 내장을 갈고리로 긁어버리는 느낌이었다.내게 화생방과 소변줄 두개중에 하나는 해야한다며 고르라고 하면 그냥 입에 권총을 물고 자살할거 같다.그리고 거의 3일동안은 소변줄의 영향으로 잔뇨기를 느껴야 했고 소변을 볼때마다 요도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몇일간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는게 두려울 정도 였다.곧바로 소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와 수술이 아주 잘됐다며 수술경과를 알려주며 이제 먹고싶은거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다.너무 수고했고 고맙다며 여러번 악수를 하시고 나가셨다.그리고 난 아직도 소변줄의 영향으로 발기가 풀리지가 않아 침대에 계속 앉아 있어야 했다.아픈건 아픈거고 전립선을 자극해놨기 때문에 발기가 되어 있는데 고통이 배가 됐다. 그래서 병실에서 나가지도 못했다.게임을 하며 다른데로 집중을 하며 노력한 끝에 저녁 즈음에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그러다 샤워가 하고 싶어 간호사누나를 불렀다. 어제는 못본 간호사 누나였는데 정말 눈이 튀어나올정도로 예쁜 누나였다.147673123039607.jpg
(사진은 가장 닮았다고 생각되는 사람)
"무슨 일이세요?""아 저기 샤워가 하고 싶은데 해도 되나요?""하! 큰일나요. 몸에 구멍을 낸지 얼마나 됐다고. 그게 아물어야..."
하며 등쪽 수술자국을 살펴봤다.
"헐... 벌써 아물고 있네.... 잠깐 물어보고 올께요"
곧이어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가 같이 들어와 수술자국을 살펴본후
"상처가 아무는게 굉장히 빠르네요. 이정도면 소독제 바르고 테잎 붙이면 샤워도 문제 없겠네요.""샤워할때 거치적 거리니까 링겔도 빼주시겠어요?""으음... 어차피 거의 다 들어갔으니 이제 괜찮을거 같네요"
그렇게 고딩의 패기로 조치를 받은후 링겔에서 자유의 몸이 된후 샤워 하기전 팔굽혀 펴기 200개를 한후 샤워를 했다.왜 수술직후 팔굽혀펴기 같은거 하냐고.. 원래 고딩이 그렇다.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수업받는중에 이유도 없이의자에서 엉덩이를 떼 기마자세를 유지하여 허벅지 단련도 하는 나이다.1인실이라 샤워실까지 붙어 있어서 편했다.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난 후 샤워실에서 나오는데 아까 간호사 누나가 병실로 들어와서 문앞에서 마주쳤다나는 바지만 입은 상태였다. 게다가 환자복이라 노팬.간호사는 의사 선생님 지시로 다른 주사를 놔주러 왔고 반라의 나와 딱 마주치자 얼굴이 붉그스럼해지며 피식 웃으며어깨로 나를 툭 쳤다. 그리고 나는 슬며시 간호사 누나의 어깨를 감쌌다.
"ㅎㅎ 역시 고등학생이라 그런가.. 몸이 좋네요"




다음날 아침아침을 먹기전 어제 수술했던 의사선생님과 조수들이 우루르 몰려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때요? 몸은 괜찮나요?""말짱한데요? 자기전에 운동 하고 일어나서 팔굽혀펴기랑 운동 좀 했더니 깨운하네요""하하 미쳤네 ㅋㅋㅋ 수술하자마자 운동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수술상태 확인 좀 하게 뒤로 좀 누워봐요"
엎드려 누워서 엉덩이까지 깟고 의사 선생님은 수술자국을 보더니
"회복이 정말 빠르네.. 살이 거의 다 아물었어."
라며 안심하고 병실을 나갔다.곧이어 조혈모세포 은행 소장님이 들어와서 기증을 받은 백혈병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기증 받은 환자 상태가 너무 좋아졌습니다. 회복도 빠르고, XX씨 대단하네요. 역시 젊음이야.오전에 마지막 검사만 받고 이제 집에 가면 됩니다. 곧 간호사가 와서 안내해줄거예요"
소장님이 냉장고에 넣어뒀던 음료수를 챙기고 플스와 만화책들을 정리하며 짐을 챙겼다.그러는 와중에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던 엄마가 소장님과 함께 병실로 들어오셨다.
"읭? 엄마? 무슨일이예요.""잘 끝났니? 그래도 아들이 병원에 있다는데 와봐야지""수술은 잘 끝났어요. 저 마지막 검사 받으러 가야 하니까 여기서 좀만 기다려주세요""네 짐 차로 옮길꺼니까, 네 짐 이거니? 가방 하나야?""네 그것뿐이에요"
내가 검사를 받으러 간 사이에 소장님이 골수기증에 대해 엄마에게 설명을 해주셨다.
"정말 대단한 아들을 두셨네요. 어머님이 정말 자랑스럽겠습니다. 골수기증이란거 정말 아무나 할 수가 없는거예요"
소장님한테 설명을 들을 때까지 엄마는 백혈병과 골수기증에 대해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그저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를 빠지고 어디를 놀러 다닌다는 생각에 걱정만 했는데아버지가 칭찬은 못해줄 망정 그런생각만 가지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퇴원하는날 병원에 찾아오셨다고 한다.
나는 마지막 검사를 마치고 옷을 갈아 입은후 간호사 누나가 적어준 나우누리 아이디를 적은 쪽지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 소장님과 간호사 누나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그 누나의 이름에 생년숫자를 붙인 간단한 아이디였는데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쉬운 아이디였다.후에 몇번 더 검사할일이 있어서 갈때마다 간호사 누나에게 미리 연락해서 만났고누나가 결혼할때까지 자주 혜화역 대학로에서 만나 연극을 보고 밥먹으며 놀았다.
그렇게 마지막 검사를 마치고 짐을 차에 실고 집으로 갔다.그리고 엄마는 운전을 하시면서 그제서야 아들이 무슨일을 했는지 이해하신다는듯 아무말 없이 내 손을 잡아주셨다.
다음날 학교에 돌아갔을때는 선생들이 나를 보는 눈은 변해 있었다. 학교를 빠지는 불량학생으로.선생들은 그 이후 나만 보면 사사건건 복장불량, 두발불량, 주머니 검사 등을 했고숙제를 안하면 "네가 그럼 그렇지"로 시작해 남들은 안때리던 매타작을 나는 한대라도 더 맞았다.특히 학주가 남학생들 허벅지 안쪽을 꼬집는걸로 유명한데 특히 나에겐 심하게 자주 했다.

그렇게 첫번째 골수기증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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