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단원고 2학년 9반 박예지 학생 생일입니다.
축하와 응원의 메세지 많이 남겨주세요.
세월호 참사 696일째 되는 날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예지는 여섯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 맏딸입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예지는 어렸을 때부터 성숙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고 든든한 맏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게 미안하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안 계시면 동생 밥을 자기가 직접 챙겨 먹이고 엄마 걱정하지 마시라고 음식 차린 밥상을 "인증샷"도 찍어서 보내곤 했습니다. 동생이 어렸을 때는 어린이집에서 동생을 데려오는 것도 예지가 맡아서 했습니다. 예지는 컴퓨터를 잘 했고,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예지는 알뜰하고 생활력이 강한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세뱃돈을 모아서 아빠 중고차를 사 드린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 할머니 생신 때는 영양크림을 선물로 사 드렸습니다. 예지를 잃은 뒤에 할머니는 그 영양크림을 도저히 바를 수 없어 그저 바라보면서 우신다고 합니다.
예지랑 세월호에 함께 탔던 2학년 3반 김시연 학생과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촌입니다. 아직도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미수습자 2학년 1반 조은화 학생과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습니다. 예지하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8-9명 정도 되는데, 그 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두 명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예지 부모님도 "전원구조" 소식을 듣고 안심하셨고, 다른 부모님들처럼 아이들이 추울 거라 생각하셔서 갈아입을 따뜻한 옷을 가지고 팽목항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막상 팽목항에 내려가보니 아이들은 여전히 기울어가는 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지는 일주일 뒤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지 어머니는 예지의 마지막 모습을 꼭 봐야겠다고 고집하셔서 얼굴과 옷까지 전부 직접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원확인 뒤에 어머님은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가셨습니다. 바다에서 진흙 묻은 예지 가방이 나왔을 때 어머님은 그 가방이 깨끗해지고 냄새도 안 날 때까지, 손에 피가 나도록 몇 번이나 밤새워 빨고 또 빨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