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호에 있었던 실존인물들

좋은기억만 작성일 17.03.26 20: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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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존 스미스

 


당시 경험이 아주많은 선장이였으며 호화유람선을 자주 몰아 '억만장자들의 선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있었다.

당시 타이타닉을 운항한후 은퇴할 계획이였으나 충돌후 승객들의 대피를 도운뒤 배와 함께 인생의 끝을 맞이한다. 그의 최후는 여러 증언이 많으나 가장 많이 들리는 증언은 홀로 선교에 쓸쓸히남아 배와함께 최후를 맞이했다고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이미 선교 창문까지 물이잠겼음에도 모든걸 체념한후 담담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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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앤드류

 


그는 타이타닉을 만든 회사 halland & wolff사의 선박 설계 감독관이였다.

사실 타이타닉호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든이유에는 그의 무리한 판단도 일조를하였다, 원칙을 무시한 설계와 배의 미관을 해친다라는 이유로 36개의 구명보트를 달아야했으나 20개의 구명보트만 달도록 지시했다.

영화작중에서는 주인공 로즈에게 더 튼튼하고 안전한 배를 만들지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운뒤 선내 흡연실에서 시계를 맞춘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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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브루스 이즈메이

 


그는 타이타닉호의 선주이자 선박회사 이사였다.

그는 오로지 배의 홍보만을 위해 무리하게 빨리 몰라고 지시하였고, 충돌후 자신의 하인과 비서진들을 모두 버리고 자신만 마지막 구명보트에 탔다. 그는 비난을 피하기위해 구조후 갑판위에 남은 사람들이 없었다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았음에도 사교계에서의 심한 왕따와 손가락질에 시달렸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화이트 스타라인의 회장을 역임했음. 영화 작중에서도 배에모든 남성들이 여성과 아이들이 먼저라며 한사코 여성과 아이들을 구조하는데 힘쓰고있을때 그 무리를 비집고 구명보트에 홀로 타서 탈출한다.

1937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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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플리트

 


1912년 4월 14일 500M 전방에있는 빙하를 전망탑에서 육안으로 확있했으나 너무나 짧은 거리에 피할수가없었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생존해 1936년까지 배를 타다가 고독을 못이겨 마당 앞 빨래줄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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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구겐하임

 


스위스 이민자 출신의 미국철강산업의 대부 아버지 마이어 구겐하임의 아들이였다, 뉴욕에 본처를 두고 프랑스 현지처이자 가수인 레오틴 오바와 쉘부르에서 같이 배에 탑승한다.

배가 충돌후 탈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것을 알고 마지막까지 신사답게 가겠다며 구명조끼를 입는것을 거부하고 하인에게 가신이 가진 최고의 턱시도를 가져오게해 입고 그의 하인들은 모두 구명보트에 태운후 그의 본처에게 "최선을 다했다라고 전해달라는" 라는 유언을 남기고 마지막까지 브랜디와 시가를 피우며 최후를 맞이했다.

작중에서는 큰 선실에서 차려입고 브랜디와 시가를 피우다가 물이 점점 급격하게 차오르자 신사의 품격을 지키려던그도 인간이기에 공포를 느끼는 모습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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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레스 하틀리

 


타이타닉호의 침몰기록에 바이올리니스트 하틀리와  8인조 밴드가 배가 침몰하는 마지막까지 연주를 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도 배가 침몰한다면 마지막까지 '신 그대와 가까이',' 지난시절 구세주였던 신이여'를 연주할것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호화 선박악단 단장이였으며 그는 배를 타기전에도 그의 약혼녀에게 그다지 타고싶지 않은배지만 승객들과의 만남을 저버릴수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배에 탑승했다.

작중에서도 그는 승객들을 위한 연주를 마치고 악단멤버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멤버들을 보낸후 그 홀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그러나 나머지 단원들도 그의 바이올린연주를 듣고 가던길을 멈추고 모두 최후까지 승객들을 위해 연주하다 끝을 마친다.

그를 기리기위해 장례식에는 4만명의 조문객이 왔으며 콜른에는 동상이 건립되었다. 최근에는 그의 바이올린이 발견되어 경매에서 15억정도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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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도&스트라우스 부부

 


뉴욕 맨해튼시 메이지 백화점의 소유자 스트라우스 부인은 구명보트 승선자격이 주어졌음에도 남편과 함께 침실에서 최후를 맞이하는편을 선택했다.

 

이 부부는 평소에도 금슬이 유별나서 자식들이 생존할수있었음에도 동반죽음을 택한소식에 그다지 놀라지않았다고한다.

스트라우스 부인은 자신이 타는대신 그녀의 하녀를 태워주었으며 자신의 모피코트는 더이상 필요가없을것이라면 하녀에게 입혀주었다고한다.

부부의 마지막 포옹을 목격한이들도 많다.

뉴욕 브론크스 묘지에 돌담에는 "물은 사랑을 채울수없는 반면, 사랑을 죽이지도 못한다'" 라는 격언이 있다. 영화작중에서도 두 부부는 침대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포옹하며 최후의 키스를 나누며 최후를 맞이했다.

 

 

 

출처 : fm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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