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죄송합니다. 변명의 여지 없이 부끄럽습니다." VS. "기사 쓰라 그래. 그게 뭐라고."
술이 또 문제(?)였다. 배우 윤제문이 과도한 음주로 공식 인터뷰 일정을 취소했다. 음주운전 탓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자숙한 뒤 10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던 그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건 당연했다.
지난 6일 영화 ’아빠는 딸’의 언론 인터뷰 첫날. 그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했다. 제작보고회 이후에 또 사과한 그의 태도가 보기 좋았다는 기사도 나왔다. 하지만 둘째 날 오후 2시 라운드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윤제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알기에 이번에는 살가운 인터뷰가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모자를 눈 아래까지 푹 눌러쓴 그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누구나 술을 먹으니 술 냄새 정도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오후가 됐는데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숙취에 찌든 그는 간신히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다섯 명의 기자들이 노트북을 꺼내 인터뷰할 준비를 마쳤으나 그는 아니었다.
"어제 과음하신 것 같다"고 하니 그는 "잠을 못 자서 그래요"라고 답했다. 다른 기자가 "눈을 보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인상을 찌푸리고 모자를 조금 위로 올려 썼다. 윤제문은 상대의 반응이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눈이 부셔서"라고 침착한 척했다.
애써 모른 척 질문을 던졌다.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이번에 코미디 연기가 좋았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고생이 되어야 했으니 노력한 게 무엇이냐?" 등의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횡설수설. "쉬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그래요. 그만합시다. 미안합니다"라며 주위에 있던 영화홍보사 관계자와 소속사 홍보팀에게 "(인터뷰) 다 취소시켜"라고 소리쳤다.
순간의 정적.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인터뷰라고 쉽게 봤을까. 약속을 정해 만나기로 했으면서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에 가까운 상태로 인터뷰에 임하는 주인공은 상상도 해본 적 없다. 개인적 만남도 아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자리인데 본인이 참여한 작품과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의 부재다.
다시 테이블에 돌아온 그에게 일말의 희망도 걸어봤으나 역시 허사였다. 소속사 홍보팀과 영화 홍보팀으로부터 억지로 끌려온 듯한 그는 테이블에 앉아 시큰둥하게 "미안합니다. (인터뷰)하죠"라고 했다. "끝인가요? 왜 이렇게 됐는지 해명 등 말씀을 진정성 있게 더 하셔야 할 것 같다"고 하자 기자를 노려본 그는 "내가 뭘 더 해야 하나요? (사과했으니) 됐잖아. 그만해"라고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소속사 매니저와 홍보팀이 붙잡아도 "이거 안 놔? 기사 쓰라 그래. 그게 뭐라고"라며 씩씩대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음주로 인한 ’잠재적 살인’의 잘못을 사죄하고 죄스러움을 밝힌 게 바로 전날이었다. 그런데 또 술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오랜 생활 이 세계에서 일한 베테랑 배우이기도 하다. 본인의 행동이 잘못됐다면 바로 잡아야 하건만 뭐를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톱스타인 내가 시간을 내 너희들을 만나주는데 이런 사소한 걸 뭐 트집 잡느냐는 생각이었을까.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몇 안 될 거다. 문제는 실수한 다음이다. 윤제문은 바로 잡을 기회를 줬는데도 거절했다. 이미 음주운전 범죄도 세 번이나 걸렸던 그다. 술을 조심하고 자제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10년 정도 이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이런 인터뷰 취소는 처음(몸이 아파, 사고가 나 인터뷰가 취소된 경우는 있었다)이었다. 저예산 영화에 참여한 유명 배우 중 영화를 향해 애정을 쏟아낸 이도 많았다. 일주일 동안 시간을 비우고 수십 개 매체 1대1 인터뷰를 한 배우도 있었다. 본인이 출연한 (정말 소규모 예산의) 작품에 헌신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윤제문의 행동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 다른 배우나 영화 스태프의 고생은 생각 않고 본인의 치기 혹은 취기에 안하무인 태도가 짜증을 유발할 정도다.
더 안타까운 건 윤제문은 마지못해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하고 사라져 버리고, 영화 홍보팀과 소속사 홍보팀, 영화 제작사 대표가 수차례 민망할 정도로 기자들에게 대신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미리 취소 못 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 치고는 과할 정도다. 사고 치는 사람과 사과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다. 나이 어린 이도 아니고 중견 배우가 이러는 건 특히 더 믿기 힘들다.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연기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안하무인 행동과 태도 탓 그는 팬을 한 명 잃었다. 아니, 최소 5명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의 행동에서 유추해보건대 5명의 팬쯤은 잃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를 찾아주는 건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 감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요즘은 연기만 잘하면 사고 쳐도 되는 게 유행이라도 되는 건가….).
오랜 시간 공들이고 노력한 영화 ’아빠는 딸’에게 피해가 조금은 덜 가길 바랐다(관객의 선입견이 생기지 않았으면 했기에 영화 개봉 후 이 칼럼을 쓰는 이유다). 그가 왜 술을 많이 마셨는지,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는지 해명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의 의지는 이후에도 없었다. 오히려 라운드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이 되도록 영화에 피해가 안 갔으면 하는 대책을 논의했다.
과연 술이 문제였을까? 이 정도면 그 사람의 본성이 문제가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