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고 싶은 청년의 이야기

노력매니앙 작성일 17.06.30 18: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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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 지잡대 4년 졸업. 학점 2.5

 

대기업 or 중견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면접제의를 받은 곳은 단 한군대도 없었다.


자기소개서 문제인가 싶어 돈을 써서 기업별로 원하는 자기소개서를 짜집기로 열심히 작성했다.

모두 탈락.

상반기 공채는 모두 끝났고 의미없는 백수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용돈으로 PC방과 술로 방탕한 생활을 했고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 하반기 공채기간이 되었다.

준비해둔 자기소개서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으로 넣기 시작했고 느낌이 좋아 면접용 정장까지 준비했다.


한달.. 두달...

중견기업에서 1차 면접오라는 말에 마치 그곳에 입사를 한 거처럼 들뜨기 시작했고 말하면 안되었지만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했다.


XX기업.

서울 강남에 위치한 기업이었다.


떨리는 기분은 청심환으로 가라 앉히고 입구로 들어갔다.
드라마에서 봤던 엄청 화려한 빌딩은 아니지만 나름 회사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어색한 표정과 어색한 정장을 입은 라이벌들이 서로를 견눈질하며 면접 대기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원한 부서는 2명 채용이었다.
모인 인원은 대략 20명 정도. 그렇다면 10:1 이라는 뜻이었다.


긴장이 되는지 손에 땀이 나는거 같았다.

4명씩 면접실로 들어가는 모습에 세번쩨에 면접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마지막 4번째 의자에 앉았고 앞에는 면접관 3명이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의 이력서를 보고 얼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부터 한 명씩 해보세요. 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나의 자기소개서에서 어버버 거리며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없었다.
4명 중에 명문대 출신인 사람에게만 관심과 질문이 쏟아졌고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4명 중에 학벌도 준비한 토익도 자격증도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면접이 끝나고 회사에서 나오자 속이 쓰렸다.

일주일 후...
예상했던 대로 불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알고 있었지만 작은 희망에 살아왔던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면접 잘 보았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더 좋은 기업을 위해 1차면접에 붙었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 이후..
나에게 면접제의를 주는 회사는 없었다.


하반기 공채기간이 끝났지만 이력서는 계속 제출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일어나 채용사이트에서 들어갈만한 곳이 있는지 찾는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경력자... 경력자...

경력자만 뽑으면 도대체 신입은 어디서 일하라는 걸까?
기분이 더러워 깡소주를 하고 잠이나 실컷 자고 쓰레기처럼 허송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은 금방 흘렀고 백수처럼 지내는 시간이 적응되어가고 있었다.

29살.

졸업한지 1년이 지났다.

상반기 공채기간이 되었고 준비했던 이력서를 공략적으로 기업에 넣기 시작했다.

결과는 역시나 불합격.

계속되는 불합격에 결국 취업상담을 하게 되었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잡대는 이미 서류에서 걸러낸다.

상담원은 나에게 중소기업에 취업해 경력을 쌓아서 이직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소주를 엄청 마시고 스스로 욕심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중소기업으로 들어가서 경력을 쌓자!

이력서를 중소기업에 무작정 밀어넣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 중소기업이 이리 많은지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대략 100군대의 이력서를 제출하자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10군대 정도 왔다.
죽어있던 자존감과 자신감이 어느 정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면접을 보러가자 건물 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낡은 빌딩에 3층에 엘리베이터도 없고 조그만한 사무실이 전부인 곳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이나 경험할겸 들어가자 나말고도 면접자가 2명 더 있었다.
나까지 3명이 면접을 보게 되었고 면접관은 사장과 팀장이었다.

면접도 1차만 통과하면 합격한다는 말에 이건 뭐 느낌이 거의 합격 같은 느낌이었다.

면접이 시작되었고 평범한 자기소개서로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나의 학교부터 나의 장점과 단점 성격 등 준비했던 자기소개서로 다른 2명도 자기소개서를 시작했다.

두 명의 면접자들의 자기소개서에 내심 놀라서 헉 소리가 날뻔 했다.

인서울 대학에 토익에 자격증까지 나름 스펙 좋은 놈들이 왜 여기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예전에 중견기업과 같은 면접 분위기가 되었다.
나에게는 질문은 없었고 나머지 2명에게만 열심히 질문이 시작되었다.


1시간의 면접이 끝났고 사장은 노골적으로 1명 면접자에게 바로 합격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너덜털 하게 회사에 나오자 담배와 술이 땡겼다.


하필 재수없게 인서울 애들이랑 붙을 줄을 몰랐기에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머지 중소기업도 대부분 인서울 대학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처럼 지잡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10군대 중소기업 면접을 보았지만 합격은 단 한군대도 없었다.


그제야 현실이 보였다.
취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회사를 고를때 선배가 해주었던 조건 검색을 풀어야만 했다.

10명 미만 회사는 가지마라! 라는 선배의 조건을 결국 해제하고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10명미만 중소기업에서 당장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1:1 면접.

회사라고 생각되지 않는 허름한 단칸방 같은 사무실에서 면접이 진행 되었고 2군대에서 드디어 원하던 합격 연락이 오게 되엇다.


1번 회사 : 홍보대행회사로 연봉 2000에 5일근무 주말근무 있을 수 있음.(주말수당)
2번 회사 : PC부품 도소매회사로 연봉 1900에 6일근무.


솔직히 두군대 모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거의 1년반 동안 백수이기에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00만원 더 주는 홍보대행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첫날 출근하자 바로 외근.
주 업무는 홍보를 맡긴 갑업체의 팜플렛을 고등학교에 뿌리는 것이었다.

사무직으로 알고 입사햇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가뜩이나 더운 7월에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홍보책을 고등학교 사물함이 있는 곳에 놓고 오는 일이었다.

선임은 운전 및 나를 고등학교 정문에 내려주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나 혼자서 고등학교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락 내니락 거리며 홍보책을 뿌리는 것이었다.

더 웃긴 사실은 잡상인으로 오인해서 경비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박카스라도 사드려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9시부터 6시까지 하루 종일 발로 뛰며 홍보책을 뿌리는 것이 주업무였다.
7시에 복귀해 오늘 하루 뿌린 결과를 조합해 선배에게 주면 최종적으로 일일업무 보고를 하고 퇴근하게 되었다.

밤 8시.
퇴근을 하게 되었고 정장은 하루종일 걸어다녀서 땀으로 쩔어있었다.


더 웃긴 사실은 정장을 입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편안하게 입고 고등학교로 가게 되면 잡상인으로 오해받아 아예 출입도 안된다는 일이 많다는 이유였다.


혼자사는 원룸으로 돌아가 구두를 벗자 발이 퉁퉁 붓고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그대로 쓰러져서 잠을 자게 되었다.


다음날.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에 눈을 뜨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전 10시 20분.

젠장!!! 15통의 부재중. 통화는 선배의 전화였다.

부랴부랴 정장을 벗고 샤워를 하려는데 갑자기 기분이 확 하고 나빠졌다.

내가 이런 좆같은 일 하려고 4년동안 비싼 돈내고 대학에 나온게 아니었다.

천천히 샤워를 하고 문자로 선배에게 회사 못나가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그냥 쉬기로 했다.

문자 답장은 '끈기도 없는 놈' 이었다.

화가 나서 따지려했지만 말싸움도 하기 싫어 그냥 씹고 침대에 누워 잠이나 실컷 자버렸다.


그 이후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실망하고 하루 이틀 해보고 안나가기를 반복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하반기 공채기간도 열심히 이력서 넣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30살.
백수를 한지 벌써 2년을 꽉 채웠다.

2년 동안 늘어난건 담배와 술뿐이었다.
좆같은 돈도 안주고 굴리는 중소기업은 자존심 상해서 도저히 못들어가겠다.


급한대로 편의점 알바로 월세랑 생활비를 충당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반기 공채기간이 되었지만 어차피 탈락하기에 이력서 넣는 것도 귀찮아 대충 넣는 것이 그나마 불안함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아직 공부하면서 취업준비로 대충 둘러대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차 불시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A,친구B 모두 나와 그나물 그밥이었던 동문들이었다.

어찌지내냐는 말로 소주한잔 기울이며 안부를 물었다.

친구A 친구B는 처음들어보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친구놈들은 이제 그만 눈높이를 낮추고 취업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에 화가 나서 오히려 그놈들을 공격했다.

중소기업 다닐바에는 차라리 지금처럼 편의점에서 일하겠다고...
결국 친구 A,B와 크게 싸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를 엉망이 되었다.


31살

시간이 흘러 31살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편의점 알바로 취업준비생이라는 말로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 울리는 핸드폰의 연락은 결혼하는 친구들이었다.
연락을 끊고 담배와 소주로 스스로 위로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32살.

2년 넘게 하던 편의점에서 그만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매출이 좋지 않아 사장이 알바를 쓰지 않고 직접 하겠다는게 이유였다.

편의점에서 일하면 폐기물 먹거리로 살아오던 나에게는 큰일이었다.

다시 편의점 알바를 알아보려고 돌아다녔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햇다.

급하게 다른 알바를 알아보려 했지만 대부분 할만한 알바가 아니었다.


월세도 내고 생활비도 필요했기에 선택지는 하나였다.

일용직 노가다였다.

알선지에 5천원을 내면 공사현장으로 대려가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 일당은 7~8만원.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일단 돈이 필요하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나이먹고 노가다에 있는 아저씨들을 보며 나는 지금 잠시 하는 거지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마음 먹게되었다.


노가다도 익숙해지자 쉬고싶을때 쉬고 월세나 생활비가 필요하면 어쩔수 없이 일용직을 하게 되었다.


33살.

여전히 노가닥로 살아가며 담배와 술로 하루를 살아갔다.
돈이 떨어지면 공사현장에 나가면 그만이었다.


오랜만에 친한 선배가 연락이 되어 둘이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 나를 보는 선배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외모는 이제 거의 신경도 안쓰고 노가다로 인해 얼굴은 흑인이라도 방불케하는 색이 되었다.


소주 한잔을 하며 선배는 이제 그만 정리하고 취업을 하라는 말에 나를 고개를 저었다.
선배는 결국 나에게 화를 내며 쓰디쓴 조언을 했다.


지금 상태를 보라고 망가진 너의 모습과 노가다와 술과 담배로 33살이지만 40살이라고 믿겠다는 망가진 몸뚱아리를 보라는 말이었다.
여기서 1~2년 지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거라는 말이었다.


너무 열받고 자존심이 상해 그자리에 박차고 일어나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 날 나는 너무 화가나서 인지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 일이 있고 다시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열었지만 자신감이 없었다.
33살에 신입이라니. 나보다 어린 놈들이 나의 선배라고 으쓰대는 꼴을 생각하니 맘설여지기 시작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이력서를 넣지 않고 PC를 종료했다.


34살.

공사현장에서 점심에 막걸리를 과하게 먹고 고졸출신 반장과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다.
고졸 주제에 나에게 명령내리는 모습이 아니꼬았기에 시작된 일이었다.


반장의 앞니가 2개가 부서지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술이 깨고 나니 경찰서에 앉아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합의 금액은 500만원입니다. 좋게 좋게 합의하시는게 좋을겁니다.
담당 경찰의 말에 나는 결국 500만원에 합의를 하게 되었다.


당장 만원도 없는 나에게는 500만원은 큰 돈이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해보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돈을 꿔줄리 없었다.

결국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말하고 500만원을 받아 합의를 할 수 있었다.


공사현장에서 사고로 인해 노가다도 일을 끊어지게 되어버렸다.
요즘은 일용직도 전산화가 되어 사고를 치는 인력꾼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였다.


노가다도 못하게 되었고 더 힘든 노가다자리는 가능했지만 그건 할일이 못되기에 결국 노가다도 안하기로 결정했다.


알바를 알아보고 알아보자 큰 고깃집에서 고기판을 닦는 자리를 할 수 있기에 시작하게 되었다.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였다.


35살.

고기불판 닦는 일도 1년째 하고 있었다.

월급은 180만원.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할만한 일이었다.


열심히 불판을 닦고 허리가 아파 담배도 한대필겸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예전에 중소기업 다닌다고 뭐라고 해서 연락이 끊겼던 친구 A였다.

친구A는 와이프와 4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기랑 고기집에 들어오는 길이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결국 어색하게 잘지내냐는 안부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간단한 안부와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어버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당황을 눈치를 챘는지 친구A는 와이프와 아기를 먼저 고깃집으로 들여보내고 둘이서 담배 하나를 더 피게 되었다.


친구 A는 아직도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벌써 7년차에 진급을 빨리해서 차장이라는 말에 월급도 괜찮고 나름 결혼도해서 먹고 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예전에 중소기업 다닌다고 무시했던 친구는 결혼도 하고 아기까지 낳아서 외식하러 나왔다는 사실에 그제야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병신같았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A가 다음에 소주나 한잔하자는 말과 함께 고깃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나는 행볶하게 가족들과 외식을 하는 친구A 가족을 보자 멍하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미련하고 고집불통의 병신이었는지...


중소기업에 다행히 취업할 수 있었고 마치 운명인지 하루 나가고 때려친 예전에 홍보대행회사였다.
그때 선임은 회사에 실장이 되어있었고 나를 기억하는지 웃으면서 열심히 해보자고 받아주었다.


35살 신입사원인 나는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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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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