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검도 7단, 태권도 7단, 대한합기도 공인 및 대한합기도 시범단장, 수상안전연합회 중앙구조본부장, 경찰특공대 대테러 사범 및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안전관리대책기획단 자문위원장, 환경처산하 자연보호중앙회 구조본부장, 중앙 119구조단 명예대장 등등의 직함도 있다. 국제연합이 지정한 네덜란드 국제구급구조 교육전문기관(ICET) 지도자 교육을 이수
1972년 동양방송 입사 때부터 무술사범 특채로 입사
그 밖에도 미국 연방교통안전국(NTSB) 표창
정동남 아저씨가 구조활동에 몸을 담계 된 계기는 매우 특별하면서도 가슴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한강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시 구조를 할 수 있었던 뱃사람들은 돈을 요구했고 그들에게 돈을 쥐어줬지만 결국 동생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오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정동남 본인은 물에 빠진 사람은 무조건 구해야 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구조활동에 몸담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정동남 아저씨의 구조 활동 이력또한 대단하신데 나무위키 상으로
1990년대부터는 연예계 활동보다는 구조활동으로 TV에서 출연하는 일이 잦다.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및 성수대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태풍 루사와 매미 수해 등의 국내 재해 뿐 아니라 태국 쓰나미, 쓰촨성 대지진, 괌 대한항공 항공기 추락사고 등등 국외의 수많은 참사현장에 나타나 구호활동을 벌여 '인간 119'란 닉네임도 붙었다. 하여 미국 NTSB 표창, 국가안전관련공로 대통령표창 (2000년), 국민 훈장 동백장 (1998년), 좋은 한국인 대상 (1997년), 국가안전관련공로 대통령표창 (1995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본상 (1995년) 등등. 이 인터뷰만 보아도 얼마나 진심을 다해 활동하는 지 알 수 있다. 2000년대부터는 한국구조연합회 회장으로 많이 활동하고 있다.
2002년: 사상 최악의 침수피해를 본 경남 김해시 한림면에서 일주일째 구조 및 복구활동을 펼쳤다. 대원 20여명과 보트 4대를 동원하고 실신상태의 주민들을 후송하고 골절상을 입은 30대 남자도 구조했다. 특히 정씨는 지명도를 활용해 극심한 피해로 격앙돼 있는 주민들의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중앙부처 관계자나 언론인의 접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민들을 설득했고 특유의 너스레로 시름 속에서 웃음을 엮어내기도 했다.
2005년: 남아시아 지진해일 쓰나미 피해 때 가장 먼저 태국 푸껫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을 펼친 공로로 14일부터 4일간 태국 푸미폰 국왕부부 결혼 55주년 기념행사 '어메이징 드림 포 러버'에 부부동반으로 초청받아 태국 남부에 위치한 뜨랑을 방문한다. 이번 행사는 태국정부와 타이항공이 주관해 태국의 톱스타 커플 및 전 세계 55쌍의 VIP가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태국관광청과 타이항공은 정동남의 구조활동을 인상깊게 보고 태국 전문 한국기업인 KTCC(대표 이유현)를 통해 초청장을 보냈다고... 이 행사 참석 외에도 태국 해군 특수부대의 초청으로 피피섬 살리기 해저 오물청소 등을 계획하고 있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 때 여행자 보험만 들어놓고 쓰촨성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말이...
"우리 단체가 중국에 지원을 간다고 하니 외교부에선 '뭐 하러 가느냐. 쫓겨난다'며 현지 입국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고 하더라. 어쩔 수 없이 관광비자로 가야 했다. 중국에 도착하니 그곳 총영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가 타고 갔던 비행기 기장과 항공사 현지 지점장 도움으로 세관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인도주의적 봉사를 실천하겠다는 대원들의 의지를 다름 아닌 우리 정부가 짓밟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분했다."
저렇게 어렵게 도착한 지진 발생지역은 접근이 어려웠고, 중국인민 대외우호협회의 협조를 받아 구조와 복구작업이 가장 더딘 쓰촨성 북부 칭촨 무위진 지역 진입에 성공했다. 구조대는 320여 명이 숨진 무위중학교 건물 잔해에 진입, 추가로 시신을 찾아내고 수일 동안 사체 처리 및 방역 작업을 벌였다. 정동남 대장과 구조대의 활약은 베이징 데일리를 비롯한 4개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을 통해 보도됐다.
구호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서 중국 시민들이 길가에 도열해 우리 버스를 환송해 주고 눈물로 작별인사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주민들에게서 예기치 못한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우리를 알아본 그곳 주민들이 음식값을 내주더라. 택시기사도 우리 구조대 조끼를 보더니 돈을 안 받았다. 이국 땅에서 힘든 날을 보냈지만 그들의 정을 확인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또한 천안함 피격사건에도 솔선수범하여 군 수뇌부와의 협의 하에 한국구조연합회 회원 32명과 함께 수색작업을 펼치기로 했다. 이미 28일 침몰한 해군 초계함의 실종자를 찾기 위해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으나 해군 측의 불허로 구조 작업 투입이 무산 됐었는데, 29일 허가받아 수색작업을 수행했다.
2014년 4월 16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자 어김없이 구조활동을 위해 악천후 현장 속에서도 갖은 고된 일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몸소 실천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저 과거의 웃기는 연예인이 아니라 묵묵히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진정으로 멋진 사람.
UDT나 해병대 수색대 출신이라는 등 잘못된 소문이 돌고 있는데 실제로는 특수부대 출신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스쿠버 분야에서 활약을 해 왔고 잠수 구조활동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특수부대 출신들과 교류를 해왔으며 그 부대들에게 명예회원 칭호를 받았던 게 와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