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권총의 전설
10발의 총알을 맞으면서도 해방만을 생각했던 위인
항일 무장투쟁의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불굴의 상징. 그야말로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적합한 인물.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이후
국내외에서 활발한 항일 무장투쟁이 전개되었다.
(조승우 배우와 되게 분위기가 비슷하심)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상하이를 떠나면서 남긴 김상옥 의사의 말. 사실상의 유언이다. 오늘날 서울시 종로구 효제초등학교에 이 어록의 비문이 세워져 있다
임시정부요인 김구,이시영,·조소앙·신익희 등과
독립운동 거사계획에 참여하는 동시에 의열단에 입단
1922년 11월 중순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 이시영·이동휘·조소앙·김원봉등과 의논해 일본 총독 및 주요 관공서에 대한 암살·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움.
1923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만들다.
의거후 피신해있다가 거점을 들켜 포위되나
담벼락을 지탱해 권총 2자루로 3시간 반 동안 총격전을 벌였다.
탄환마저 다하여, 마지막 남은 탄환 한발을 머리에 대고 벽에 기댄 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자결, 순국하였다. 이후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했는데, 총 11발의 총상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밀정 오프닝에서 박희순 배우가 김상옥 의사로 나옴)
순국하는 당시에도 일본 경찰들이 이분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잘 나타난다. 김상옥 의사는 마지막 총알로 자결한 후에도 양손에 권총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본 일본경찰들은 김 의사가 살아 있을까봐 다가가지 못했고, 결국 김 의사의 어머니를 보내 생사를 확인하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