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승전국에 의해 나뉘었을 당시
베를린은 4개국(미,영,소,불)에서 분할 통치를 하고있었고 베를린이 서독이 아닌 소련 휘하 동독지역에 있었음
쉽게 말해서 베를린 자체가 잠재적국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던거임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후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점점 분리되기 시작했고
미국은 유럽 부흥 정책인 마셜플랜을 도입한뒤 서독에다가 지원을 해줘서
소련에 대해 대항할수있는 국가로 키우기 위한 계획을 실행시킴
물론 자유진형 유럽국 대다수가 마셜플랜으로 전후복구와 경제 재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서 냉전기간동안 미국편에서서 소련에 대항했음
어찌 되었건 유럽쪽으로 진출하고싶어하는 소련입장에선 이 마셜플랜은 굉장히 위협적이였고
이에 소련은 시위성 행동을 실시함
제일먼저 베를린 소재 연합국 통제 이사회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응수했고
며칠뒤 베를린과 서방 연합국의 점령지대 사이를 오가는 열차를 통제하기 시작함
그리고 한달뒤 마르크화가 서베를린에 통용되기 시작하자
소련은 4개국 공동 베를린 행정위원회를 폐지 2주뒤에는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와 철도를 봉쇄하고
소련 점령당국의 특별한 허가를 받지 않으면 통행을 금지 시켰음
그리고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용 기차마저 못들어가게 하고 소련 점령지역에서 쓰일 새 화폐 오스트마르크화를 발표함
그리고 나서는 서베를린에 최소한으로 이루어지던 생필품 공급마저 전부 끊어버림 전기까지
이에 서베를린의 200만이 넘는 시민들은 졸지에 굶주리게 되었음
이에 서방 연합국은 "어...ㅅㅂ ㅈ된거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미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음
왜냐면 영국 프랑스는 전후 복구하는 중이였기에 뭘 해볼수없는 상황이였음
심지어 미국 본토에서도 "하... ㅅㅂ 철수 하는게 여러모로 낫지 싶습니다"라고 각료들이 트루먼 대통령한테 조언해줌
그리고 만약 공수작전을 실행하면 얼마나 필요한가 검토 해보니 일 평균 3,600톤의 물자를 공수해줘야했음
이게 말이 3600톤이지 그 당시 항공기 or 수송기로는 일 3600톤은 엄청난 양이였음
거기다 소련이 방해한다? 그럼 또 골치아파짐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주변 각료의 반대에도 "철수는 안한다 공수작전 실행 ㄱ" 라는 결정을 내리게 됨
그리고 미국 유럽 공군사령관에게 작전을 개시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1948년 이때 사령관이 바로
석기시대 마니아인 커티스 르메이 (당시) 미공군 중장이였음
르메이 장군은 트루먼의 지시를 받자마자 작전 개시를 하게 되는데
작전 첫날
80톤이면 개뿔 200만명이 생활할수없는 수량이였음
게다가 당시 유럽에서 가용한 C-47은 고작 100여대 정도 밖에 없었으니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였고
이에 르메이장군은 본토에다가
"더 큰 수송기좀 더 보내주고 수송기 숫자 모자라요 가용한 수송기 전부 투입해야합니다!!"라는 요청과 함께
"그리고 난 이런 작전에는 맞지 않으니 다른 적임자를 추천함니다"하면서
태평양 전선에서 인도에서 중국으로의 항공수송작전을 총괄 지휘했던 윌리엄 터너 장군을 적임자로 추천함
이에 워싱턴은 터너 장군을 이 작전 담당자로 앉히고 C-47보다 더 큰
당시 최신형 수송기였던 C-54를 대거 투입하게됨
그리고
천조국의 물량 러쉬가 시작됨
작전개시 1달만에 수송기 1000여대가 작전을 뛰게 되고
미국은 C-54물량이 모자라니까
퇴역후 보관하고있던 수송기까지 전부 꺼내고 예비역 조종사들까지 전부 재소집
심지어 해군 항공대 소속 수송기들까지 전부 동원하게됨
서독이랑 서베를린에선 더한게
구 독일 국방군 공군 출신(나치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 정비사들까지 전부 불러모아서 지원뛰게 만듬ㅋㅋㅋㅋ
작전개시 한지 며칠안가서 1일 수송량이 500톤까지 급증하게 되고 그 다음달에는 수송량 1천톤은 그냥 넘기게 됨
그리고 르메이 장군은 전략공군 사령관으로 영전
터너장군이 유럽공군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효율이 엄청나게 개선됨
그렇게 물량 러쉬를 하다가
다음해 1949년 1월 171,000톤, 2월 152,000톤, 3월에는 196,223톤이라는
경이로운 수송량을 보여줌
일 평균 5700톤이라는 양을 보여주는데
위에서 말했듯 서베를린은 일평균 3600톤이면 먹고살수있었음
생필품이 남아돌아 비축이 가능할정도로 물량러쉬를 때려박는데
4월달에는 이 물량이 극한에 다다라서
부활절 당일 수송기 1,383소티를 투입 단 하루만에 약13,000톤을 때려박음
이걸 본 스탈린은 얼탱이가 털려버림
이 수송작전을 저지 하려면 수송기들을 격추하는 방법 말곤 없는데
그렇다고 격추하면??
미국이랑 전면전으로 한따까리 했어야 했음
안그래도 소련도 전쟁때문에 피해본게 이만저만이 아니였었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련한테는 아직 원자폭탄도 없었기에
대응을 할 수없었던 소련은 1949년 5월 봉쇄를 풀어버림
스탈린은 이정도 물량을 수송하는 꼬라지를 보고는 죽을때까지 미국이랑 정면충돌할 일 자체를 만들지 않았고
이후에도 최대한 미국이랑은 전면전 자체를 피하려고 했음
베를린 봉쇄 기간 동안 연합국 공군은 총 27만 8228회의 비행을 통해 물자 232만 6406톤을 공수했음
또한 공수 작전의 절정기에는 서베를린의 공항에 30초마다 수송기가 1대씩 착륙했고,
여기에 투입된 수송기 C-47, C-54들의 총 비행 거리는 1억4800만km에 달하며
이는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와 맞먹는 거리에 해당함
이 베를린 봉쇄 작전은
군축하는 중이였지만 여전한 미국의 빠와를 여실히 보여준 사태이고
소련한테는 미국이랑 전면전은 잘못하다가는 ㅈ될수 있다는걸 각인시켜준 사건이였음
아 물론 쿠바 미사일 위기 같은 사건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소련이 꼬리 내리는 결과가 나옴
지금도 미국은 건들면 ㅈ되는건 매한가지이긴 함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