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병보다 더한 1984년 조준희 수류탄 투척 월북사건

아루리 작성일 19.04.09 14: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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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4년 6월 26일, 당시 22사단에서 군 복무 중이던 조준희 일병이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해 12명을 살해하고 11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월북한 사건. 

 참고로 본 사건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전두환 정권이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했다는 의미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라는 서적에서 본 사건을 언급하고 있으며, 2014년에 MBC와 YTN에 본 사건을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 상세


 1984년 6월 26일 오전 10-11시경 강원도 동부전선 까치봉에 있는 22사단 56연대 4대대 TOC상황실에서 522GP로부터 아비규환의 전화보고 소리와 수류탄 폭음이 들리며 사건이 알려진다. 

 초기접보시에는 북측의 강습으로 판단했으나, 해당 GP 소속 상황병인 조준희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M16 총기를 난사한 뒤 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것이었으며 사건 바로 다음 날 조 일병의 대남월북권유 방송을 통해 조 일병의 월북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다.

 

 조 일병은 충북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가 22사단에 입대해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고 당일 새벽 치밀한 계획하에 내무반에서 잠을 자던 사병들에게 M16A1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했으며 총에 맞은 피해자들은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한편 도주하던 조준희 일병을 추적하던 13전초중대 수색대원들이 지뢰를 밟거나 오발 사고로 사망하는 등의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이 사고와 관련하여 모두 1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해당 GP 신임 소대장 소위는 몸을 숨기고 있다가 살아남았으며 이 사건으로 당시 사단장 장기하 소장, 연대장, 대대장 곽근용 중령 모두 보직해임/전역 조치되었다.

 

 사건의 규모나 파급효과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군 건군 이래 최악(아군 사살+적에게 투항)의 총기사고로 기록될 정도로 상당히 심각했다고 볼 수 있지만 5공 정권하에서 보도가 통제되는 바람에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 군 사고로 처리되어 피해자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편 동료를 사살하고 월북했던 조 일병은 월북 이후 매일 밤 대남방송을 통해 월북 조장 방송 및 매체 등에 출연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22사단 부대원들은 매일 저녁 전방 경계근무를 설 때마다 조 일병의 대남방송을 들으며 치를 떨어야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언론보도통제로 인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못 해 널리 알려지진 못 했으며 유족들은 보상도 받지 못 했다고 한다.

 조준희는 1998년 평양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이후로 북한의 언론에 등장한 사례는 없고,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처형되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확실한 건 아무도 모른다.

 

 

 

=> 요약 1984년 22사단 어느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까고 총기난사하고 북한으로 튐,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름

    이 후 22사단에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웬 북한군인 하나가 노크를 하는데..

 

나무위키에서 보다 어이없어서 올립니다. 2005년에 상병이었는데 김일병사건때매 전역까지 눈치보며 살았는데, 그 전에 더 한 놈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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