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의 원수를 갚았노라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1928년 대만
일본의 중국 침략 전진기지
일본군을 격려하기 위해 찾아온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육군대장
그는 일왕의 장인이었다
그를 향해 단도를 던진 한 청년
대만총독은 사표 제출 조선총독부 대경실색
혈혈단신 일본 왕족을 처단한
한국의 독립투사
조명하(1905~1928)
황해도 신천군청 서기
그는 신천군청의 서기 출신으로
일제 치하에서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대만까지 가게 된 걸까요?
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상여 행렬을 따라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조명하
항일을 위해서는 우선 일본을 알아야 한다
갓난 아들과 아내를 두고 오사카로 유학
낮에는 전기회사, 상점,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 1년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로 출발
1927년 11월
경유지 대만에서 그는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일왕의 장인 구니노미야 대만 방문
조명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혈혈단신인 그가 구한 무기
총도 폭탄도 아닌 독을 바른 단도 한 자루
1928년 5월 14일 9시 55분
구니노미야 대장의 차 등장
환영인파에 숨어있던 조명하가
칼을 꺼내 들었다
차량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뛰어 오른 조명하
비수를 던지며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조명하 사형 선고
그의 나이 스물 넷이었다
나는 조국의 원수를 갚았노라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순국 직전 남긴 유언
"대한의 젊은이여
조국을 굳게 지켜라"
"조국을 잃으면 자유와 정의 평화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독검을 맞은 일왕의 장인은
조명하 사형 3개월여만에
온몸에 독이 퍼져 사망
마지막까지 일본은
조명하 의사의 배후를 찾는 데 혈안 돼 있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그의 배후는 다름 아닌
조국을 되찾기 위한 열망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조명하, 일제에 비수를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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