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섬라(현재의 태국)의 함대를 빌려 일본을 치려 했던 이른바 ‘차병섬라(借兵暹羅)’ 전략의 전말을 조명한 논문이 나왔다.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전체 아시아국가의 연동’에 따르면 1592년 9월 조공하러 북경에 와 있던 섬라 왕국(아유타야 왕조)의 사신 ‘악팔라’가 “섬라의 군대를 동원해 왜국의 소굴을 치자”고 명에 제안했다.
명의 경략대신 송응창이 이를 만력제에게 보고했고, 만력제가 동의해 구체적인 실행 절차를 검토했다. 그러나 양광(광동과 광서 지역) 총독 소언이 “섬라 군대가 명나라에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실현되지는 않았다.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북경에 갔던 조선 사신 정곤수가 차병섬라 전략을 조선에 보고한 내용이 실록에도 간략하게 기록돼 있다.
차병섬라 전략은 임진왜란이 한중일뿐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도 관련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류큐국(현재의 오키나와)이 명의 정보 수집에 동참하고 마카오의 흑인 노예와 동남아, 인도에서 온 병사들이 명군에 편입돼 출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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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참전
누르하치가 임진왜란 당시 참전을 제안했지만 조선은 이를 거절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조선으로서는 여진족의 참전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적 위기사항에서 위협을 더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지.
다만 상황이 위급하다 보니 여진족의 참전 관련 유언비어가 돌고 그게 선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나 보다. 선조가어디서 들었는지 "북병사(北兵使)가 야인들에게 왜적의 토벌을 청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은 일도 있다. 물론 답은 그런 적 없다는 것. 아니면 됐다는 생각이었는 지 그 다음에 바로 다른 주제로 애기가 넘어가버려 알순 없지만, 다른 기록을 보면 짐작은 할 수 있다.
1592년 9월 14일, 유몽인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일과 함께 받은 자문(咨文)에 있던 내용이 언급되는데, 윤두수가 말하길 거기엔 건주위의 老乙可赤, 그러니까 누르하치가 구원해 줄것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윤두수의 의견은.....
"사실이면 우리나라는 멸망할 것 입니다."
...라고 한다. 누르하치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여겨 쥐새끼 같은 왜구들을 몰아내겠다고 나섰다는 애기를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지만, 조선 정부가 누르하치의 참전 가능성을 들은 건 오히려 명나라를 통해서. 그리고 그 반응이 '국망의 위기' 수준이었다. 윤두수 말고도 다른 대신들도 요동에 사람을 보내 누르하치의 참전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 가장 우려스러운 건 누르하치와 건주 여진이 겨울이 되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명 황제의 칙서를 들이밀 경우, 거절할 명분도 마땅치 않으므로, 어떻게든 막야한다는 인식이었다.
사실 조선으로서는 누르하치의 건주위가 참전하는 걸 꺼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여진족이라서가 아니다. 먼치킨 국왕 세종대왕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 최윤덕이 4군을 설치하면서 파저강을 정벌해 여진족을 몰아냈다는 거야 어지간한 한국인이라면 대충은 들어 알 일이지만.....그 여진족이 건주위였다. 그 후 조선은 명의 요청을 맏아들여 또 건주위를 정벌하였는데, 이 때 조선은 건주위를 이끌던 이만주를 죽였다. 그 후 건주위는 가끔 조선에 토산물을 바칠 때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 자주 변방을 노략질하는 일이 많았으니....http://egloos.zum.com/history21/v/2832631
임진대전 이라고 바꿔야 할듯~
이분은 누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