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채널 엠넷의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의 생방송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엠넷 소속 PD 2명이 구속된 가운데 프로그램을 통해 최종 선발된 연습생들은 시청자 투표와 무관한 이른바 ‘PD 픽(pick·선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디션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20명의 연습생들은 경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구속된 PD들에 의해 이미 1∼20위의 순위가 정해졌다. 구속된 안준영 PD와 프로그램 책임 제작자 김용범 CP는 이 같은 ‘PD 픽’을 시인했다.
각각 프로듀스 시리즈 시즌 3, 4에 해당하는 ‘프로듀스48’과 ‘프로듀스X101(프듀X)’은 모두 3차례의 시청자 투표 과정을 거쳐 연습생을 20명까지 추린 뒤 이들 20명이 경쟁하는 최종 오디션을 치렀다. ‘프로듀스48’은 20명 중 12명을 최종 선발해 여성 아이돌 그룹 ‘아이즈원’을 결성했고, ‘프듀X’는 11명을 뽑아 남성 아이돌 그룹 ‘엑스원’을 만들었다.
7일 경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두 프로그램의 생방송 시청자 문자투표를 관리했던 업체에 보관된 투표 원본 데이터가 엠넷이 마지막 생방송 때 발표한 연습생 순위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구속된 두 PD가 시청자 투표 결과와는 관계없이 미리 정해둔 순위대로 방송에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 같은 ‘PD 픽’이 드러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아이즈원’과 ‘엑스원’을 해체하고 멤버를 다시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엠넷은 두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 ‘100%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 ‘국민 프로듀서님! 당신의 소년(소녀)에게 꼭 투표하세요!’라며 시청자들이 직접 뽑는 ‘공정한 오디션’임을 여러 차례 홍보했었다. ‘프듀X’ 최종회가 방송된 7월 19일 선발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됐던 연습생들이 탈락하고 발표된 연습생들의 최종 득표수가 모두 특정 숫자의 배수로 나타나면서 투표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안 PD와 김 CP도 그동안 인터뷰나 강연 등을 통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정한 선발’을 강조해왔다.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시리즈를 제작한 김 CP는 한 토크쇼에서 “심사위원들만 뽑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내가 ○○○를 뽑았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시청자 참여형 오디션이었기 때문에 (슈퍼스타K가) 인기를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 PD도 프듀X 제작 발표회 자리에서 “꿈을 위해 나아가는 간절한 친구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구속된 두 PD의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두 PD는 오디션 최종 라운드에 진출할 20명을 추리는 과정에서도 특정 연습생이 돋보이게 편집하거나 경연곡을 미리 알려준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엠넷 측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질 사항은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청자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이즈원’과 ‘엑스원’의 지상파 3사 출연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올린 게시자는 “순위 조작은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국민들을 우롱한 것이고, 사회에 만연한 채용 비리나 취업 사기와 완전히 같은 맥락의 죄”라고 적었다. ‘아이즈원’은 11일 예정된 첫 정규 앨범 발매와 컴백쇼를 연기했다. MBC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즈원’이 등장하는 부분을 편집하기로 했다.
요약
오디션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20명의 연습생들은 이미 1∼20위의 순위가 정해짐
투표 원본 데이터가 마지막 생방송 때 발표한 연습생 순위와 다름
시청자 투표 결과와는 관계없이 미리 정해둔 순위대로 발표
특정 연습생이 돋보이게 편집하거나 경연곡을 미리 알려준 정황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