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공포영화가 인기를 끈다. 영화를 보다가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나면 식은땀이 증발하면서 온몸이 서늘해진다. 이제 머리카락이 잘 빠지는 사람도 공포영화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소름이 돋으면 머리카락도 자란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야치에 쉬 교수와 대만국립대의 숭잔 린 교수 공동 연구진은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셀’에 “소름을 유발하는 신경세포가 모발을 재생하는 줄기세포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다”고 밝혔다.인체가 추위나 공포에 노출되면 뇌가 각 기관에 명령을 보내 방어태세를 갖춘다. 그중 하나가 피부가 닭살처럼 변하는 소름이다. 자율신경계인 교감신경의 신호에 따라 털을 만드는 모낭(毛囊)에서 근육이 수축한다. 자연 누워 있던 털들이 일어서고 주변의 피부가 위로 당겨지면서 닭살처럼 변한다. 털들이 똑바로 서면 그 사이로 공기가 많이 들어가 체온을 덜 뺏긴다.
소름 유발 신경이 모발 재생도 촉진
연구진은 이번에 소름이 돋는 과정에서 모낭의 줄기세포도 자극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교감신경이 모낭 주변의 근육뿐 아니라 모낭의 줄기세포와도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경섬유는 모낭 주변을 마치 리본처럼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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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는 과정
기온이 내려가면 모낭에 붙어 있는 근육인 털세움근(立毛筋·분홍색)이 수축한다. 그 결과 주변 피부가 위로 당겨 올라가면서 닭살처럼 변한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교감신경(녹색 선)이 신경신호 전달물질(녹색 구)을 분비해 줄기세포(파란색)를 자극하고 털이 자라도록 한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자료 하버드대
쉬 교수는 “신경세포들은 서로 연결돼 시냅스를 이뤄 뇌의 신호를 전달하고 근육을 조절한다”며 “놀랍게도 신경세포가 모낭의 상피 줄기세포와도 시냅스와 유사한 구조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신경 활동이 미약할 때는 줄기세포가 재생을 준비하는 정지 상태로 있다. 추위가 지속되면 교감신경이 활발하게 작동하고 신경신호 전달 물질들이 많이 분비된다. 이러면 줄기세포도 활발하게 작동해 모낭을 재생하고 털이 자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즉 교감신경은 추위에 대항해 단기적으로는 근육을 수축시켜 소름을 돋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모낭의 줄기세포를 작동시켜 몸을 보호할 털이 자라도록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민무늬근(평활근)이 신경과 줄기세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민무늬근은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아 의식적으로 수축할 수 없는 근육이다. 모낭 주변의 이 근육을 제거하자 교감신경이 수축하고 줄기세포와 연결된 부분도 끊어졌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ywlee@chosun.com]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23/0003550139?ntype=RANKING&r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