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사실 짱공일기장에 쓰던 연재물을 이어갈까 하다가
제가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써야하는 쿨타임이 돌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 난 별로 안기다렸음 ㅇㅇ"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있는 이유로,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게시글은 유튜브 '3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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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에 할 이야기는
저번에 글로벌 슈퍼파워의 두 번째 주자, 중국의 속사정에 대해서 다루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ㅗㅜㅑ ㄹㅇ 무서운 것들'이라며
상당히....... 두려워 하는 댓글을 달아주셨더라구요.
그래서 여러분의 두려움을 해소시켜드려야겠다....... 라고 생각은 했는데
죄송하게도, 이번 게시글 역시 두려움을 해소시키기는 커녕
"진짜 저놈들은 ㄹㅇ 막나가는 것들이야."하는 확신을 심어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때로는 통수를 얻어맞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래 저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어.'라며 위로아닌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미얀마 민주화 항쟁도 있어서, 미얀마 이야기를 좀 다뤄볼까 했는데
그건, '글로벌 슈퍼파워의 속사정'이라는 특집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한 타임 미루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2. 중국이 미국하고만 싸울 것 같냐?
저번 게시글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두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중국의 '두번째' 전장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기억하실까 모르겠는데요, 몇년 전 짱공유에서 이런 게시글이 돌았던 적이 있었어요.
카슈미르 지방에서 중국군과 인도군의 충돌
21세기에 투석기와 냉병기로 한판 붙어 양쪽 추산 60명 사망
이때 짱공 아재들의 반응은
'똥과 설사의 싸움'
'카레와 짜장의 충돌'
뭐...... 이런 반응이었는데요.
대체 저 둘은 무슨 관계인지 이번에 다뤄보고자 합니다.
3. 전장을 알아볼까요?
사실 짱공유 게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과 인도군이 '카슈미르 지역'에서 붙었다고만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전장이 하나가 아니라 두개였습니다.
카슈미르지역의 '악사이 친'이라는 곳과 (이곳은 파키스탄 / 인도 / 중국의 삼파전 양상)
국민 행복도 1위라고 주기적으로 사기를 치는 부탄 옆동네인 '아루나찰 프라데시'라는 지역
이 두 곳에서 양 국가의 군대가 충돌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실 이 지역은 특이한 점이 있어요.
저번 시간에 다루었던 남중국해는
(1) 전 세계 물동량의 30%가 지나감
(2) 쿠웨이트 급의 자원 매장량 이라는
이른바 '싸울 거리'가 있는 동네이지만
'악사이 친'과 '이루나찰 프라데시' 두 지역은.......
그냥 빙하가 쌓여있는 고산지대에요.
즉,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속된말로 '먹잘게 없는'곳입니다.
삼국지에서 유래한 속담인 '계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 동네이지만
싸움은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치열했어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총 대신에, '창'과 '칼'로 맞붙었으며
(이건, 두 핵 보유국가들이 전면전으로 나설 경우 지구가 멸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알아서 갈등 수위를 조율한 측면이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빙하가 쌓여있는 곳이다보니......
"야? 안추움?"
"ㅇㅇ 추움."
"그럼 얼른 막사로 꺼져"
"시른데? 니네가 먼저 들어가기 전까지 안들어갈 거임."
"우리와 정확히 생각이 일치하는군."
이라며 오기부리다가 사이좋게 같이 얼어죽는가 하면
"야잌 카레새기들아 관운장의 청룡언월도를 받아라! .....이익!"
"ㅋㅋㅋㅋㅋㅋ 관운장 코스프레 하다가 물에 빠졌대요! .....우왘!"
둘이서 신경전 벌이다가 빙하 녹은 물에 같이 빠져서
그대로 얼어죽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3-1. 그럼 뭐하러 싸우는거야?
둘간의 병림픽을 보다보면 웃기기보단 한숨나오는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지는데
대체 왜 저 둘은 그렇게 까지 병림픽을 벌이는 걸까요?
일단 경제적인 이득은 없다고 보면 되는데 굳이 저렇게 으르렁 거리는걸 보면
저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얻게될 또다른 이득이 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 두 지역을 중국이 모두 차지하게 된다...... 그럼 인도로서는 악몽 그 자체가 되요.
왜 그렇게 되는지는 인도의 지도를 자세히 보시면 알게 됩니다.
인도 지도를 보기 전에, 인도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냥 뭐...... 삼각 팬티 세워놓은거 아냐?"라고 생각하실텐데요.
위쪽을 보면 참으로 복잡하게 생겨먹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동쪽'이 참으로 지저분하게 생겼지요.
삼각팬티의 북동쪽이 마치...... 팬티 고무줄이 간당간당한 것 처럼 생겼죠?
저 지역을 '시킴 회랑'이라고 합니다.
저 슬림한 지역을 지나치면, 다시금 크게 넓어지죠.
다시금 넓어지는 지역을 '7자매주'라고 한다고 합니다.
저 지역이 대체 얼마나 슬림하느냐....... 위쪽과 아래쪽이 꼴랑 20K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킴 회랑지역 위에는 부탄이, 아래쪽에는 방글라데시가 자리잡고 있어서
위아래로 우걱우걱 집어삼켰기 때문에 저렇게 비좁아진 것이지요.
그래서 인도로서는 파키스탄과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지역 만큼이나
저 '시킴 회랑'지역에 대해서 만큼은 '과민반응'이라고 할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런 지역에 만약 중국이 영토를 우걱우걱 삼켜버린다?
재수없으면 '7자매주'는 월경지역 (국가가 따로 떨어진 지역-예전 서 베를린을 생각하면 됨)
이 되는걸 넘어서, 그대로 중국에게 흡수되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인도로서는 '7자매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곳을 포기할 수가 없지만.....
싸움은 쉽지 않아보입니다.
'아루나찰 프라데시'지역의 인도쪽은 산 비탈 아래라면
중국쪽은 산비탈 위거든요.
예로부터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것 보다,
위에서 아래로 치고 내려가는 것이 훨씬 더 쉽게 마련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산에만 올라갔다 하면 "어? 이거 산성 흔적 아님?" 하는 거지요.
즉, '악사이 친'과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은
"경제적"으로는 큰 이득이 없지만
"군사적"으로는 큰 이득이 되는 곳인지라
두 나라가 병림픽이 될 것을 알면서도 자강두천을 하는 셈입니다.
여담으로, 시킴이란 지역에 '다즐링'이라는 동네가 있다는데요.
차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알만한 '다즐링 차'가 바로 이곳에서 재배된다고 해요.
그렇다고 차 때문에 싸울리는...... 없다고 해야겠죠?
4. 사실 두 나라가
교류를 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4대 기서중 하나인 '서유기'를 떠올려 볼까요?
당나라의 '현장 삼장'법사가 불경을 얻기위해 '천축국' 즉, 오늘날의 인도로
여행을 떠나지 않습니까? 물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이야기야 다 뻥이라고 치더라도
어쨌거나 두 나라간의 교류는 한반도의 '삼국시대'급으로 먼 과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4-1. 여담으로
서유기의 주인공 스님을 일컫는 표현으로 '삼장법사' 혹은 '현장법사'라는게 혼용되는데요.
'삼장법사'라는 단어는 불경의 3요소인 '경장' / '율장' / '논장' 이 모두를 통달한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현장법사'는 바로, 그 사람의 '법명'이구요.
즉, '현장법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레벨이 '삼장법사'급이었기 때문에
'현장법사' = '삼장법사' 라고 알려져 있는거에요.
즉, 현장법사 외에도, 불교의 역사에는 수많은 '삼장법사'들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삼장법사' 하면, 우리나라의 '서울대 총장급'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사실, 두 나라가 불교라는 공통분모로 인해서 교류를 하긴 했지만
두 나라의 언어는 서로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만큼
언어적으로 남남이나 다름 없다고 해요.
현장법사님은 그런 두 언어를 번역할 정도로 통달했다는걸 보면
당시에 엄청난 지성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인 거지요.
그리고 두 나라 모두 하나의 우주급인 문명인지라 (인더스 문명 / 황하문명)
'교류......?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라고 할 만한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를 잇는 교두보가 된 석가모니 당신은 대체......
거기에 하나 더, 중국의 삼장법사만 중국을 갔느냐.......
통일신라의 '혜초' 스님도 당나라 '광저우'의 바닷길을 통해 인도로 가서
불교의 각종 성지를 육로로 순례하고 돌아왔지요.
그 기록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왕오 천축국전이 아니라
왕 오천축국전 이라고 해석해야해요.
"5개의 천축국을 다녀왔다."라는 의미지요.
4-2. 서유기 이후로
서유기 이후로는 중국과 인도가 교류를 했다는 기록은 딱히 전해지지 않았어요.
불교의 원산지였던 인도에서는 힌두교도들이
'부처? 그거 비슈누의 9번째 아바타(화신)임 ㅇㅇ'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불교가 쇠퇴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천축국 가봐야 뭐 별거 없던데? 그냥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는게 더 나음ㅇㅇ"이라는
상황이 나오게 되었거든요.
불교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결국 두 우주는 '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뭐.' 하며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5. 그렇게 서로의 존재가 잊혀질 때 쯤
다시금 두 나라가 본격적으로 '이웃'으로서 서로를 인식하게 된 것은 18세기부터였습니다.
참......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았죠.
물론 명나라때 창작된 소설이라고 하지만, 서유기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하면
중국과 인도가 교류를 처음 시작한 것은 당나라 (618년 ~ 907년) 시기니까
약 1100년 ~ 800년만에 재회를 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이때도 '쟤는 인도야' '쟤는 중국이야'라고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기 보다는
중국(당시 청나라)입장에서는 '티베트 쳐들어가보고 나니까 산 아래에 뭐 하나가 더 있네?'
하는 수준이었고
인도(당시 무굴제국에게서 반기를 든 시크왕국)입장에서는 '무굴놈들에게서 벗어나긴 했는데
저 윗동네놈은 또 뭐야?'하는 수준이었던 것이지요.
5-1. 본격적으로 서로를 알아가며
먼 과거의 조우 -> 약 1000년간의 잊혀짐 -> 그런데 쟨 뭐야?
하는 3단계의 시기 이후 100년의 시간이 흐르고,
제 4단계가 찾아왔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제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지겠군.'이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중국과 인도는 그런 관계라기 보다는
'알면 알수록 빡치는 놈들이네?'하는 관계였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두 나라의 언어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있는터라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것도 있지만.......
말이 안통하면 바디랭귀지가 있으니, 그걸로 갈음하면 되겠죠?
문제는 바디랭귀지로 '좋은'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것 만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에 어색한 만남 이후로 100년의 시간이 지나 19세기가 되었을 때
인도의 무굴제국은 멸망하고, '영국령 인도'로 인도의 상황이 변화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삐끄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게시글을 찬찬이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대영제국 시절 영국은
엄~청나게 넓은 영토에 비해, 자국민은 지독하게 수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좋은 말로하면 '세계 경영 파트너'
나쁜 말로하면 '친영 반민족 행위자'를 양성했더랬지요.
그덕분에 지금의 중동지역에선 날이면 날마다 생지옥이 펼쳐졌다......라고
'중동을 이해해야 세계를 이해한다' 편에서 말씀을 드린바가 있었는데
기억 나시죠?
중동을 경영할 때의 파트너, 중동판 '친영 반민족 행위자'로는 '하심가문'이 있었다면
인도를 경영할 때의 파트너, 인도판 '친영 반민족 행위자'로는
세계사를 공부해 본 분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세포이 항쟁'의 주인공, '세포이' 들이었습니다.
세포이는 일종의 용병이었어요.
영국군에 소속되어, 영국군의 급료를 받으며 영국군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 용병'이었지요.
이들이 영국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
(1) 중국의 흑역사 No. 1 '아편전쟁'에 참전해서 청나라 군대를 뚜까 패버림
(2) 중국의 흑역사 No. 2 '의화단의 난'에 진압군으로 참가해 의화단과 청나라 군대를 뚜까팸
이 두가지를 했었드랬지요.
즉, 중국의 흑역사에는 항상 인도인들이 주연으로 등장했었습니다.
중국입장에서는 원님보다 미운 '이방'같은 존재가 인도인이었던 거지요.
뭐랄까..... 이런 관계가 아니었을까요?
"아오 또 카레새끼들이네? 너넨 땅크기도 1/100밖에 안되는 코쟁이들 앞잽이 하느라 참 좋겠다?"
"뭐래? 지금 내모습이 니 미래다. ㅇㅇ"
따지고 보면, 지금의 중국과 인도의 앙금은
바로 피쉬 앤 칩스가 뿌려놓은 똥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거.......라고 할 수 있겠죠?
5-2. 하지만 우리라고 늘 사이가 나쁜건 아니었어.
이렇게 영국이 벌려놓은 UFC판에 어거지로 들어와
서로를 뚜까패야만 했던 인도와 중국이었지만
그렇다고 늘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둘의 사이를 다시 잇게만든 20세기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최근 짱공유의 게시글을 통해서
'그저 빛'이라는 소리를 듣고있는 장제스였습니다.
신해혁명을 성공시켜 중화민국을 만든 장제스는,
'이거 나라 만들긴 했는데, 혼자서 멍 때렸다가는 또 청나라 꼴 나겠지?'라는 생각에
비정한 국제사회에서 '내 편'하나 들어줄 친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국의 위 아래로는 꽤나 큰 나라가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1) 최근 혁명한지 얼마 안 된 소련
(2) 여전히 영국의 따까리 노릇하는 인도
중화민국이라는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장제스로서는
소련과 친구를 먹기엔 '하...... 저놈들 친구한다고 손 내밀고는 통수치는거 아냐?'라고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 1차 전형에서 탈락을 시켰고 탈락을 시키고 나니......
그럼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죠?
"야 코쟁이 따까리 새끼들아."
"ㅇㅇ? 세번째로 처맞고 싶다고?"
"니네가 우리를 뚜까 팬 거는 ㅇㅈ. 그거야 지울 수 없는 과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뚜까 맞은건 '청나라'고, 우리는 '중화민국'이란 말이지. 우린 걔들하고 다름."
"뭐래? 간판만 바꾼다고 알맹이가 바뀌냐?"
"알맹이가 바뀌진 않을지 몰라도, 메뉴가 달라질 수는 있지."
"뭔 소리야? 알기 쉽게 좀."
"어차피 니들이나 나나, 영국한테 시달린거 아님?"
"ㅇㅇ 사실 뭐 따지고 보면 우리가 니들한테 뭐 아쉬울게 있다고 뚜까 팼겠음? 다 윗선에서 까라니까 까는거지."
"1차 세계대전도 끝났고, 이젠 뭐 사실 영국 코쟁이들도 이빨 빠질대로 빠졌잖아?"
"ㅇㅇ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가 자치권도 얻었고."
"따지고 보면 영국이 개/새끼지 우린 둘 다 피해자라 이거야."
"하모하모 영국이 개/새끼임."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잊고 새로 출발 콜?"
"콜!"
"그런 의미에서......."
"그런의미에서?"
"나 좀 도와줘봐."
"?!?!?!?"
그렇습니다. 당시 중국은 중일전쟁으로 한창 일본한테 뚜까맞고 있었거든요.
참..... 이때도 비극인게,
영국한테 개털릴때는 그 첨병에 인도 세포이가 있었다면
일본한테 개털릴때는 어거지로 끌려간 조선인 학도병들이 ㅠㅠㅠㅠ
그래서 중국과 인도는 전략적인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영국은 그닥 달갑게 보진 않았지만...... 뭐 어쩌겠어요?
1차 세계대전 하면서 이빨이 몽땅 다 빠졌겠다.
실제로 일본이 '기왕 섬 탈출해서 중국 먹은거 내친김에 인도까지 가즈아!'하는 판국이니
둘이 밀월관계를 가져도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는 판이었으니까요.
이런 삼자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9년에는 인도의 네루 수상이 중국을 방문하고
그로부터 3년뒤인 1942년에는 장제스가 인도를 방문하는 관계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때의 정세를 정확하게 짚자면
중국이 인도에게 매달리는 형국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중국을 제대로 삼키려면 중국을 고립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중국으로 향하는 모든 해상을 봉쇄해 버렸거든요.
자기 혼자서는 일본에게 맞서기 힘들었던 중국은 인도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해상은 이미 막혀버렸고......
그래서, 다음편에 후술하겠지만
당시 인도의 일부였던 미얀마를 통해서 인도의 서포트를 받아가며 일본과 맞서싸워야 했어요.
이때 미얀마를 통해 중국으로 이어지는 길을 '버마로드'라고 불렸다고 해요.
어쨌거나 이로인해 중국은 인도의 역성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이빨이 빠질대로 빠진 영국에게
"야, 솔직히 이젠 니들 우리나 인도한테 뭐라 큰소리 못할 처지 아님?"
"뭐래? 니들 대영제국 무시하냐?"
"아니 대체 언제적 대영제국이냐? 이젠 직접 통치도 못하니까 우리 인도한테 자치권 줄게~했으면서."
"잘한다 잘한다. 더 쎄게 말해 더!"
"이 전쟁 끝나면, 인도 독립 시켜라 앙?"
"와 씨 세상 완전 뒤집어졌네?"
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화민국이 인도를 대신해서 영국과 아가리 파이팅을 해줬지만......
지금의 아라비아 숫자가 실은 인도숫자였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는 숫자, 셈, 계산에 매우 능통한 나라였습니다.
중일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국공내전이 벌어졌지요?
결과는 알다시피 국민당이 패배하고,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는 "아니 뭐 저거야 자기네 집안 일이니까 뭐......"라며 뜨뜻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다가
모택동이 중국을 장악하자마자
"어이 장개석이."
"ㅇㅇ 네루 아이가?"
"듣자하니, 마 너그 집안 홀라당 모택동이한테 뺏겼담서?"
"ㅇㅇ 함께한 옛 정이 있으니 우리 도와주게?"
"ㄴㄴ 이제 손절치게."
"뭐 임마?"
세계에서 제일 먼저 대만과 단교를 하고, 중국쪽과 수교를 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옵니다.
그로부터 42년 뒤에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똑같은 통수를 또 한번 맞게 되었죠.
생각해보면, 대만사람들이 "한국놈들 개객끼들!!"이라고 해도 뭐...... 딱히 할 말은 없네요.
5-3. 다음편에 자세하게 짚고 넘어가겠지만
중일전쟁 당시, 영국령 미얀마를 통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군수품을 나르던 길을
'버마로드' 혹은 '스틸로드'라고 불린다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미얀마와 중국 사이의 접경지역을 잇는 길이라서 '버마로드'라고 불리는데.......
이 길을 보면 '탁상행정'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절절이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과 미얀마 사이에는 국경이 딱 맞닿아 있고,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지도만 펼쳐놓고 보는 입장으로서는
"지도보니까 여기라면 길을 뚫을 수 있겠구만."이라고 생각하고
"야 카레놈들아, 중국한테 물건 가져다 주게 얼른 길 뚫어라."라고
명령만 띡 내리면 끝이지만
실제로 명령대로 만든 길을 보시면.......
어후...... 무슨 오므라이스에 케찹뿌린 것도 아니고......
저 산을 깎아서 길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저절로 입에서 숫자가 터져나올 지경이었겠지요?
하지만 뭐 군대에서는 까라면 까야죠 뭐
그리고 또 군대다녀오신 분들은 알지 않습니까?
절대 안되면 마음이 편한데
되니까 더욱 짜증이 나더라
물론, 저렇게 산을 말도 안되게 깎는게 하루만에 될 리가 없지만
전쟁은 산을 깎는 중에도 계속되니
길을 개척하는 와중에는 항공기를 이용해서 물자를 수송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자리잡은 산맥이
세계에서 해발고도가 제일 높다는 히말라야 산맥이었다는게 큰 문제였지요.
그 높은 곳에, 바람도 보통바람이 아닌 살을 에는 바람이 마구잡이로 들이치니
비행기가 열대가 떳다 하면, 한 두 대는 어김없이 추락하는 희생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6. 그럼 인도 VS 중공은 대체 왜?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1단계: 당나라때 불교를 매개로 중국과 인도의 교류
2단계: 약 1000년간 서로 쌩깜
3단계: 청나라가 티베트를 침공하면서 "어? 쟨 뭐임?"하는 상황
4단계: 인도가 영국 따까리 노릇 하면서 중국을 뚜까팸
5단계: 중일전쟁을 하면서 어쨋거나 혈맹이 되었음
6단계: 그런데 중공이 중국을 차지하면서 빛의 속도로 대만을 손절침
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인도와 중국 공산당이 서로 싸울 이유는 1도 없어보입니다.
그럼 대체 왜 인도와 중국 공산당은 서로 죽일듯이 싸우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티베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국공 내전이 끝나고, 국력이 넘칠대로 넘친 중국은
'내친김에 티베트까지 먹는다.'라며 티베트를 홀라당 점령해버렸거든요.
문제는, 티베트라는 지역이 중국과 인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이 티베트를 먹어버림으로서, 그 '완충지대'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인도 입장에선 어떻게 되느냐.....
(1) 솔직히 영국 따까리 노릇하느라 그랬지만, 우리가 중국에 대한 원죄가 있긴 하다.
(2) 그래도 동병상련이라고, 비슷한 처지끼리 서로 돕기는 했다.
(3) 그렇다고 바로 이웃이 되기엔 좀......
그래도 일단 이웃이 되긴 했으니까...... 여긴 내땅, 저긴 니땅하며 선을 긋기는 그어야겠죠.
문제는 국경이 되는 곳이
(1) 너무 넓다. (약 2000Km)
(2) 너무 높다. (평균 해발 4000~5000m)
국경을 긋자니 너무 길어서 힘이든데
숨을 쉬기도 어려우니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단 말이지요.
이렇게 헷갈리는 상황이라면
온고지신이라고, 예전에 영국이 그어놓은 국경선을 참고하면 되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영국은 '언젠간 중국도 내꺼야.'라고 생각했는지
국경선을 흐리멍텅......하게 그어 놓아버렸단 말이지요.
상황이 이리되니
"야, 여~기 쯤은 내땅인거 같은데?"
"ㄴㄴ 여긴 우리 핫산 아저씨네 텃밭임."
"뭐래? 내가 들어보니까 리충장 아줌마가 여기서 산양한테 풀 뜯겼다는데?"
하며 티격태격 할 수 밖에 없었던거지요.
하여간 피쉬 앤 칩스 놈들만 없었어도, 세계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70%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화약고 스택이 착실하게 쌓여가던중에 결정적인 사건이 터져버렸으니......
중국의 강압에 숨죽이고 있던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를 탈출해 인도로 망명을 가버리는
일이 발생해 버렸습니다.
"야 카레놈들아."
"왜 뙤놈들아."
"얼마전에 니네 쪽으로 머머리 할아버지 한 명 넘어가지 않음?"
"??? 못봤는데?"
"아니야. 넌 분명 봤어. 솔직히 말해봐."
"음...... 본 거 같긴 한데."
"걔, 우리나라에서 반중 폭동 일으킨 놈임. 돌려주셈."
"어...... 그 사람이 니네 욕하면서 우리쪽에다가 망명 정부 세우긴 했는데."
"ㅇㅇ 맞아. 빼박 그놈이네. 당장 넘겨."
"딱해보여서 그냥 그러라고 했는데?"
"뭐 임마?"
사실 인도가 중국을 보던 입장 (3)인
'그렇다고 이웃이 되기엔 쫌.....'이라는 생각은 중국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덩치가 워낙 크니까, 그리고 쟤들이 일본으로부터 도와준건 사실이니까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 하고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국경 문제로 화약고 스택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던 중에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던 모택동에게 있어 눈엣가시였던 달라이 라마를 넘겨주지 않는
인도를 보노라니 모택동은 생각을 한거죠.
'저 새기들 선 넘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청나라의 복수를 할 때가 온 거 같구먼.'
그래서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지 3년 뒤인 1962년에
중국이 인도에 선빵을 갈긴, '중인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최준영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보기 전에는
이런 전쟁이 있는 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분명이 있었고, 국경분쟁 같은 귀여운 수준이 아니라
나라 대 나라의 전면전이었어요.
음...... 자세히 설명하면 너무 길어질것 같으니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중국이 인도를 개처발라버렸습니다.
이때의 전장은 앞서 맨 처음에 말씀드렸던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지 두군데 중 하나인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이었습니다.
아까 기억을 다시 살려드리자면,
저 지역은 산악지역이고
산의 위쪽 동네는 중국, 산 아랫동네는 인도쪽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고지를 점령한 쪽이 훨씬 더 유리하게 돌아가기 마련이지요.
중국은 그동안 서쪽의 유목민족들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면서
산 아랫동네의 자신들을 쓸어버리는 지리적 악몽을 겪었다면
중인전쟁 만큼은, 본인들이 유목민족의 포지션이 되어,
인도를 그야말로 쓸고 내려갔습니다.
어느정도로 쓸고 내려갔느냐......
지금도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 인근까지 치고 내려갔다고 해요.
당시 인도의 수상이었던 네루는
'우리는 제 1세계 미국, 제 2세계 소련? 이딴거 하나도 안무서움.'
'우리는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은 제 3세계의 리더다.'하며
한창 글로벌 외교판에서 힘깨나 쓰던 상황이었는데......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한테 머리채를 잡혀 쥐어터지는 개망신을 당했지요.
하지만 개망신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잘못하면 수도까지 함락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네루 수상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케네디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헬프를 외치긴 했는데.....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인지
'이게 부탁인지 요구인지 헷갈리는데?'하는 부탁을 했지요.
"오 헬로 미스터 네루?"
"헬로고 나발이고."
"왓?"
"당장 내놔."
"뭘 말입니까?"
"전투기 300대, 폭격기 150대 내놔! 우리나라 ㅈ되게 생겼다고!"
얼떨떨해진 케네디는 홀린듯이 전투기 300대와 폭격기 150대를 내줬고
인도는 가지고 있던 항모에 꽉꽉 우겨넣었습니다.
이때 인도의 군부에서 네루에게 제안을 했죠.
"수상님. 우리가 육군에서는 개처발리긴 했습니다만."
"뭘 했습니다만이야? 니들 이번 전쟁 끝나면 바로 모가지야!"
"그럴줄 알고 묘책을 생각해 냈습니다요."
"뭔데?"
"중국 저놈들 땅개들만 만땅 찍어놔서, 공군이고 해군이고 1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항공모함 끌고 중국 상해를 불바다로 만들면 적어도 상해는 같이 데려가는거 아닙니까?"
"상해 데려가고 뉴델리는 잿더미 만들게?"
"아니 뭐 엘리전이라고 들어보셨죠? 본진 바꾸기 하는거죠 뭐."
"아비터의 약점이 뭔줄 아냐?"
"글쎄요?"
"리콜 믿고 깝치다가 그대로 다 터지는거야."
네루는 뜻밖의 짱/깨펀치를 두들겨 맞고 완전 제대로 쫄아있었거든요.
케네디를 윽박질러 전투기, 폭격기 지원을 받긴 했지만
제대로 운용해야겠다는 생각은 그의 두개골 너머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중국은 신난다 하고 밀고내려와 뉴델리 근처까지 왔다가......
"이만큼 뚜까 팼으면 쟤도 정신 차렸겠지?"
"ㅇㅇ 그러겠죠?"
"조상들 한도 다 풀었겠다. 이만 철수하자."
인도 입장에선 '내가 대체 어디까지 털리는걸까?'하며
반격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신나게 두들겨 맞고
중국은 '아 몸 잘 풀었다'하고는
'처신 잘하라고.' 하는 한마디만 남기고 홀연이 돌아가 버린 셈이었습니다.
중인전쟁은 중국으로서는 100년의 한을 한방에 풀어낸 사건이자
인도로서는 '그 동안 쥐어패던 놈에게 먼지나게 뚜까맞은' 치욕스러운 사건이 되었습니다.
6-1. 인도의 뒤끝은
인도로서는 건국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치욕스러운 사건을 맞았던 것이고
그때 형성된 PTSD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나중에 코로나가 가라앉고
"나도 한번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야겠어."하며 인도 여행을 계획한다면
(1) 지도를 아예 사지 않고 여행을 출발하거나
(2) 인도에 도착하고나서 지도를 사거나
해야한다고 하는군요.
괜히 카슈미르 / 악사이 친 / 이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이 '점선'으로 표시된 지도를 사서
인도로 들어가면.......
그리고 그걸 인도 세관이 짐 검색한다고 뒤지다가 발견했다가는.....
"님 이거 뭐임?"
"지도인데요?"
"그건 알지. 근데 이 점선 뭐임?"
"글쎄요? 그냥 사니까 그렇게 되있던데요?"
"응 너 입국 거절 추방 ㄱㄱ"
아예 입국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지도에서 점선표시는 "이 지역은 분쟁지역 입니다."라는 의미라고 하더라구요.
우리나라로 치면....... 우리나라로 관광왔는데, 독도가 빠져있는 지도를 들고가는 것보다
더한 일을 하는 셈이라고 합니다.
그때야 정신없이 쥐어터졌지만
시간이 60년이 흘렀고, 인도도 이젠 보통내기가 아니죠?
인구 17억 VS 인구 13억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참가하는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 결과가 인류의 파멸일 것을 알기에, 어쩌면 그 둘은 21세기인 지금 창과 칼을 들고
백병전을 치르는 알면서도 하는 병림픽을 벌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7. 마치며
사실 이번에 녹취한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인도를 좀 더 세심하게 파고들어가는 부분이 나오긴 하지만......
'글로벌 슈퍼파워의 속사정'이라는 이번 특집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솔직히 말하면, 더 쓸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아서 여기까지만 하고 이번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뭐...... 언젠가는 다룰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말이죠......
어쨌거나, 이번편까지 보면
중국 저놈들은 그냥 국경 맞댄 나라는 죄다 한번씩 건드리고 다니는 양아치 같은 놈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다음편이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한 편 더 다룰지는 모르겠지만
다음편에서는 중국의 좀 더 다른 일면을 보여드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결과적으론
아이구 미얀마 참 불쌍하다 ㅠㅠ 중국 저놈들 진짜 더러운 놈들이구먼! 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또 한편으로 들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긴 글 읽어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한 달의 쿨타임이 지나면 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마치기 전에, 이 게시글은 유튜브 '3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