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78546
이 자리에서 윤형숙 열사는 태극기를 든 왼손이 잘리고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비극적인 운명과 마주치게 된다. 이러한 큰 부상을 입은 윤 열사는 주동자로 잡혀가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러야했다
그는 "왼팔은 조국을 위해 바쳤고 나머지 한 팔은 문맹자를 위해 바친다"는 신념으로 불구의 몸을 이끌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윤 열사에게 닥친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방된 조국, 좌우 이념의 갈등 속에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1950년 9월 28일 밤, 서울이 수복되자 퇴각에 나선 인민군은 윤형숙 열사를 비롯한 손양원 목사 등 기독교인을 포함한 양민 200여 명을 여수시 둔덕동으로 끌고 가 학살했던 것이다.
윤형숙 열사 나이 50살,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독립을 외치다 잃은 왼팔과 실명된 눈을 평생 끌어안고 어린이교육에 힘써온 윤 열사의 삶은 사후 63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평가를 받게 되어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