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최고의 게임으로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를 꼽습니다. 아마 이 것은 앞으로도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게임은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있기 때문이지요.
다원 우주, 그리고 시길. 사람의 사고가 모여 만들어진 이 거대한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고통(토먼트)의 이야기는 퀘스트와 퀘스트가 모여 결국 거대한 하나의 논리건축을 구성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경이롭게도 이 게임은 자신이 빌려온 그 설정과 제작자 자신들이 만든 퀘스트를 엮어 하나의 주제로 향하도록 조화를 구성해 놓고 있습니다. 그 주제의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시길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마녀의 한 마디 물음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 입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기억을 찾아가며 자신의 숙명과 마주해 마침내 자신을 찾아 그 질문에 답하는것. 그것이 이 게임이 종국적으로 향하고 있는 목표점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표에 대해 플레이어는 여러 답을 내릴 수 있지만, 이 작음은 그에 대해 '믿음'이라는 답을 내어 놓습니다.
'믿음'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을 바꾼다. 이 답이 제게 주었던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강렬한 답이 당연하다는 듯이 드러났으니까요.
우리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이 신은 죽었다는 말이 형이상학의 종국을 의미한다 하여 길다란 해설문을 하나 내어 놓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강렬한 한 마디가 흔히 우리에게 해석되는 방식은 믿음의 기저가, 즉 하나님 아버지라는 기독교적 공리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계몽주의 시대상에 대한 냉철한 평가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계의 의미가 붕괴하는 방식. 그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사라지는 것이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자란 세계창조자, 데미우르고스- 하나님 아버지 밖엔 없습니다.
니체는 이 의미의 붕괴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서 초인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너는 초인이 되어라! 디오니소스 적인 열광을 가슴에 품고, 너 스스로 자재하는 초인이 되라. 낙타와 사자와 어린이를 뛰어넘어, 마침내 초인이 되라고.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걸린 밧줄일 뿐이었다고 그는 선언합니다.
이 초인의 선언 뒤에 니체가 가지고 있던 사상이 바로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세계는 거대한 권력의 덩어리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은 가장 지원적인 권력입니다. 가장 원초적이라고 할까요?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권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이 권력을 좀더 직관적인 단어로 바꾸면 우리는 그것을 '의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지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그 정신. 그것이 옳다는 정신! 그것이 의지의 기저이며, 그러하기에 세계는 권력의, 즉 믿음으로 이루어진 덩어리인 것입니다.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무엇인가가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가치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정말 그러합니까? 그 믿음을 왜라는 망치로 까부셔 보십시오. 남는 것은 없습니다. 마침내는 자신의 생존 마저도 허무의 공허 위에 서 있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유일하게 진지한 철학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자살이다.'라는 까뮈의 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삶을 진정 유지하는 것은 삶이 '좋다'라는 강박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심연을 들여다보지만, 그 순간 심연 역시 우리를 그렇게 바라봅니다. 의미의 기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의미의 기저가 답답한 어둠임 보게 됩니다. 심연의 아가리는 의미를 찾기위해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에게서 도리어 의미를 앗아가 버리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진정 삶을 창조하는 자는 의미를 가진자가 아닙니다. 의미는 나약하고, 슬픕니다. 진짜 삶을 살아가는 자는 의지를 가진 자고, 그 의지는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초인은, 믿음으로 삶의 가치를 구현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 세계를 그 의미로 가득 채우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토먼트는, 그 위대한 게임은 이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게임 전체로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이 게임의 올바른 해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게임은 이 의지의 문제를 강조하지 않으려는 듯, 엔딩의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가능성을 두어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게이머에게 유보시킬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에 대한 답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감상적이 되어 괜히 적어본 끄적임이었습니다. --------------------------------------------------------------------------------- 윈드 마스터 카이첼 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리뷰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니체와 초인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대 공감. 저도 이 위대한 게임에 대해 감동을 먹은 처지라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리뷰를 봤더랬죠. 말 그대로 내 생애 가장 위대한 게임 타이틀 자리에 앉아 있는 게임입니다. 원본글을 wmck.egloos.com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