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피아를 통해 발매된 불법 복제 게임(사진출처: http://cronos.egloos.com). 불법복제 문화를 선도한 회사들 한국에서 게임을 포함한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법으로 인정하고 보호하기 시작한 것은 (주1)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1987년부터였다. 그러나, 1995년 (주2)WTO 출범에 따라 강도 높은 소프트웨어 저작권 준수 압력이 있기까지 한국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 보호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었다.
이 시기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여러 군소 업체들이 앞다투어 일본의 소프트를 불법 복제해서 이윤을 챙겼는데 그 중 대표적인 기업 두 곳이 바로 “재미나”와 “아프로만” 이라는 회사다.
두 회사 모두 세운상가를 거점으로 하여 출발하였으며 처음에는 MSX의 주변기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일본 게임의 카피를 시작한 것이 1986년경의 일이었다. 카피 대상은 주로 일본의 MSX용 소프트웨어 들이었고 코나미의 (주3)[그라디우스] 시리즈나 (주4)[몽대륙], [마성전설], 같은 게임들이 카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코나미의 [그라디우스]는 MSX 최초의 메가 롬팩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개중에는 게임 소스를 카피할 때 코나미의 로고를 빼 버리고 자사의 로고를 집어넣는 일까지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그라디우스 1]이 메가 롬팩으로서 많은 호응을 얻은 데 힘입어 [몽대륙], (주5)[엘기자의 봉인] 같은 명작 게임들이 메가 롬으로 줄줄이 출시되기 시작 한다. 앞서 재미를 보았던 두 회사는 이들 게임 역시 나오는 족족 불법 복제해서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가라는 것이 당시의 한국이 처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코나미 대신 재미나의 로고가….
이런 현상은 비단 MSX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중소기업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주6)선경 그룹도 토피아라는 상표를 가지고 이런 복제 시장에 참여하여 애플과 MSX 양대 시장에서 적지 않은 이윤을 남겼던 것이다.
당시 MSX 전문 잡지에 실린 광고에는 “그라디우스, 몽대륙 등의 정품 게임은 재미나만 취급합니다” 라는 카피가 당당히 실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나는 13살로 중학교 1학년생이었다. 메가 롬팩을 꽂고 MSX를 켰을 때 나오는 로고가 재미나였기 때문에 당연히 재미나에서 일본과 계약을 해서 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들이 파는 롬팩은 마치 정품처럼 인증 마크도 들어 있었고 케이스도 그럴싸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임을 구하기 위해 자주 가던 세운상가의 재미나 대리점이 단골이 되어서 주말마다 놀러 가곤 하던 시절. 그러던 어느 날 그곳의 대리점 과장이 대리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된다. 이번에 일본에서 신종 게임이 나오는데 차질 없이 물건을 제 날짜에 사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코나미의 1메가 게임 [몽대륙] 유저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만큼 우선 복제 대상으로….
아직 어려서 잘 몰랐지만 계약을 하게 되면 원래 개발사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서 사온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곳의 과장이란 사람이 이야기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어떤 게임도 직접 계약하고 하는 게 아니며 모든 게임을 일본의 아키하바라에서 돈 주고 사와서는 그대로 롬 카피를 해서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원래 만든 사람들에게 잘못하는 거잖아요” 라고 질문을 했다. 그 나이에, 나 보다 최소한 20년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질문한 것은 확실히 당돌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 과장에게서 날아온 답변은 더욱 당돌한 것이었다.
“어차피 쪽발이들 건데 뭐 어때? 애국하는 거잖아?”
왜색에 대한 경시 풍조가 무척이나 심했던 때. 일본어를 입에만 올려도 마치 매국노처럼 경멸당하기 일쑤였고 일본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장의 그런 발언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나 역시 더 이상 재미나의 롬팩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복사해서 파는 것 나도 학원에서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테이프로 카피해야지- 이른바 정품 소프트웨어에 대한 (주7)모럴 해저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국내 유통업자들의 무책임한 유통 행태가 유년기에 있던 당시 게임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산업 전반에 걸쳐 어떤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인지 아무도 생각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장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서의 일이다. 일본의 게임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개발자들과 술 마시며 어울리는 기회가 있었는데, 주로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만들어 온 개발자 한 명이 갑자기 한국 시장에서 표절과 불법 복제하는 사례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솔직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던 생각이 난다. 당연히 한국 사람이니까 펄쩍 뛰어야 할까? 아니면 그런 일 없었다는 듯이 시침 뚝 뗄까……?
그런데, 그 사람이 이어서 한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옛날에 아케이드 게임을 개발할 때 서울에 다녀온 선배가 재미있는 것을 가져왔다고 하며 나에게 보여주더군요. 그건 MSX용의 [그라디우스] 롬팩이었죠. 그걸 보고 코나미가 한국에 라이센스 판매를 하나 잠시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코나미는 아직 해외에 진출하기 전이었거든요”
솔직히, 얼굴이 벌개져서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취한 느낌도 온데간데 없이 다 날아가 버리고 고개가 팍 숙여지는 느낌이 났다.
물론 그 이야기를 오래 했던 건 아니다. 내가 당황해 하니까 바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서 계속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편치 않았던 것이다.
일본 게임의 불법 복제가 국산 게임 개발에 미친 영향
애국심을 생각해서 일본 게임은 복제하되 국산게임은 돈 주고 사주자는 이야기. 그 시대를 지배한 사상이기도 했지만, 반면 지금도 여기저기 불법 복제하는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사용하는 명분이기도 하다. SCEK, MS 등이 한글화한 게임이나 국내 개발 게임은 돈 주고 사야 하지만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는 게임은 카피해서 해도 무방할 것이라는 풍조. 과연 그럴까?
1980년대에도 직접 게임을 개발하려 애쓰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마치 1979년에 구멍가게 허드슨을 이용해 유저들에게 자기가 만든 게임을 공급하고 싶어 했던 개발자들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국산 게임 개발, 특히 MSX로의 국내 게임 개발 시도는 198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주8)[형제의 모험], [용의 전설], (주9)[수퍼 보이] 등을 개발한 재미나의 개발실장 김을석씨를 필두로 (주10)[대마성] 및 [더블 드래곤]을 개발한 토피아의 이규환씨, [뉴 버블버블]이라는 게임을 개발한 정찬용씨 등. 이 외에도 수많은 개발자들이 직접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판타그램의 창립 멤버가 만든 국산게임 [대마성].
이런 게임들은 SKC, 아프로만 등에서 주최한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대기업의 관심을 끌었고 실제, 대우전자 등의 대기업이 자금 지원을 하는 가운데 추가로 제작이 이루어지고 일부는 판매용 MSX에 번들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반 매장에 놓인 패키지에 대한 유저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5,000원이면 복사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일본 게임과 비교해 아직은 엉성하기만 한 국산 게임을 20,000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사기에는 애국심만 가지고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게임 시장이라는 것도 하나의 시장이고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켜야 팔리는데 막상, 싸게 복제해서 즐길 수 있는 일본 게임을 제쳐두고 일본 게임과 비교해 엉성해 보이는 국산 게임을 돈 주고 사는 유저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도덕적으로 용서되었던 이런 풍조가 결국 국산 게임의 개발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사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불법으로 복제된 게임이 시장의 주류를 차지하던 1980년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 대우전자 및, 다우정보 같은 기업을 중심으로 정식 라이센스 된 MSX 게임의 공급이 추진 된다. 불법 복제 된 일본 게임들이 계속해서 시장에 만연하게 되자, 정부 관계자들도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고, 플랫폼 사업자에 속하는 대우전자 및 삼성전자 등에 국산 게임 개발을 장려하는 정책을 내놓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실정에는 MSX로 공급 된 왜색 게임들에 대한 학부모 관련단체 등의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산 게임 개발을 둘러싼 역학관계.
여기에는 한국에서 MSX 시장을 리드하는 역할인 대우전자도 적극적으로 라이선스 사업에 참여했다. [페어리 랜드 스토리]나 [자낙], [알레스트] 같은 게임이 한글 매뉴얼을 동봉한 패키지로 출시가 되었고, 다우정보 같은 곳에서는 코나미와 손잡고 [사각의 비밀] 등을 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퍼질 대로 퍼져버린 불법 복제의 모럴 해저드를 뒤늦게 기업 몇 개가 나서서 바로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일반 매장에 놓인 이들 게임은 30,000원을 넘나드는 비싼 가격에 유저들의 조롱을 받으며 잊혀져 갔다.
또한, 오리지널을 지향하며 개발의욕을 불태우던 개발자들도 시장성이 뒷받침되어 주지 않자 고질적인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 가장 빠르게 게임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인 표절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형국을 낳게 된다. 여기서 잠시 마이컴 1990년 8월호에 실렸던 재미나의 개발실장 김을석씨의 인터뷰를 살펴 보자.
- 지금까지 몇 종류의 게임을 개발했나요?
[수퍼 보이] 시리즈를 비롯해서 7종류를 개발했어요.
- 아이디어 및 개발기간, 제작비는?
게임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하고도 골치 아픈 게 바로 아이디어죠. 저 같은 경우는 주로 다른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고 2명이 개발할 경우 한 게임당 약 3개월 정도씩 걸려요. 그리고, 제작비는 약 3~400만 원 정도구요.
- 게임을 개발함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리고, 아무런 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게임을 개발하는지에 대해서도.
글쎄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기술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교해 커다란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러한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시나리오 부재가 문제지요. 그리고 게임을 개발할 때는……
인터뷰 당시는 MSX가 점차 쇠퇴하고 게임기 시장이 떠오르는 때였기 때문에 이후의 전문에는 게임기 게임의 개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면 당시 개발자들도 아이디어와 창작력이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좋은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탭이 필요한데 시장성이 없어서 이것을 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법 복제 때문에 시장성이 확보되지 않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해도, 환경 탓만 하며 게임을 만들다 보면 종래에는 만드는 사람의 마인드마저 변하게 된다. 비록 처음은 모방작에서 출발했더라도 모방작을 거쳐 순수 창작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었던 판타그램, 미리내 소프트, 소프트액션 등과 달리 재미나와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불법 복제가 기업의 모토였기 때문에 이후에도 단순표절작만 줄줄이 내어 놓다가 도산하고 말았던 것이다.
첫 작인 형제의 모험에 비해 노골적으로 [수퍼 마리오]를 표절한 [수퍼 보이].
[수퍼 보이 3]에 이르러 액션성도 거의 비슷하게 다가갔지만…….
주1: 컴퓨터프로그램 저작물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여 관련산업과 기술을 진흥시킴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1986. 12. 31, 법률 제3920호)
주2: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를 대신하여 세계무역질서를 세우고 UR(Uruguay Round of Multinational Trade Negotiation: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는 국제기구
주3: 코나미가 1985년에 게임센터용으로 내놓은 게임. 강제 횡스크롤 슈팅으로 독자적인 시나리오를 갖추고 파워업 캡슐을 취득해서 무기를 업그레이드시켜 가는 등 슈팅 게임의 일대 혁명을 일으켰던 게임이다. MSX로는 1986년에 이식되었으며 패미컴판과 달리 MSX만의 독자 시나리오를 가지고 시리즈가 이어지게 된다.
주4: 코나미에서 1986년 발매한 1메가 게임. 펭귄이 여자친구 펭귄의 치료약을 구하러 떠난다는 시나리오를 가진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많은 유저들에게 사랑 받았다.
주5: 1988년 발매된 1메가 퍼즐 액션 게임. 전작인 [왕가의 계곡]을 더욱 파워업 시켜 MSX1용과 MSX2용으로 나누어 발매되었다. 에디터 기능을 이용한 유저 콘테스트를 개최, 당선작 들만 모아 따로 타이틀을 내는 일도 있었다고.
주6: 1953년 선경직물로 출발한 회사. 1976년 선경(주)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종합상사로 지정받았고, 건설목재금속기계화학관광호텔업산림농산조경공사 등에 진출하였다. 게임산업에 있어서는 산하의 SKC㈜가 토피아라는 자회사를 이용해 5.25인치 디스크 및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한 복제 소프트 유통 부문에 진출하였다. 1980년대에는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함으로써 석유정제 및 석유화학산업 부문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였으며, 이어 정보통신산업에 진출하여 1989년 미국에 현지법인인 유크로닉스(YUKRONICS)를 설립하였고,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현재 SK텔레콤) 경영권을 인수하였다. 현재는 SK 그룹으로 총칭된다.
주7: 원래 보험시장에서 사용됐던 용어로 도덕적 해이를 뜻한다.
주8: 1987년. 재미나의 개발실장 김을석씨가 MSX용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게임.
주9: 재미나의 개발실장 김을석씨가 개발한 국산게임 [수퍼 보이] 시리즈의 첫째 타이틀로 1989년에 MSX용으로 발매되었다.
주10: 재미나에 이어 토피아가 1988년에 내놓은 국산 액션 게임. 타이토의 [버블보블]과 비슷한 면이 많았지만 재미나의 라인업이 대부분 심각한 표절작이었던 것에 반해 이쪽은 창작적인 면이 돋보이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