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크론도의 배신자 기억하는가...

으랏차창 작성일 06.07.15 15: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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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내공 : 상상초월


지금은 온라인 게임이든 PC게임이든 게임 자체를 거의 하지 않지만, 10 여년전만 해도 PC게임에 미쳐서 돈만 생기면 용산에서 패키지를 사 모으곤 했다. 특히 턴 방식의 RPG 게임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시에라에 합병된 다이나믹사에서 만든 '크론도의 배신자' 라는 게임은 개인적으로 모든 RPG 게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94년도에 3만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하고 구입한 이 게임은 5.25인치 디스켓 9장 (그래봐야 10메가 정도지만 당시로는 엄청난 용량이었음) 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이 게임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까지 표현할 정도로 지지했던 점은 바로 뛰어난 '사실성' 때문이었다.



'크론도의 배신자' 는 큰 하나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거대한 대륙을 여행하면서 진행하는 9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정통 RPG 게임이다. 이 게임은 매 장마다 3명의 파티가 구성되어 게임을 진행한다. 파티구성은 항상 3명으로 이루어지며, 각 장이 끝날때마다 파티구성이 바뀐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때마다 기존의 인물이 나가며 앞장에 나왔던 인물이 나중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 각 장의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으며, 플레잉 타임이 최소 백시간 이상은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역시 당시의 많은 RPG 게임처럼 각 장을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이 조건은 시작 전 포괄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설명해 주지만, 세세한 부분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플레이어가 직접 찾아내야 한다. 이 장을 클리어하기 위해 어떤 아이템이 필요하고 누굴 만나야 하는지 등등.... 이 게임에서 영어가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어를 모르면 인물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고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놓칠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재미는 단지 미션을 클리어하는데에 있지 않다. 게이머는 미션 클리어를 무한정 보류한채 자유롭게 방대한 대륙을 여행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9개의 장이 하나의 거대한 통합 맵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맵은 정말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모든 지역을 다 돌아다니려면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란다. 그 와중에 온갖 새로운 적을 만나기도 하고 대륙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기도 하며 특이한 장소와 건물, 도시를 수색하며 여러 인물을 만나고 아이템을 수집할수 있다. 제한된 맵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모험의 와중엔 대부분 상당한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자신이 없는 플레이어들은 단지 미션클리어만을 목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게임의 최대 강점이자 한편으론 약점이랄수 있는 부분이 바로 완벽에 가까운 사실성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매일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한다. 여행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벌기가 초반엔 쉽지 않다. 가장 흔한 방법이 적과 싸워서 이긴 후 그들이 가진 물품을 수리해서 상점에 파는건데, 그러려면 전투력이 배양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돈을 버는 방법이 있지만 모두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 부상을 당하거나 병을 얻으면 약을 먹어야 되고 나을때까지 안정을 취해야 한다. 사실 이 모든건 현실에선 당연한 거지만 게임속에서는 흔히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게임의 사실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 번 살펴보자.



우선 전투에서의 사실성..... 전투화면(위 그림 참조) 을 보면 단순한 치고받기의 턴 방식이라 재미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물론 그림처럼 적이 한 명밖에 없을때엔 별 문제가 없지만 (셋이 포위해서 공격하면 됨), 대개는 3명에서 많게는 6명까지 나온다. 적의 수가 많을 경우엔 정말 머리를 잘 굴려서 전략을 짜지 않으면 계속 로드를 반복하거나 포기하고 도망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아마 이 게임을 몇 시간만 해보면 전투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느낄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쪽 캐릭터들의 특성과 장단점, 적의 약점이 어디인가를 파악해야 하는건 기본이고.... 상대와의 거리, 내가 가진 무기의 특성, 각 캐릭터들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전투의 결과가 상당 부분 달라질수 있다는 거다. 무기를 쓸때도 찌르기와 휘두르기 중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 석궁이나 마법을 쓸 경우 가장 확률이 높은 거리를 파악해야 하는등 (잘못 쏘면 우리편에 맞는다) 단순해 보이는 전투가 의외로 상당히 복잡하고 다이나믹하며 현실적이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의 모든 캐릭터들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즉 전투시에 작은 공격이라도 피하지 못하고 제대로 맞으면 부상을 당하고 칼에 몇 번 찔리면 죽는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다. 부상을 당했을때도 보통 RPG게임은 회복약물을 먹거나 특정 아이템을 섭취하면 단번에 회복되지만 이 게임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좋은 회복약을 복용해도 단번에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고 회복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억지로 하려면 한번에 회복할순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안 하는 이유는 알다시피 돈땜에.... 심지어 중간에 덧나기도 한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당근 전투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 게임의 파티구성은 항상 2~3명이고 더 이상 늘지 않는다. 때문에 한 명이라도 부상을 당해 제 역할을 못하면 전투에서 이길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선 정말 많은 아이템이 나오지만 그 어느 것도 슈퍼맨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아주 약간의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도 가격은 무지 비싸다) 주인공들 역시 전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능력치가 무한대로 계속 올라가지 않는다. 능력치 상승이 워낙 더뎌서 최소 10번 정도는 싸워야 좀 강해졌다는 느낌만 들 정도.... ( 그런데 사실 서너번 싸웠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강해지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



기본적으로 이 게임의 주인공들은 항상 돈에 쪼달린다. 어쨌거나 이들은 사람이기땜에 매일 밥을 먹어야 하며 잠도 자야 된다. 때문에 밥값을 벌기 위해선 가끔은 하기 싫은 전투를 해야 할때도 많고, 정 싸우기 싫으면 술집이라도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보물을 찾아내서 팔아먹기라도 해야 살아남을수 있다. 숙박비가 없으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해야하고 ( 노숙을 하면 체력이 완전히 회복 안된다. 하지만 대개 숙박비때문에 여관에서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온갖 비굴한 짓도 참 많이 하게 된다. ( 게임을 하다보면 이 놈들 밥값, 약값 벌려고 온갖 나쁜 짓을 다한다. 정말 이들이 주인공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온갖 형태의 살인과 강탈을 일삼는데, 어찌보면 불쌍한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는.... )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어떻게 보면 참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지만, 이 게임의 사실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이 게임에서만 느낄수 있는 사실성은 여러가지가 있다. 직접 게임을 해보면 알 수 있을듯....



그래픽쪽을 본다면 이 게임은 3D 엔진을 사용하는건 아니지만, 화면상으로 충분히 3D 의 느낌은 가질만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10년전의 게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 봐도 크게 손색이 없는 그래픽이다. 사실 이 게임은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지나치게 긴 플레잉타임, 사실성을 너무 강조한 탓에 반복되는 여러가지 행위들, 그리고 한글판의 미출시로 인해 영어를 모르면 게임진행에 상당한 지장을 준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최고의 RPG 게임 중 하나로 내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때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고이 간직했던 이 게임이 지금은 쉐어웨어로 떠돌고 있다는게 어찌보면 좀 씁쓸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내 컴에는 이 게임이 깔려있고 가끔 심심할땐 대항해시대2 와 더불어 이 게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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