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논(KANON)
카논(KANON)은 1999년 KEY사(社)에서 제작한 게임이다.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2002년과 2006년 잇달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7년만에 눈(雪)의 마을을 다시 찾은 주인공이 소녀들과의 만남을 통해 예전의 기억을 되찾고 기적에 의해 운명을 바꾸는 이야기이다. 비주얼 노벨이라는 장르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경향을 만들었으며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분석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선정하였다.
아니메풍의 미소녀가 등장하는 게임은 게임산업의 초창기부터 존재했지만 90년대 초반 이후에는 ‘미소녀 게임’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장르를 형성하게 된다. ‘미소녀’가 게임의 단순한 일개요소가 아니라 ‘미소녀’를 ‘공략’하는 것이 플레이의 목적이 되고 게임의 세일즈 포인트가 되는 것이 이 장르의 특징이며 그러한 특징상 성인용 게임이 다수를 차지한다.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어드벤처와 연애시뮬레이션, 비주얼 노벨 등의 장르로 분화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오면 앞의 두 장르는 거의 사라져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고 사실상 미소녀 게임=비주얼노벨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게 된다. 비주얼 노벨은 문자 그대로 영상 소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유저가 주인공이 되어 게임을 진행한다. 유저가 할 수 있는 일은 분기점에서 선택지를 고르는 것 밖에 없어 ‘게임성’이라는 측면이 빈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
카논은 비주얼 노벨 중에서도 ‘순애’계열의 흐름을 완성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간주된다. 반전과 운명, 기적 등의 요소로 눈물을 자아내는 이러한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성인용 게임으로서 ‘H신’에 치중하던 미소녀 게임의 방향성을 바꾸었으며 순애물에서 H신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레마스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는 시각적 기호인 표층과 스토리 라인인 서사, 숨겨져 있는 주제의식인 심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의 이론에 따라 카논을 분석해 보겠다.
표층
카논의 캐릭터 디자인은 히노우에 이타루(樋上いたる)가 맡았다. 히노우에는 KEY의 전속 원화가인데 캐릭터 디자인의 독특함으로 유명하다. 히노우에의 캐릭터 디자인은 일반적인 미소녀체와는 상당히 다르며 성인 게임의 디자인으로서의 실용성은 거의 없다. 이는 KEY 게임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독특한 그녀의 그림체는 그 것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KEY 게임특유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분위기를 드러내는 데에 그녀의 캐릭터 디자인은 절묘하게 어울리며 카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카논의 캐릭터들은 눈이 매우 크며 코와 입은 극단적으로 작고 설정 연령보다 매우 어려 보이는데 이는 스토리상의 복선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픽과 CG는 그 당시의 기준으로도 그렇게 좋다고 말하기는 힘든 편이다. 1999년 PC판 발매 이후 드림캐스트와 플레이스테이션2, 최근에는 PSP 대응 버전으로도 출시되었으나 그래픽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는 것은 발견하기 힘들다. 하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로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장르의 특성상 비주얼적인 측면은 그렇게 중요시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게임의 평가에 있어서 크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주얼 노벨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르고 있다. 유저는 화면 하단에 나오는 텍스트를 읽고 상단의 그림을 보며 게임을 진행한다. 그러다가 분기점에서 선택지가 나오면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진행이 달라진다.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CG를 모을 수 있는데 한번 본 CG는 앨범에 자동적으로 저장되며 CG를 모두 모우는 것을 게임의 목적으로 보기도 한다. 어떤 시나리오든 엔딩을 한 번 보고 나면 처음 화면에서 앨범과 음악을 선택할 수 있으며 당연히 스타트, 로드, 세이브, 옵션 등의 메뉴가 제공된다. 한 마디로 시스템은 다른 비주얼 노벨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이는 이 작품의 평범성이라기보다는 장르의 한계라는 이유일 것이다.
사운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인 취향의 차이겠지만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바뀌는 BGM은 게임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데 공헌한다. 오프닝과 엔딩의 가사는 게임의 스토리와 주제를 적절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서사
비주얼 노벨은 기본적으로 서사로서 승부해야 하는 장르이다. 게임별 표층의 차이가 다른 장르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의 중요성이 매우 부각된다. 그래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는 그 이름이 작품의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카논의 시나리오는 히사야 나오키(久弥直樹)와 마에다 준(麻枝准)이 담당했는데 이 작품이 데뷔작인 마에다는 현재 가장 유명한 게임 시나리오 작가 중 한명이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겨울에 머물렀던 미나세가(家)에 7년만에 다시 찾아와 살게 된다. 그 곳은 눈이 매우 많이 내리고 추위가 극심한 마을에 있다. 그는 7년전의 기억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어쨌든 그 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유이치는 친척인 미나세 나유키, 상점가에서 만난 츠키미야 아유, 어떤 계기로 같이 살게 된 사와타리 마코토, 학교 후배인 미사카 시오리, 선배인 카와스미 마이 등 5명의 히로인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일상 속에서 만남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유이치는 차차 7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의 5명의 히로인이 각각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주된 히로인은 아유이며 그녀는 다른 모든 캐릭터의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친다. 카논의 이야기 자체가 7년전 주인공과 아유 사이에 있었던 일에서 시작되며 아유가 꾸는 꿈은 카논의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야기는 비현실적, 판타지적 요소가 많이 개입되는데 이는 판타지적 공간이 아니라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에서 비일상적이고 판타지적인 사건이 조금씩 나타나서 크게 위화감을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카논의 줄거리는 마치 옛날이야기나 동화 같은데, 어떤 특정한 이야기나 동화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옛날이야기의 이미지, 즉 운명이나 기적 같은 요소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코토 시나리오는 동물이 자신의 기억과 생명을 희생하여 사람으로 변신한 후 누군가를 만나러 오는 옛날 이야기의 한 전형을 따르고 있다. 또 이야기에 의도적으로 모호한 면을 많이 집어넣었고 이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게임이 논란을 일으키고 흥미를 끌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이전의 비주얼 노벨 작품에서도 이런 모호성과 다의적인 해석의 가능성은 많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SF적 요소 등 너무 복잡한 측면이 있었다면 카논에서는 적절한 수준에서 이런 요소들이 제 역할을 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반전(反轉)은 유저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을 자아내는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지금이야 이런 반전은 각종 대중문화 장르에서 너무나도 흔한 장치이지만 이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고 나면 아무 의미도 없어보이던 대사나 행동이 복선이었으며 캐릭터 디자인의 특이성도 이야기의 내용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카논의 이야기의 또 하나의 특징이자 이후 비주얼 노벨의 어떤 흐름을 만든 것은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이라는 요소이다. 특히 아유와 마코토의 시나리오는 플레이 이후 후유증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고 할 정도이다. 이런 요소들은 제작 과정에서 면밀하게 계산되었으며 그 것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시나리오의 치밀성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잘 짜여진 카논의 서사구조는 그 전까지의 비주얼 노벨과 차별되면서 이후에 큰 흐름을 만들어 내었고 이 작품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심층
카논은 한마디로 기적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적을 꿈꾸고 바라지만 믿지는 않는다. 시오리의 말대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기적이라고 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논에서는 기적은 일어난다. 다만 여기에는 ‘기적을 발생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이 있고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 게임에서 트루엔딩을 보게 된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일 것이다. 진심이 하늘에 닿으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카논의 주제이다.
카논의 특징 중 하나는 악의 부재이다. 카논에서는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으며 이는 KEY사 게임의 특징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목적과 의지를 방해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과 같은 개념으로 대치된다. 여기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소녀의 마음은 기적을 일으키고 사람의 정을 잊지 못하는 여우는 다시 그 사람을 찾아온다. 이렇듯 카논의 세계관은 낙관적이고 따뜻하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현실에는 기적도 선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임을 우리가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 약속이 있었고,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기적을 가져왔다. 모든 걸 빛바래게 하고 잊혀지게 하는 일상에서 사랑이 되살아나고 약속이 지켜졌다. 모든 사랑이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은 모두 기적이다. 기적이 사라진 시대에사랑은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유치함에 몸을 떨고 마음 아파한다.
카논은 TV애니메이션으로 두 차례 제작되었고 2006년 작품은 게임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미디어믹스에도 성공한 것이다. 이는 치밀하면서도 감동적인 시나리오와 반전, 보편적인 주제 등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은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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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레포트로 제출;;
http://blog.naver.com/gp03rx78/150019345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