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이순신(황우석) 정서를 노려라!" [펌]

Heaven 작성일 05.12.11 22: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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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조선의 상황과 2005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진왜란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함대(미-영)는 이순신의 조선함대가
버틴 남해안 견내량 방어선을 끝끝내 돌파하지 못하고 서해 보급로(줄기세포)
개척에 실패합니다.

서해를 뚫지 못하고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이순신이라는 근본적인 장애물 제거라는 프로젝트의 추진을
지시하게 되고, 드디어 고니시-요시라-윤두수-선조로 이어지는,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반간계가 실행에 옮겨집니다.

"반 이순신(황우석) 정서를 노려라!"

정공법으로는 이순신(황우석)의 조선함대(연구팀)를 격파할 방책이 없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 내부에 이순신을 시기하며
그의 실각을 바라마지 않는 정치세력이 있음을 간파하고
조선 내부의 자중지란을 유도합니다.

고니시의 의도대로 반간계는 적중했고
통제사 이순신은 선조임금의 어명을 받들고 온
금부도사에 의해 한산도에서 한양으로 압송,
죄인의 신분이 되어 옥에 갇힙니다.

죄인 이순신!
그가 죄인이 된 이유는 이러합니다.

"모월모시 가토 기요마사의 선단이 부산으로 상륙할 것이니
그때 부산으로 나아가 환란의 원흉 가토를 잡으라"는 임금의
어명을 이행하지 않은 죄였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것이 왜군측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병법의 이치를 들어 부산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러차례에 걸쳐 아뢰었습니다만, 군사학의 이치를
군사학으로 접근하지 않고 제보자(고니시 & 요시라)의 말만을
굳게 믿고 확신(이용)한 선조와 조정신료들에 의해 무시되고 맙니다.

선조의 조정은 이순신에게 지금까지의 연전연승을 한 용맹과
기지를 가토라는 사냥감을 통해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그 와중에 원균이라는 장수는 자신은 늘 적을 맞아 선봉에 서서
조선 장부의 기개를 떨치며 공을 세웠지만 이순신은 늘상
겁에 질려 전투에 나서기를 주저하였다는 모함까지 하게 됩니다.

이순신은 당시의 상황이 왜군측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파놓은 고도의 술책임을 알았지만 군사학의 이치를 모르는
명분론자들의 여론몰이성 모함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이순신은 실각하게 되고 그를 시기했던 정치세력들은
일순간 흡족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선조의 조정은 새로 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에게 적의 최대 병참기지인
부산으로 나아가 적의 후방을 교란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동안 줄곧 이순신에게 용맹성과 기지의 검증을 요구하며
자신의 용맹함을 자랑했던 원균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부산으로
출정했고 칠천량에서 파멸을 맞습니다.

원균(음모세력)과 조선함대가 적에 의해 궤멸되었습니다.

그것이 400년 전에 있었던 암울하고도 치욕적이며 한심스러웠던
통한의 역사였습니다. 자중지란의 결과가 빚어낸 손실은 굳이
수치상으로 따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따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순신을 모함하고 끌어내렸던 이들이 수지를 맞았습니까.

군사학은 군사학으로 접근해야 하고, 과학은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합니다. 백번 동감하는 말입니다. 간단한 이 말 속에
역사의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걸 명심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황우석 박사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첫째, 소외받고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휴머니스스트적 소명의식이 같습니다.
둘째,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려는 보국적
이미지가 같습니다.

지금 황우석 박사는 병상에 누워계시지만 어느 순간 훌훌 털고 이순신 장군처럼

울돌목 대반전을 이뤄 내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그러하셨듯 박사님도 대승적 차원에서 백의종군하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힘드시겠지만... 당신의 소명을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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